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영화 배경입니다만 저는 영화 감상 1번밖에 못했습니다. 오류 난무할 겁니다. 그냥 AU로 쳐주세요.
2. 단편의 한 조각이니 단편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조각글이군요. 빨리 이어서 완성하겠습니다.
3. 제목은 독일어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모이라는 펜 끝을 질근질근 씹으며 잠시 침묵했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정중하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가 작전 계획의 어디쯤에서 눈을 멈추고 고민에 빠졌는지는 굳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에릭을, 그 자와 직접 맞닥뜨리게 하려구요?"
"그건 에릭과 처음부터 약속했던 일입니다."
"별로 현명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교수님."
"이미 그 점에 대해서는 함께 의논해 봤어요. 그가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기로 했죠."
"뭘 극복하는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종의 비웃음까지 실려있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전히 불신에 찬 시선이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수 있어요, 모이라. 우리에겐 더 큰 목표가 있고, 에릭은 사감으로 이 작전을 어긋나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말하고 있는 도중에 이미 나는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내 설득은 하등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리란 사실을 확신했다. 굳이 레이븐의 독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여성의 감정이란 내가 인식할 수 있다고 해서 임의대로 컨트롤이 가능한 그런 물건이 아니다. 차라리 감정 자체에 손을 대어 버리는 편이 조금 더 쉽지만, 그 부작용 역시 위협적이긴 매한가지라 나는 대체로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을 택하곤 했다.
"저도 그가 자기 자신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예요. 차라리 그 반대지요."
"정확히 설명하시기가 어려운 거라면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모이라가 좀더 매서운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지만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았다. 그럼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하던지.
"에릭이 우리가 가진 카드 중 가장 강하다는 건 나도 인정해요. 하지만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 투입하기엔 너무 불안정한 카드기도 하죠. 그가 이 작전 중 무슨 사고를 친다고 해도 난 별로 놀라지 않을 걸요."
"이 작전은 그를 안정적인 카드로 만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만."
내 목소리가 뚜렷하게 무뚝뚝해졌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에릭이 내 친구라는 사실에 앞서, 신뢰할 수 없는 자보다는 신뢰하지 않는 자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는 내 신념 문제기도 했다. 모이라 역시 내 말투를 느낀 듯 안색이 조금 달라졌다.
"교수님은 정말로 이 작전이 끝나도 그 사람이 우리 편으로 남을 거라고 믿어요?"
"당연하죠."
"이 작전이 끝나면 더 이상 그가 우리와 함께 할 이유가 없잖아요. 처음부터 떠나려던 사람을 그 핑계로 간신히 붙들었다고 나한테 무용담처럼 자랑한 건 교수님이었어요."
"첫째로 그러니까 나는 더더욱 끝까지 에릭에게 신의를 지켜서 작전에 참여시켜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동안 에릭도 분명히 변했다는 걸 이젠 좀 알아주지 않겠어요?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이제 에릭도 처음과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단 말입니다."
"아, 그래요?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그의 의자는 비어 있네요."
모이라가 입술 끝을 찌그러뜨리며 펜 끝으로 빈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매번 모이라가 찾아올 때마다 에릭에게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해 줄 것을 종용했지만 그가 그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우리를 신뢰하지 않아요."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죠."
당신들, 이라고 입 속으로 되뇌며 모이라가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이 매우 잘 보였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은 무시하고 넘기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좋아요. 어쨌든 이 작전은 우리가 협력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해 볼 수 없는 거니까 어쩔 수 없겠죠. 다만 이건 잊지 마세요, 교수님. 난 한 번도 그가 정말로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는 믿은 적이 없고, 이렇게 경고도 했어요."
나는 결국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아, 모이라 여신의 신탁을 카산드라의 예언인 양 그리 겸손하게 말씀하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그대로 이루어질 테니. 차라리 그럴 바엔 도대체 왜 그런 에릭이 진작에 배신하지 않고 지금까지 여기에 늘러붙어 있는지도 미욱한 인간에게 좀 설명해 주시지 그래요? 신들이란 항상 인간에게 수수께끼만 던지고 답을 주지 않아서 문젭니다."
"설마 그걸 몰라서 나한테 묻는 건 아니죠? 당연히 당신 때문이잖아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순간 멍해진 내게 모이라는 날카롭게 한 번 더 몰아쳤다.
"물론 그 역시 혼자서보다는 우리와 같이 움직이는 게 훨씬 승산이 있다는 정도는 계산하겠죠. 그런 쪽으로는 충분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작자니까. 하지만 결국은 당신 때문이라구요. 당신이 우리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으니 그도 그렇게 하기로 한 거죠."
나는 솔직히 그 말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굳이 그 아연함을 숨기지도 않았다. 서류를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모이라가 한숨을 쉬며 나를 내려다 보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바로 '당신 때문에' 함께 움직이고 있다구요. 솔직히 교수님 본인이 여태까지 그걸 몰랐다는 표정으로 지금 날 올려다 보고 있는 게 좀 충격적인데, 그렇다면 당신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더 던지고 가죠. 교수님은 대체 어느 쪽을 '우리' 라고 생각하고 있죠? 교수님 본인은 대체 어디 소속이예요?"
그리고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려 나가버렸다. 아마 그 편이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며칠이 지나도 그녀가 남기고 간 질문에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으니까. 사실 그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나는 훨씬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