1. 수량조사는 간단히 구입 예정 권수를 덧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통판하실 분들도 간단히 남겨주시면 수량 예측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나오는 통판 수량은 따로 빼 놓을 예정입니다.
3. 12일까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샘플 텍스트입니다.
"등록법을 반대하신다는 겁니까?"
"저는 우리 국민들이 어떤 이유로건 '구별'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피부색이건 성별이건 돌연변이 여부건 간에 그들은 모두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국민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자비에 의원님, 범죄를 저지르는 뮤턴트들에 대해 따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뮤턴트만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닙니다. 범죄에 대한 방지책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죠. '함께' 말입니다."
'함께' 라는 말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계속되는 의정활동으로 약간 창백해진 얼굴을 꿋꿋이 들고 답하던 찰스 자비에는 이제 질문은 끝이라는 뜻으로 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에도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과 다가오는 마이크를 밀어내며 경호원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앞으로 다가가려던 움직임은 풍채 좋은 한 남성에 의해 막혔다.
"의원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질문은 끝났는데요."
짧게 답하며 고개를 든 자비에 의원의 시선이 그 남자의 것과 얽혔다. 묵묵히 자비에를 내려다 보던 남자의 입매가 꾹 눌렸고, 그를 바라보던 의원은 서서히 경악에 찬 얼굴이 되어 입을 벌렸다. 의원이 손을 들어 남자의 어깨를 붙든다. 심상치 않은 기색에 의원 주변의 기자들을 막던 경호원이 고개를 돌려 남자 쪽으로 손을 뻗는다. 남자가 손을 올렸고, 총을 발견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시간은 끔찍하게 느리게 흘렀고, 의원이 잠깐 숨을 들이키고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맙소사, 에릭!"
다가온다. 한 발로 뛰다시피 해서 다가온 에릭의 허벅지에는 엄청난 상처가 나 있다. 일반적인 총상과 다르다. 울컥 피가 솟아나오는 것 보고서야 찰스는 하얗게 질려 손을 내밀었다. 어서, 어서 지혈하지 않으면 저 출혈량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발 다가온 에릭은 그대로 무너져 찰스의 온 몸을 끌어안았다. 남자가 힘겹게 숨을 내쉰다. 단 한 순간 모든 것이 악몽으로 변해버렸는데, 에릭이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막을 수가...찰스, 막을 수가 없어."
"무슨 소리야, 에릭!"
"이 총알, 막을 수가..."
중얼거리던 에릭이 양 팔로 간신히 의자를 짚고 몸을 떼는 순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시 한번 총성이 울린 것이다. 찰스의 눈앞에서 에릭의 어깨가 붉게 물들었다. 남자의 어깨에 박힌 총알은 몸 안에서 파열되며 큰 상처를 남겼고, 뜨거운 피가 찰스의 얼굴과 몸에 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자를 붙들고 있던 에릭의 팔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쪽 팔은 불가항력으로 인해 아래로 늘어졌지만, 다른 팔은 힘껏 버티고 서서 이름 모를 저격자들의 시야에서 찰스를 가리고 있다.
팔을 뻗었다. 눈을 크게 뜬 채 피투성이가 된 에릭의 몸을 끌어안은 찰스는 그대로 의식을 확장했다. 순간 모든 것이 멎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사람들도, 달려가던 사람들도, 손가락으로 에릭 쪽을 가리키며 어딘가 외치던 사람들도, 사방에서 이 쪽을 노리던 저격자들과 총성을 향해 달려가던 경호원들까지도 모두 멈춰섰다. 마치 영화 속의 정지된 장면같은 광경이었지만, 모든것이 멈춰 있는 화면과는 달리 다른 모든 것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분수에서 흩날리는 물방울, 사람들의 머리칼을 스치는 바람, 그리고 찰스의 옷에까지 뜨겁게 번져가는 에릭의 피.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해해."
분노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격노, 폭발, 때로는 하지않을 수 없는 파괴행동. 이제껏 참고 참고 또 관대하게 참아온 찰스로서는 더욱 터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겠지.
"최악이지?"
"멋진 최악이지."
찰스는 에릭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에릭 렌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기왕이면 좀더 폭발시켰으면 좋았을 거야. 돌연변이 대표로서 말이지." 찰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 사실 그래서야."
"......"
"모두 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어. 두려움에 가득차서 말이야. '괴물!'이라고."
"보인다는 건 괴로운 일이군."
에릭은 조용히 찰스의 손에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우고 조용히 얽는다.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찰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말해주었다. 그가 동의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부러 얘기하는 것이다.
"그만두고 싶으면 말만 해. 인간들은 지금의 지위를 누릴 자격이 없어."
"오, 에릭-"
"이전에 얘기했잖아. 그들은 어리석어."
손을 단단히 얽어 온다. 찰스는 눈을 감고 에릭의 체온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고마운 친구, 언제나 힘들 때마다 악역을 자처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괴롭고도 기쁜 일이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겨낼 기회를 동시에 주는 것이다. 이렇듯 늘 기대를 배신하는 이에게.
현재 블로그에는 3편까지 올라와 있으며, 나머지 편들은 행사 이후 20일에 한꺼번에 다시 공개할 예정입니다.
연구소에 이런 거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뻘글입니다. 매그니토를 갖고 개그를 했습니다. 설정 당위성이고 뭐고 없습니다. 트위터에 올렸던 뻘소리인데 이런 거 써도 되나요ㅠㅠ
글을 쓰라고 적절한 시기에 발차기를 날려주신 글래스워커 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연구소분들을 응원합니다! 늘 잘 보고 있었습니다, 쓰지는 못 해도 즐겁게 읽었어요.
분명, 철강산업으로 뭘 좀 해 보겠다며 무조건 까면 된다고 우겨대던 이 동양의 작은 나라와 거래를 한 후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동안 자신도 많이 늙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 나라가 많이 변하기는 했을 거다. 게다가 이 나라는 도대체 왜 그런지, 뭐든지 금방금방 바뀌는 것 같았다. 교통카드 시스템이라니, 10년 전에 왔을 때는 생각도 못했던 거라서 놀랐다. 아침에 미스틱이 준비해 준 차를 물리고 버스를 타고 싶다고 했더니 카드를 주지 뭔가. 뭐냐니 교통카드라더라. 그런 걸 써 본 적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그래서 절망했다. 아침에 호텔방 열쇠가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힘을 좀 쓰다가 깨달은 점도 있다. 아날로그식 열쇠가 아니고 카드키였다는 걸. 덕분에 시간을 한참 잡아먹었지 뭔가. 매그니토는 혀를 찼다. 도대체 호텔에 카드키가 왜 필요한가. 보안은 아날로그 열쇠가 최고인 것을. 혼자 괜히 궁시렁거리고 투덜대며 버스를 기다렸다. 혼자 가야 하는 데고, 보안이라기보단...조금, 그냥 그랬다.
아무튼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버스에서 교통카드를 대니 잔액이 부족합니다 데헷, 같은 헛소리가 기계에서 새어나오는 거다. 이런 카드는 자기를 만나면 망가지는 거였지. 황당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버스기사에게 웃어주며 매그니토는 이를 갈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주머니에 미스틱이 준 USB가 들어있다는 것을 버스에서 내려 들어간 PC방에서 발견하고, 매그니토는 '딥빡침'이라는 한국어 속어가 의미하는 바를 온 몸으로 깨우쳤다. 읽히지를 않는다. 중요한 데이터였는데! 모니터 앞에서 OTL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의 등 뒤에서 초딩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헐 저 양키 털렸음?”
“ㅇㅇ”
“존나 웃긴다ㅋㅋㅋㅋ”
“야 이쪽 보고 야린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 양키 주제에. 한국 말은 할 줄 아냐?”
“양키 고 홈ㅋㅋㅋㅋ”
비극은, 매그니토가 한국어는 몰라도 이게 무슨 뜻인지는 다 이해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이 초딩들이 운동장에서 공이나 찰 것이지. 매그니토는 이를 갈다, 무언가를 생각한 듯 조금 개운해진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하던 게임이 안 된다고 징징 우는 초딩들의 새된 목소리를 브금삼아 행복한 얼굴로 PC방을 나오던 매그니토는 USB를 보며 인상을 썼다 이래서 아날로그가 최고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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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이 준 USB안에는 그녀가 최선을 다해 스캔한 어린 시절 찰스의 사진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뽀샵 잘 하는 애들이 많으니 깨진 흑백사진 정도야 복구해줄 거라는 의미없는 말을 하며 건네준 USB를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럼 삭제하고 말지 뭐 하며 투덜대는 미스틱에게 매그니토는 황급히 손을 내밀었다. 아니 버릴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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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USB였는데. 데이터는 남아있을까? 돌아가서 미스틱에게 뭐라고 변명한담. 매그니토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옛날엔 이런 거 없어도 잘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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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이 이런 거라 죄송합니다. 다음엔 좀 멀쩡한 거 쓸게요;;
- 정치계로 진출한 찰스, 이상은 다르지만 그를 잠시 돕고 떠나려다 인생 틀어잡힌 에릭입니다.
- 찰스는 뮤턴트를 지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자신이 돌연변이인 건 숨기고 있어요 :D
- 연작입니다. 이번 글에는 스칼렛 위치님의 리퀘스트가 들어가 있습니다.
최신식 설비가 늘어선 부엌은 과연 사용된 적은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반짝거렸다. 리놀륨이 깔린 바닥, 기름 얼룩 하나 없는 벽의 흰 타일들을 바라본 찰스는 아마도 이 곳이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거 굉장한걸."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 고개를 돌리는데, 실로 희귀하게도 순수한 경탄에 찬 에릭의 음성이 들려 왔다. 벽면을 바라보는 그의 등에 시선이 머무른 순간 에릭의 주위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맙소사."
찰스도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에릭의 눈이 향한 곳은 바로 주방 벽에 붙은 꽤 커다란 검은 패널이었다. 거기 보란듯이 진열되어 있던 각종 칼들이 부드럽게 공중에 떠올라 마치 유연하게 헤엄치는 은빛 물고기마냥 에릭의 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미세한 컨트롤에 따라 공중에서 움직이던 칼날들이 다시 패널에 고분고분히 걸리고, 개중 적절한 무게와 형태를 한 식칼 하나가 에릭의 손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좋은 칼이군."
대체 어디서 꺼냈는지 꽤 큼직한 생선을 도마 위에 올린 에릭이 찰스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 끝을 꽂아 부드럽게 선을 그어주는 것만으로도 지느러미들이 간단히 떨어져 나가는 것을, 찰스는 거의 경의에 찬 눈으로 감상했다. 물고기 손질이라니, 타고난 신분과 재력 덕에 와인을 꺼내지 않는 이상 주방에 갈 일이 없던 찰스로서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칼등으로 긁어 비늘을 제거하고, 배에 칼을 꽂아넣고 매끄럽게 갈라낸 후 빼낸 칼끝으로 배를 부드럽게 짜내듯 눌러 내장 전체를 단숨에 밀어낸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일체의 동작 낭비 없이 물 흐르듯 이어졌고, 고개를 숙이고 선 남자의 곧은 등과 은근히 섬세한 선을 지닌 목덜미가 거기 어우러져 거의 안무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흰 셔츠 밑에 드러날 듯 숨겨진 마른 등골과 잘 짜인 등, 그리고 벨트와 팬츠 밑에 숨겨져 있을 견고한 허리에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찰스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치 예쁘장한 하녀를 둔 음흉한 주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도저히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색한 - 아마도 찰스에게만 어색할 - 침묵을 견디다 못한 찰스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어떻게든 말을 꺼내 공백을 채워나갔다.
"그래서, 지금 만드는 건 뭐지?"
"간단한 생선구이지."
"좋군."
"마침 도미가 물 좋은 걸로 있길래 사 뒀어. 백포도주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각종 향초와 함께 유산지에 싸서 굽는 거지. 괜찮을 거야."
찰스는 경이에 찬 눈으로 에릭을 바라보았다. 포도주 마개를 따던 에릭은 그 심상찮은 침묵을 느끼고는 의아한 기색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마치 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나타난 가브리엘을 바라보는 성모를 연상케 하는 찰스의 눈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자넨 정말 경이로운 사람이야. 그런 요리는 대체 어디서 배웠어?"
에릭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기저기서. 그보다도 대체 표정이 왜 그래? 빠삐요뜨는 별로 어려운 요리도 아닌데."
"난 달걀을 삶으려다 폭파시킨 뒤부터 요리는 포기했다고."
뭔가 한소리 하려는 듯 찰스를 바라보던 에릭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손질을 마친 도미를 큼지막하게 두 토막으로 썰어 칼집을 넣고, 최고급 백포도주를 큰 스푼에 담아 접시에 담아둔 도미 위에 앞뒤로 골고루 뿌렸다. 포도주 향기가 피어오르고, 거기 소금과 후추로 적당히 밑간을 한 뒤 구석에 놓아둔다.
"공기가 황금색이 된 것 같아."
찰스의 맑은 목소리에 어쩐지 달콤한 기분이 섞인 것 같았지만 에릭은 애써 무시했다.
"최소한 20분간 곱게 놔둬야 해."
"그럼 그 사이 뭘 하지?"
"다른 재료를 준비해야지."
슬쩍 다가붙은 찰스가 뭘 뜻하고 있는지 모를리 없건만, 에릭은 냉정하게 잘라 끊으며 몸을 돌렸다. 물을 틀어 재료들을 깨끗이 씻고, 생선을 다듬은 칼은 잠시 치워 두고 좀더 굵직한 식칼을 집어든다. 뒤에서 찰스가 들으란 듯 한숨을 쉬건 말건 침착하게 감자를 깎고 양파를 까고 당근을 다듬는다.
"당근은 별로인데."
"어린애 같군 그래."
아마도 꽤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툴툴대고 있을 것이다. 에릭은 일단 버섯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둔 다음 레몬과 감자 또한 썰어서 접시에 담아 놓고, 마지막 코스인 양파를 집어들고 썰려다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찰스?"
"...왜?"
잠시 망설이다 한숨을 푹 쉰 남자는 반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허리는 건드리고 그래."
그랬다. 찰스는 어느새 휠체어를 최대한 에릭에게 바짝 붙이고는 맨손을 슬그머니 들이밀어, 에릭의 허리를 매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서 그러고 있으니 왠지 만져보고 싶어지잖아."
가느다란 주제에 근육으로 꽉 잡혀 있는 허리에 손을 얹고 슬슬 쓸어올린다. 그 손길이 노골적인 유혹의 몸짓이라는 건 아마 세살짜리 아이라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봐, 경고하겠는데."
"뭘?"
어딜 봐도 웃음기가 섞여 있는 찰스의 음성에, 에릭의 눈꼬리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난 지금 양파를 손에 들고 있어."
"그래서?"
"그리고 도마 위에 놓고, 이제부터 이걸 썰 거거든."
"음?"
에릭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한 음절 한 음절을 끊어가며 명확히 발음했다. 양파를 썰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는 이 남자가 얼마나 손가락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산 인간인지, 혹은 얼마나 생활력 없는 인간인지 실감하면서.
"지금 그 손 치우고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몹시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야."
"죽어도 떨어지기 싫은걸."
양파가 도마 위에 놓였다. 에릭은 가차없이 손을 휘둘렀다. 잠시 뒤, 찰스는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며 양 손을 들고 에릭에게서 황급히 멀어졌다. "맙소사, 에릭. 이게 뭐야?"
이러면 안되지만, 에릭은 만면에 미소가 퍼지는 것을 실감했다. 당연히 에릭의 눈도 따가웠지만 아무튼 그랬다. 양파가 치한 퇴치에 효험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찰스를 '퇴치' 한 후 월계수 잎을 꺼내고 로즈마리를 끊어둔다. 유산지를 충분히 잘라 감자를 배열하고 양파를 하나 하나 곱게 얹은 뒤 버섯과 당근을 올린다. 소금을 뿌려 숨을 죽여놓고서야 뒤를 돌아보는데, 눈물젖은 찰스의 파란 눈에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직후 이를 갈았다. 맙소사, 양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남자 따위에게 감탄하다니! 저 놈의 눈동자는 왜 저리 쓸데없이 청명하게 파랗단 말이냐.
"에릭."
"왜 찰스."
찰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에릭을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 주위는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은 양파 때문이라는 것만 잊으면 거의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보일 정도로 감상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눈물이 투명한 한줄기 선을 그리며 뺨 위로 흘러내렸고, 바로 그 눈물 방울에 젖은 붉은 입술이 천천히 말을 자아낸다.
"사랑해."
"......찰스?"
"아,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거 뭔가 굉장한 것 같아. 게다가 자네도 울고 있잖아."
"양파 때문에 말이지."
"응, 양파 때문에."
에릭은 뜨거운 눈시울을 한 채 이를 갈았다. 그리고 이 쪽으로 휠체어를 밀고 와 팔을 뻗는 찰스를 이번엔 막지 않았다. 생선이 완전히 재워질 때까지 앞으로 약 10분, 키스 두 번, 포옹 한 번, 그리고 그 틈을 타 찰스는 심술궂게도 에릭의 목덜미에 키스마크를 남겼다. "일주일 사이에는 지워지겠지?" 의원님 답지 않은 가벼운 말투는, 아직 그가 학문의 길에 몸담고 있었을 때를 상기시켰다. 잘 웃고 쾌활하게 떠들며 툭하면 여대생을 꼬시곤 하던 그 시절을.
다시 한번 키스하며, 찰스는 에릭의 긴 목을 팔로 감고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세게 입맞춤을 해 왔다. 요리하는 중만 아니라면 곧장 침실로 갔을지도 모른다. 간신히 떼어낸 에릭의 입술에는 찰스가 살짝 문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납치하길 잘 했군."
"이런 납치범에게라면 납치당할 맛 나는데?"
에릭은 웃으며 돌아섰다. 잘 재워진 생선을 얹고 그 뒤에 다시 레몬, 월계수 잎, 로즈마리를 얹는다. 백포도주와 올리브유를 한술씩 더 부어주고, 유산지를 잘 말아서 밀봉하고 오븐에 넣었다.
"이제 30분쯤 지나면 돼."
"그래, 우리에겐 30분이 있군. 충분하잖아?"
도저히 오해할래야 오해할 수 없는 세리프에, 에릭은 얼굴을 굳히고 찰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결연한 표정에 당황한 찰스가 뭔가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엇, 에릭?!"
찰스의 무릎 밑에 팔을 넣고 몸을 어깨로 받치더니 간단하게 들어올린다. 졸지에 자루마냥 어꺠 위에 실려가게 된 찰스가 뭔가 항의하기도 전에,
"그래, 30분이 있지. 가련한 인질께서는 목숨을 부지하려면 고분고분 따라주셔야겠어."
"맙소사, 내 경호원이 이런 악당이었다니!"
짐짓 하는 한탄조차 달콤한 유혹처럼 들려와, 에릭은 주저없이 방갈로의 침실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래, 30분이면 충분하다. 맛있게 요리가 익어가는 동안 이 남자를 재료로 또다른 요리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 아닌가 말이다. 키스가 이어졌고, 두 남자는 꽤나 조급한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기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쓸 필요 없고 어떤 소리를 내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이 이렇게나 좋은 일일 줄이야. 곧 침실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누구의 것이라고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신음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30분 후 완성된 빠삐요뜨는 최고였다. 향긋한 생선 향기는 두 남자의 위장 뿐 아니라 후각과 시각과 촉각까지 만족시키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따뜻한 상태로 먹지는 못했다. "식었지만 정말 맛있어!" 라고 찰스는 진심을 담아 열성적으로 말했지만, 에릭은 슬쩍 미간을 찌푸리고 약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다음번에는 제대로 해 줄 테니까" 라고 말할 뿐이었다.
- 정치계로 진출한 찰스, 이상은 다르지만 그를 잠시 돕고 떠나려다 인생 틀어잡힌 에릭입니다.
- 찰스는 뮤턴트를 지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자신이 돌연변이인 건 숨기고 있어요 :D
- 연작입니다. 이번 글에는 sian님의 리퀘스트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에릭은 시체 주위에 몰려드는 독수리들을 연상하며 최대한 그들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방 팔방에서 마이크와 카메라가 찰스를 향해 포문을 열었고 질문이 그와 함께 발사되었다. 창백한 얼굴의 찰스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자들은 그 닫힌 입에서 한 마디라도 더 들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자비에 의원님! 이번 하원에서 결의안이 어떻게 되리라 보십니까?"
"학부모회의 성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수학교의 설립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실제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찰스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렸고, 기자들은 신이 나서 질문을 퍼부어댔다.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찰스가 어떤 의미로건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걸. 에릭은 찰스의 입가까지 마이크를 들이댄 기자를 거의 칠 뻔 했지만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며 팔을 밀어냈다. 하지만 한 개의 팔을 밀어내면 두 개의 팔이 달려드는 형국이었다.
"통제되지 않은 능력은 위험한 것 아닙니까?"
"흑인 학교에서도 돌연변이 학생 입학 거부 운동이 일고 있는데 견해는?"
"각 사립학교에서 이미 돌연변이 입학 제한 교칙을 제정하고 있는데요,"
"학생의 돌연변이 여부에 대한 선별 조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휠체어를 쥔 손이 하얗다. 기자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입안된 법안에 대한 찰스의 반대 의지가 확고한 것은 그 자신이 바로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특수학교 설립안'이라고 하면 이름은 좋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사실상 "일반 학교에서의 뮤턴트 추방령"이다. 모든 청소년은 돌연변이임이 밝혀지는 즉시 일반 학교에서 나와 각 주에 세워질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선택이 아닌 추방, 차별의 법안화인 것이다.
자기 아이가 돌연변이 아이들에게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하던 학부모회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돌연변이 학생들을 '어린 괴물' 쯤으로 생각하던 교육계 또한 환영했다. 의원들 또한 지역 사회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돌연변이들보다는 절대다수인 '정상인'들의 편을 들고 싶어했다. 심지어 바로 얼마 전까지 그 자신들 또한 비슷한 차별을 받고 있던 흑인학교들마저 돌연변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찰스도 에릭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지금 의회에서 돌연변이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돌연변이인 자신들 뿐, 그리고 사회에서는 인권운동가들 중 소수만이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돌연변이 학생들의 신원은 비밀에 부쳐진다는데 문제가 있을까요?"
"대답해 주십시오!"
몇번이나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을 뻔 했다. 하지만 위험하다. 찰스 자비에 의원을 경호하는 에릭 렌셔가 '돌연변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그의 능력이 무엇인지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면 기자들은 오히려 신이 나서 다시 한번 에릭을, 그리고 찰스를 정치적 궁지에 몰아넣을 기사들을 써댈 것이다. '언론을 향한 협박인가? 뮤턴트의 공격!' 등의 싸구려 타블로이드지같은 제목을 달고서.
에릭은 최대한 기자들의 공세를 막아내며 다른 경호원들과 함께 찰스의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휠체어는 기자들의 몸에 가로막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기자들은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찰스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는 절대 놓아줄 기색들이 아니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에릭이 뭔가 하려던 순간, 한 기자가 치명적인 질문을 내뱉었다.
기자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찰스에 대한 기자들의 평판은 '입이 무거운 여우'였다. 그만큼 신중하게 절제된 화술로 자신의 의지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젊은 의원은 드물었다. 그런 그가 무려 격앙된 기색으로 외친 것이다.
"범죄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학생들입니다! 어린 학생들이요!"
"하지만 치명적인 돌연변이들이,"
푸른 눈에 번개가 흘렀다. 짓씹어 더욱 붉어진 입술 사이로 악물린 이가 보인다. 맑은 목소리에 가득한 분노가 공기를 쩌렁 울리는 순간 에릭은 가벼운 두통을 느꼈다. 설마?
"치명적이라고요! 지금 당신들의 말이 더 치명적이야!"
"의원님?"
"'돌연변이'라고 부르지 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 당신들은!"
"찰스!" 에릭은 그만 다급한 마음에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찰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찰스가 좀더 빨랐다.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소!"
정적이 퍼졌다. 기자들의 놀란 시선이 찰스에게 고정되었다. 여기자 한 명이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경악만큼이나 빠른 분노가 물 위의 기름방울처럼 기자들의 눈을 재빨리 뒤덮었다. 에릭은 이를 악물었다. 두통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그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불보듯 뻔했다.
"찰스, 진정해!"
"그들은 인간이오! 당신들만큼이나 평범한 인간!"
다음 기자가 입을 열려는 순간 에릭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TV카메라가 폭발했다. 기자의 손에서 피가 흘렀고, 비명소리가 울렸다. 녹음기들이 지직거렸고 필름이 망가졌다. 기자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에릭은 찰스의 휠체어를 끌고 나갈 수는 없음을 깨닫고 허리를 숙였다.
"에릭?"
"조용히 해." 속삭임은 나지막했지만 어조는 엄격했다. "가만 있지 않으면 키스해 버릴 테니." 그리고 그대로 등과 무릎 밑에 손을 넣고 힘을 주었다.
"의원님! 지금," 프로정신이 넘치는 기자가 적어도 한 명은 있나 보군. 찰스를 안아든 에릭은 차가운 얼굴로 기자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의원님께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방금 전 보셨죠? 더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그 기자는 좀더 질문을 할 듯한 태세였으나 갑자기 멍한 얼굴이 되어 가만히 둘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며 의아해 하던 에릭은 슬쩍 찰스 쪽을 내려다보았고, 이를 꽉 악문 찰스가 관자놀이에 한 손을 얹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서 두통이 멈췄군."
찰스는 그대로 차에 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를 꽉 악물고만 있었다. 찰스를 차에 태운 에릭은 운전수에게 신호를 보냈고, 차가 조용히 블록 밖으로 미끄러질 때가 되어서야 찰스가 입을 열었다.
"에릭."
"왜."
"...미안해."
에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찰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리고 짓씹은 자국이 아직도 역력한 입술. 그 푸른 눈은 너무나 비참해 보였다.
"뭐가."
"참을 수가 없었어."
폭발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은 뇌엽 절제술 얘기였다. 에릭은 찰스가 그 문제에 대해 얼마나 격노했었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자신이 인간의 뇌와 연관된 힘을 갖고 있었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기도 했겠지만,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기 십상인 그런 위험한 수술을 '아이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다는 점에서 그는 더욱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었다.
'그건 수술이 아니야, 난 뇌엽 절제술을 당한 사람을 본 적이 있어. 에릭, 그건 정신적 도살이야!'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해해."
분노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격노, 폭발, 때로는 하지않을 수 없는 파괴행동. 이제껏 참고 참고 또 관대하게 참아온 찰스로서는 더욱 터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겠지.
"최악이지?"
"멋진 최악이지."
찰스는 에릭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에릭 렌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기왕이면 좀더 폭발시켰으면 좋았을 거야. 돌연변이 대표로서 말이지." 찰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 사실 그래서야."
"......"
"모두 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어. 두려움에 가득차서 말이야. '괴물!'이라고."
"보인다는 건 괴로운 일이군."
에릭은 조용히 찰스의 손에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우고 조용히 얽는다.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찰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말해주었다. 그가 동의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부러 얘기하는 것이다.
"그만두고 싶으면 말만 해. 인간들은 지금의 지위를 누릴 자격이 없어."
"오, 에릭-"
"이전에 얘기했잖아. 그들은 어리석어."
손을 단단히 얽어 온다. 찰스는 눈을 감고 에릭의 체온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고마운 친구, 언제나 힘들 때마다 악역을 자처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괴롭고도 기쁜 일이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겨낼 기회를 동시에 주는 것이다. 이렇듯 늘 기대를 배신하는 이에게.
"물론 내 답은 알고 있겠지."
"아직까지는 말이지."
에릭이 찰스의 뺨에 조용히 입맞췄다. "다시 얘기하지만, 그만두고 싶으면 말만 해." 찰스는 간신히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자네 때문에라도 포기할 수가 없군."
키스를 돌려주며 찰스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이 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푸른 잿빛 눈동자가 의아한 기색을 떠올린다. 팔을 둘러 등을 감고 도닥였다. 참으로 묘하지, 자네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난 늘 버틸 수 있어.
"일단 다시 한번 노력해 보자고. 그나마 우리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거든."
"절멸을 위해 노력하는 어리석은 인간들 말이지."
"에릭!"
찰스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호흡을 골랐다. 기자들의 기억에는 약간의 조작을 가해 두었고 장비는 에릭이 망가뜨렸으니, 운만 좀 따라 준다면 언론은 비교적 조용할 것이다. 적어도 그 기자들이 장비를 수리하고 다시 달려들기 전에 이 어리석은 법안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아마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차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찰스는 에릭을 놓아주고 앞을 응시했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계속>
- 사실 진짜 제목으로 삼고 싶었던 것은... You can protect yourself only by protecting the others. 너무 길어서 아웃됐죠. 돌연변이 정책 및 인간들에 대한 찰스의 생각이었어요. 그 주체가 누구이건 누군가가 구분되고 차별당하는 순간 저도 당하게 되는 거죠. 으음. 뭐 그렇습니다.
- 뇌엽절제술은 1970년대쯤 가면 극히 희귀해집니다만... 한때 저게 치료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호러블. 지금 병원에서 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사람 폐인되는 걸로 유명한 수술이죠.
- 그러고 보면 엑스맨 2에서 스트라이커 쥬니어의 머리 흉터를 보건대 이 짓 당한 듯...
- 정치계로 진출한 찰스, 이상은 다르지만 그를 잠시 돕고 떠나려다 인생 틀어잡힌 에릭입니다.
- 찰스는 뮤턴트를 지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자신이 돌연변이인 건 숨기고 있어요 :D
- 연작입니다. 근데 이번 글에는 리퀘가 하나도 안 들어갔네요...
어떤 일은 절대 사라지지 않지만 어떤 일은 너무나 쉽게 지워진다. 보통은 사라지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안다고 한다. 꼭 그렇지는 않다. 정작 사라지고 났을 때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만, 그럼에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
찰스는 일상 생활에 빠르게 복귀했다. "레이븐에게 엄청나게 혼났어" 라고 완전히 기가 죽은 얼굴로 어깨를 움츠리는 찰스에게 에릭은 거의 냉혹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딱 한 마디만 했다. "당연하지." 그에 대한 그의 의사는 확고해서, 그 말을 듣고 장난기를 발휘해 부러 미간을 찌푸리며 '아야!' 하는 동작을 취해보인 찰스에게 아예 덧붙이기까지 했다.
"나도 이놈의 팔만 아니었으면 한대 쳤을 거야."
물론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기에 찰스는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총격은 에릭에게도 흔적을 남겼다. 허벅지와 어깨의 뼈를 고정하기 위해 철심을 박아야 했고 - 괜찮아, 나랑 어울리지 않아? - 몇개월간의 고된 재활기간을 거쳐야 했다. 찰스가 최고의 물리치료사들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릭의 어깨만은 완전히 고쳐낼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오른팔을 어깨 위로 들어올릴 수 없게 되었고,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에릭이 퇴원하는 날, 찰스는 중요한 의결 때문에 도저히 찾아올 수 없었지만 대신 레이븐이 차를 몰고 달려와 축하해 주었다.
"나도 찰스가 못 온게 안타까우니까 그런 얼굴은 하지 말지 그래?"
"아니, 이건 그 문제가 아니야."
"뭐?"
에릭은 그걸 모르겠냐는 듯 레이븐의 얼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동안 응시했다. 운전면허를 딴 지 6개월밖에 안 된 레이븐이 몰고 있는 새빨간 쐐기형 오픈카에는 민망하도록 선명한 녹색과 빨강색의 포인세티아 꽃다발이 가득했던 것이다. 금발의 늘씬한 여성이 그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은 실로 장관이었지만, 어쨌건 에릭으로선 거기 앉는 것은 실로 무리였다.
"레이븐, 그 꽃다발 치워."
"어머, 마음에 안 들었어? 예쁘잖아. 축하의 마음을 담았는데."
화사하게 웃자 눈부신 금발이 흔들리며 빛을 발한다. 선명한 햇빛이 빨간 오픈카 주위에 흩어지는 듯한 환상이 보일 지경이었다. 에릭이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는 아름다운 헤이즐빛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거기 앉아가느니 차라리 걸어가겠어."
"너무해, 에릭! 사실 이건 찰스의 부탁이었는걸. 장미로 하고 싶다는 걸 간신히 말렸어. 정말이야, 물어보라고!"
십중팔구 찰스가 농담으로 말을 꺼냈다가 레이븐이 정말로 하려 드니 놀라서 말린 거겠지. 에릭은 가볍게 한숨짓고 자동차 뒤쪽을 바라보다가, 비어 있는 레이븐의 옆자리를 응시했다. 일반적인 딱딱한 자동차 좌석과는 달리 부드러운 쿠션이 갖춰져 있고, 아직도 어깨에 통증이 남아 이는 에릭을 위한 것인지 목베개가 얌전히 놓여 있다. 말로는 저래도 환자라는 점을 생각해 준 것일 테지.
"신사 양반, 빨리 결정해. 저기 봐, 잘 생긴 젊은 의사들이 이 쪽을 보는 것 같은데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잖아."
에릭은 한숨을 푹 쉬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차 문은 레이븐이 열어둔 터였고, 차에 탄 다음 돌아보니 정말 이 쪽을 향해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돌아보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잘 생겼다'고 하기엔 눈 밑의 다크서클이 지나쳤지만.
"좋아, 잘 생각했어. 이제 돌아가자고."
에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좌석에 머리를 기댔다. 드디어 찰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간신히 마음이 놓였다. 깊이 숨을 내쉬고 눈을 감은 채, 신나게 재잘대는 레이븐의 수다를 들으면서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에게 집은 이 곳 뿐이라는 걸.
그날 저녁, 웨스트체스터.
"뭐라고?" 에릭은 차가운 눈으로 찰스를 노려보며 반문했고, 찰스는 그 시선을 차마 받아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더 속이 뒤틀린 에릭은 다시 한번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지금 그 말 다시 해 봐."
"에릭, 진정하고 들어. 이건,"
"진정하고 있어. 그러니까 다시 말해보시지."
목소리가 낮게 울려나온다. 빛깔도 온도도 얼음같은 눈동자가 찰스를 노려본다. 진정하고 있다지만 어디를 봐도 사실상 분노로 이글대고 있는 에릭 앞에서 잠시 침묵하다 숨을 들이킨 찰스가 말을 이었다.
"에릭, 이제 더이상 내 경호원 노릇을 할 필요는 없어."
"하."
"새로운 업체와 계약했어. 지금도 그들의 경호를 받고 있고. 더이상-"
"내가 필요 없다 이거지."
"에릭, 제발 이성적으로 얘기했으면 좋겠군."
에릭의 눈동자에 번개가 흘렀다. 그는 소파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고 곧장 찰스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을 찰스의 얼굴 앞에 바짝 들이대고 눈을 바라본다. 타오르는 시선을 피하는 찰스에게 에릭이 으르렁댔다.
"찰스 프란시스 자비에, 내 눈을 봐. 내가 이성적이지 않은 걸로 보이나?"
"에릭!"
"회피하지 마. 그 놈들은 자네를 지켜낼 수 없어. 인간들은-"
"자네도 인간이야!"
"그들은 널 지킬 수 없어. 케네디 꼴이 그렇게도 나고 싶은 거야?"
"그럼 넌!" 찰스의 외침에 거실의 공기가 쩌렁 하고 울렸다.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던 친구의 변모에 놀란 에릭에게 찰스는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넌 어떻게 되고 싶은 건데! 나 때문에 죽고 싶어?"
"상관없어."
"내가 싫어!"
에릭의 눈이 커졌다. "나 때문에 네가 다치는 게 지긋지긋해!" 찰스는 피를 토하듯 외치며 이 쪽을 향해 뻗어오는 손을 거칠게 쳐냈고, 그러고 나서야 그것이 오른팔이었음을 깨닫고 동요했다. 아직 뻣뻣한 관절 때문에 통증을 느낀 에릭이 자기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리고 짧게 신음하자 찰스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찰스-"
"맙소사,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찰스의 얼굴은 어느새 들어올린 양손에 감싸여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목소리에는 지독한 고통이 담겨 있었다.
"다 내 잘못이야-"
"왜 이래, 찰스!"
"에릭, 내가, 내 다리가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야."
찰스의 팔을 붙들고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려던 에릭이 그대로 숨을 삼켰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찰스는 여전히 눈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을 늘어놓았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 나왔고, 가끔 흐느낌 비슷한 것이 섞여 말이 흐트러졌지만 그래도 끊지 않고 계속 이야기한다.
"날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만둬. 내가...내가 내 행동의 결과로 불러들인 일이야, 에릭."
"찰스..."
"그리고 자네가 총에 맞은 것도 그 때문이고."
"아냐, 그건"
"지금은! 그냥 내 말을 좀 들어 줬으면 좋겠어."
천천히 손을 내린다. 붉게 달아오른 눈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만 결코 뺨 위로 떨어지진 않았다. 그런 얼굴을 하고, 벌개진 눈자위에 박힌 기묘할 정도로 새파란 눈이 에릭의 눈을 바라본다.
"자네가 부서져 가."
에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찰스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지금 이 말을 막아야 한다는 외침이 울리고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가 막고 있는 걸까? 아니, 아닐 것이다.
"지금은 오른팔이야. 다음은 어디일 것 같아? 내가 다치고 죽는건 상관없어, 내 행동의 결과니까. 하지만 에릭, 자네가 다치는 건 난 견딜 수 없어. 이번에 알았어."
"그건,"
"내가 미치는 걸 보고 싶어?"
최강의 텔레파시 능력자가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은 거야? 찰스가 속삭이듯 말했고, 에릭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는 전율했다. 이미 찰스는 그를 지키기 위해 결코 하지 않던 짓을 해 버렸다.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던 그 때, 아마도 미칠듯한 괴로움을 느꼈던 것이리라.
"에릭, 부탁해. 제발 내게서 떠나 줘. 경호만이라도 그만둬 줘, 제발."
그리고 이러한 결론을 낸 것이겠지. 에릭은 조용히 찰스 앞에 무릎을 굽혀 눈 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어 지금은 무릎에 힘없이 놓인 양 손목을 붙들었다.
"에릭."
잠시 그 손목을 바라보다 찰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의혹에 찬 듯 그의 이름을 부르는 창백한 얼굴에는 불안과 절망과 희망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다.
"찰스, 내 말 잘 들어."
에릭의 눈동자는 여전히 얼음같았다. 때로는 믿을 수 없을만큼 부드럽고 따스한 눈이기도 했지만, 지금만큼은 거의 냉혹하다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강한 의지과 냉정함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자네가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붙들린 손목이 아파올 정도로 손에 힘을 가한다. 반사적으로 뿌리치기 위해 힘을 가했지만 독수리 발톱처럼 파고든 손가락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당황한 찰스의 눈 바로 앞에 에릭의 얼굴이 다가왔다. 깜짝 놀라 눈을 감아버리는 순간, 에릭의 입술이 닫힌 눈꺼풀에 머물렀다. 그리고 바로 입술로 내려와 비집어 열고 혀가 들어온다. 키스를 마친 에릭은 찰스의 붉은 입술을 가볍게 혀로 쓸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난 널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게 아냐."
"......"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어. 곁에 있을 거야."
찰스는 절망에 휩싸여 눈을 감았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그 안 깊은 곳에서는 에릭의 선언을, 그 속에 번득이는 집착과 애착을 기뻐하는 뭔가가 있었다. 소름끼치게 싫지만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감정.
"에릭, 제발-"
"정 떼어내고 싶으면 내 뇌를 망가뜨려."
이번에는 찰스가 숨을 들이킬 차례였다. 에릭은 꽉 붙들고 있던 찰스의 두 손을 놓아준 후 이번에는 찰스의 얼굴을 붙들었다. 절대 고개를 돌릴 수 없도록 붙들고 바짝 얼굴을 들이댄 후 하나 하나 새기듯 말한다.
"그러기 전에는 꿈도 꾸지 마."
"......"
"자넨 내 거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실제 심장을 직격했다. 그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고 작게 신음을 내뱉자 다시 한 번 에릭의 입술이, 이번에는 목에 와닿는다. 아니, 입술이 닿은 것은 잠시일 뿐이고, 곧 그의 이가 살을 집어 노골적인 의도를 내보이며 세게 물었다. 고통에 겨운 목소리가 울리자 만족한 듯 자신이 남긴 자국을 핥고서 물러난다.
"에릭, 지금"
"사랑해."
찰스는 눈을 감았다. 지금껏 고여 있던 뜨거운 것이 간신히 뺨에 서느런 냉기를 남기며 흘러내렸다.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그 눈물에 닿아왔고, 그 감촉에 몸서리치며 찰스는 눈앞의 남자를 끌어안았다. 당해낼 수가 없다. 어떻게 해도 그를 당해낼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한 가지 뿐이었다.
"더 이상 다치지 마."
남자의 몸이 흔들렸다. 웃음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이는 말을 들으며, 찰스는 다시 한번 왈칵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여러분, 맥퀸 감독에게 감사합시다.
그 영화에 게이섹스신 나온대요(......) 그것도
바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원나잇 하는 장면으로!!! 탑이냐보톰이냐 어디건 좋다만
아 입이 벌어져서 주체가 안돼 이거 어쩔 거야아;;; 한국에서는 삭제되거나 검열될 테니 아마존에서 사야 할 듯?!
현재 몹시 평이 좋다고 하네요. 맥퀸 감독, Hunger에서 마이클 파스벤더를 도장찍으신 듯. Dangerous Method와 함꼐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두근두근...
영상은 첫 2분은 인터뷰와 포토콜이고요, 클립은 2분 이후부터 시작이예요. 아주 짧지만 마음에 드는 장면입니...
베니스 영화제 사진도 입수하고 있는데, 우아한 비고씨와 웃ㅇ면 빙...빙...빙ㄱ.... 가 되는 (아놔 나 팬인데 ㅠㅜ ) 파스벤더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좋더군요. 비고씨가 많이 이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뱅상 카셀 씨는 물론이고요....
구입해야 할 DVD가 계속 늘어날지도 모르겠어요...
암튼 이 영화, 첫 시작 2분간 올누드로 나온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검열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