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우후죽순으로 쌓이다 보니 질려버린 나머지 죄다 배를 째버리고 그저 잉여한 나날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이래서야 연구소 개설에 한 표를 행사한 의미가 전혀 없군요. 하루종일 생각을 굴리는 주제에 연구소에는 하다못해 잡담 하나 못 올리고 있으니.
헌데 그게 참 어렵단 말이지요. 물론, 애초에 오독이 아닌 이상 관객의 해석에 맞고 틀림은 없으며 서로 다른 해석 사이에 감히 우열을 논할 수도 없습니다. (그 권리는 심지어 원작자에게도 없어요) 100명이 영화를 봤으면 100명은 모두 영화에 대해 나름의 감상과 나름의 주장을 펼쳐놓을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죠.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알면서도,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묘하게도 '반드시 정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미묘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돼요. "들어보니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구나" 따위의 한가한 소리가 먹힐 리 없다는 느낌이 들어버린단 말입니다.
아마도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둘이 '무엇이 정답인지를' 놓고 얼마나 가열차게 대립했는지를 두 시간 내내 지켜본 관객의 가장 솔직한 감상인 것 같습니다. 선천적으로 뛰어나면서 후천적으로 단련되기까지 한 강한 정신의 소유자 둘이 각각 자신의 최선을 다해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친구를, 동료를, 동생을, 거동의 자유를, 사랑하는 애인을, 발군의 패션센스를... 그만합시다. 슬프니까) 이 악물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지켜본 거죠. 그에 대해 도저히 함부로 누구의 생각이 짧았다거나, 누구의 실수였다거나, 누가 태도를 바꿨어야 했다고 말할 수 없긴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나 어렵고 아프게 선택한 길 중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정작 나는 선택하지 않고, "둘 다 일리가 있는 듯" 이라고 말해버리는 거야말로 가장 비겁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니 엑스맨에 관련해서는 현재 스코어 머리를 싸안고 입을 다물 수밖에요. 저는 아직도 이 팬픽을 제가 대체 어떻게 마음을 잡고 굴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감이 전혀 안 오고 있습니다. (웃음) 이하 번호 붙여 정말 두서없는 잡념이나 몇 줄 휘갈겨 보죠.
길고 읽기 어렵습니다.
1. 찰스에 대해 제가 잡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완고함입니다. 이미 완결되어 있는 존재의 견고함. 그는 누구보다 깊은 이해력과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기에 결과적으로 절대 변화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변화시키기 쉬운 사람은 사실 배타적이고 편협한 사람이예요. 편협하다는 건 어떤 특정하고 단호한 자기만의 기준 아래 모든 사물을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아주 작은 거슬림도 그의 단호한 세계에는 커다란 위협이 되고,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그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편협한 사람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그 기준에 변화를 주는 거죠. 그 기준만 바뀌면 그들이 보는 세상 자체가 달라지니까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언제나 놀랄 만한 변화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일 수 있어요. 오히려 변화하기 힘든 것은 가장 온건하고 어떤 의견에도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 쪽입니다. 그들의 세계는 새로운 장애에 의해 위협받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온갖 충돌과 변화의 시도들을 자신의 세계 안에서 자연스러운 구성 요소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으니까요. 온갖 다양한 기준과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의 세계관이 변화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퍼클에서 찰스는 거의 일방적으로 에릭을 변화시킨 셈이고, (놀랍게도) 에릭은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에릭은 자신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던, 앞으로도 결코 변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했고, (말하자면 상호 공정의 원칙에 기대어) 찰스에게 너 역시 이 지점에선 나를 위해 변화해 달라고 요구했죠. 문제는 그것이 이 살아있는 톨레랑스의 화신에게 있어 단 하나의 불가침 영역, 언톨레랑스였다는 점입니다. 필연적으로 그 요청은 거부당했고, 퍼클에 한정하자면 변화라는 벡터에 있어 에릭은 일방적으로 당했습니다. 전 그 때문에라도, (무려 하반신 마비에도 불구하고) 찰스가 에릭 때문에 뭔가를 손해봤다는 생각은 하기가 어려워요. 찰스가 에릭에게 한 짓은 (그 막대한 영향력과 무지막지함에 있어 모두)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패션 센스 얘기가 아닙니다)
2. 하지만 그렇다면 에릭의 존재는 찰스를 변화시킬 수 없었던 거냐, 라고 한다면 단호하게 그럼 내가 이 커플을 왜 미냐고 대답하겠습니다. (...) 다만 찰스와는 전혀 달리, 에릭은 그야말로 자기 자신은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찰스에게 스스로의 존재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각인시켰죠. 어느 하얗고 악랄하신 존잘님의 평을 빌어, 에릭은 찰스에게 있어 최초의 죽음입니다. 완성된 존재를 영원히 변화시킬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수단이죠. 에릭은 찰스에게 스스로가 살해당하고 파괴당할 가능성을 최초로 각인시켰고, 그것은 그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퍼클의 다음 편이 어떻게 풀릴지는 아직 감도 안 잡히지만, 저는 에릭이 보여준 이 무력한 자기파괴의 가능성에 찰스가 얼마나 살떨리게 매혹당할 수 있는지를 상상만 해도 입가에 침이 고입... 이게 아니고, 찰스는 타로카드로 치면 분명히 The World 이니까요. 완벽한 존재에게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법을 인류가 아직 그리 많이 찾아내지 못한 만큼, 이것은 찰스가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변화이자 자기 구원일 가능성이 높은 겁니다. 그러나 사실 당사자인 에릭은 이거 알기는 할까 몰라. 하긴 대충 나이먹은 다음에는 깨닫고 서로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아아 무섭군요.....
3. 제 기준이긴 한데, 해변에서의 이별씬은 쩔어주는 연애담이기에 앞서 이후 이어질 그 길고 긴 정당싸움의 장대한 첫 포지셔닝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롭습니다. (물론 제 연애담 취향 자체가 원래 정당싸움을 좀 끼얹어야 좋아하긴 합니다) 그 직전까지 찰스와 에릭은 "핍박받는 뮤턴트" 라는 공동체에 함께 속해 있었죠. 한 명의 "핍박받는 자"에 불과했던 에릭의 정체성을 "뮤턴트"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끌어올린 것이 다름아닌 찰스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에릭은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눈을 돌릴 계기를 얻었죠. (퍼클에서 찰스가 거둔 최대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그 결과가......) 하지만 해변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공동체가 사실 두 가지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그 성향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그 순간 에릭이 택한 것은 찰스가 정의해 준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 "뮤턴트" 였습니다. 에릭은 그들만이 진정한 자신의 형제(Brotherhood)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단을 하나로 뭉치는 방법으로 타 집단에 대한 적대를 택한 건 에릭의 비범한(...) 성장 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우 실용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이기도 하죠. (이 방법을 가장 잘 써먹은 국가의 좋은 예로 미합중국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최초의 형제 찰스는 그를 향해 "우리는 다르다" 라고 못박고 말았으니...... 찰스의 선택은 결코 뮤턴트가 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그에게 있어 인간과 뮤턴트는 다른 종도 아니니까요. 돌연변이라고 해서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니, 그의 목표는 모든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일 뿐입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건 핍박받는 자를 구하고 전체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거였어요. 따라서 에릭이 "남을 핍박하는" 뮤턴트의 길을 택한다면 그들은 함께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에릭이 그의 목표에 다가설수록 도리어 찰스와는 멀어지겠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조화와 균형을 위해, 찰스는 이제 X-Man을 길러낼 겁니다. 결코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상생을 위해 싸우는,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모두와 싸우게 되는 X-man을요. 제가 늘상 민족주의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힘의 유무라고 주장하긴 했습니다만 (역사 서술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약한 자의 민족주의를 선, 강한 자의 민족주의를 악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걸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고 일목요연하게 구경할 수 있는 경우는 또 처음 봤어요.
이 주절주절한 잡소리를 꾹 참고 끝까지 보셨으면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인문학도의 입장에서 이 부부싸움의 승기는 처음부터 찰스가 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긴 합니다. 다만 이건 제가 뼛속까지 문과이기 때문이고, (이들이 대립하는 핵심이 DNA에 있는 이상 반드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또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뭐, 그건 다음에 제가 알고 있는 수준의 조악한 잡담을 한 번 더 붙이던가, 아니면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신 어느 투명하신 분이 (물끄럼) 설명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모쪼록 후자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