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3. 15:32

해야 할 일이 우후죽순으로 쌓이다 보니 질려버린 나머지 죄다 배를 째버리고 그저 잉여한 나날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이래서야 연구소 개설에 한 표를 행사한 의미가 전혀 없군요. 하루종일 생각을 굴리는 주제에 연구소에는 하다못해 잡담 하나 못 올리고 있으니.

헌데 그게 참 어렵단 말이지요. 물론, 애초에 오독이 아닌 이상 관객의 해석에 맞고 틀림은 없으며 서로 다른 해석 사이에 감히 우열을 논할 수도 없습니다. (그 권리는 심지어 원작자에게도 없어요) 100명이 영화를 봤으면 100명은 모두 영화에 대해 나름의 감상과 나름의 주장을 펼쳐놓을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죠.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알면서도,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묘하게도 '반드시 정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미묘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돼요. "들어보니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구나" 따위의 한가한 소리가 먹힐 리 없다는 느낌이 들어버린단 말입니다.

아마도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둘이 '무엇이 정답인지를' 놓고 얼마나 가열차게 대립했는지를 두 시간 내내 지켜본 관객의 가장 솔직한 감상인 것 같습니다. 선천적으로 뛰어나면서 후천적으로 단련되기까지 한 강한 정신의 소유자 둘이 각각 자신의 최선을 다해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친구를, 동료를, 동생을, 거동의 자유를, 사랑하는 애인을, 발군의 패션센스를... 그만합시다. 슬프니까) 이 악물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지켜본 거죠. 그에 대해 도저히 함부로 누구의 생각이 짧았다거나, 누구의 실수였다거나, 누가 태도를 바꿨어야 했다고 말할 수 없긴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나 어렵고 아프게 선택한 길 중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정작 나는 선택하지 않고, "둘 다 일리가 있는 듯" 이라고 말해버리는 거야말로 가장 비겁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니 엑스맨에 관련해서는 현재 스코어 머리를 싸안고 입을 다물 수밖에요. 저는 아직도 이 팬픽을 제가 대체 어떻게 마음을 잡고 굴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감이 전혀 안 오고 있습니다. (웃음) 이하 번호 붙여 정말 두서없는 잡념이나 몇 줄 휘갈겨 보죠.


이 주절주절한 잡소리를 꾹 참고 끝까지 보셨으면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인문학도의 입장에서 이 부부싸움의 승기는 처음부터 찰스가 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긴 합니다. 다만 이건 제가 뼛속까지 문과이기 때문이고, (이들이 대립하는 핵심이 DNA에 있는 이상 반드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또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뭐, 그건 다음에 제가 알고 있는 수준의 조악한 잡담을 한 번 더 붙이던가, 아니면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신 어느 투명하신 분이 (물끄럼) 설명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모쪼록 후자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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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lo-i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