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1. 13:54

에릭이 예쁩니다, 너무 예쁩니다. 아니 남자가 눈이 저리 예뻐서 어디 쓴대요, 찰스도 물론 예쁩니다만 유독 이 영화에서 에릭이 눈을 파르르 떠는 장면이나 내리뜨는 장면이 많아서 사람 심장을 들었다 놓는군요. 퍼스트 클래스가 2, 3이 만들어진대도 이미 '완성된' 매그니토는 저런 표정을 잘 안 보여줄 테지요. 아 아쉬워라. 

사실 에릭 배우의 생김새는 오히려 바늘로 찔러도 안 들어갈 것 같아 보이는 구석이 있죠. 그런데 바로 그래서, 이 남자가 한없이 심약한 모습을 보일 때, 약점을 노출할 때 완전 꽂히는 겁니다. 강한 짐승이 무방비한 모습을 보일때의 갭모에.

그에 비하면 찰스는 안정된 모습을 많이 보여줘요. 원래 배우 성격은 굉장히 쾌활하고 장난기 넘쳐 보이는데 진중하고 치분한 역할을 딱 잡아줘서, 에릭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중심 역할을 해 줘요. 그런데, 사실 그런 찰스가 - 해변 장면 제외하고 - 정말 환희에 들떠 침착성 따위 날려 버리고 기뻐했던 장면이 있다면, 바로 세리브로 가동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면, 꼬꼬마 시절부터 찰스 자비에는 늘 다른 뮤턴트들을 만나길 원했어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건 분명히 '혼자' 가 되는 겁니다. 일반적인 인간들과 대화를 할 때조차, 그는 그들에게서 돌연변이적인 유전기질을 찾아내 버려요. 헤테로크로미아, MCR1돌연변이, 그건 '고립'되고 싶어하지 않는 기질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난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고립된 존재가 아냐, 우리는 모두의 일부고 함께 하는 거야. 그런 그에게 세리브로를 통해 세상의 돌연변이들을 만나며 살펴보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기쁨이었을 거예요. 세리브로에 대한 개념을 들었을 때 에릭이 한 말, '만일 그들이 드러나길 원치 않으면?' 이라는 말에 대한 고려는 거기 없어요.

네 사실 세리브로는 - 그 연구소 소장은 나름 CIA가운데에서는 제일 순수하게 돌연변이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 얼마든지 통제기구가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었죠. 그건 '돌연변이'라는 말을 단순한 몇가지 명사로 대체해 보면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게이, 유태인, 빨갱이, 그렇죠? 그것을 다루는 자가 악의를 갖고 움직이는 순간 정말 지옥같은 도구가 된다는 건 엑스맨 2편에서 자비에 스스로가 입증한 바 있죠.

에릭이 찰스를 만나고서야 "혼자가 아니다" 라는 걸 납득했다고 하면, 찰스는 세리브로를 쓰고서야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본질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여기서부터 이미 이 둘의 동거에는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거죠. 에릭에게 찰스는 절대입니다. 날 이해해 주고 알아주는 전부죠, 하지만 찰스는 좀더 넓은 것을 바라볼 수 있어요. 에릭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지만 많은 소중한 존재 중 하나입니다. 비중은 좀더 컸을 거예요. 하지만 전부가 아니라 "전부의 일부"라는 것. 그건 분명 둘의 미래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부분이죠.

그렇다고 결별의 책임이 찰스에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선택은 둘 모두의 것이었고, 둘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건 서로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해 버렸으니까요. 

사족인데, 그 연구소 소장님의 대사 중 한 가지가 자막에서 너무 간단하게 처리되어 버려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 괴물freak"이라는 스트라이커의 말에 대한 답이었죠. 그걸 자막에서는 그냥 유능한 사람들이라고만 말해버렸는데, 원래 대사는 "그 '괴물'들은 헌신적이고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였어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직후 아자젤에게 살해당해 버리죠. 뮤턴트 제국을 만들려던 쇼우는 뮤턴트에게 가장 호의적인 사람을 죽여버린 겁니다. 슬프게도, 아마 에릭도 그 전철을 밟을 것 같네요. 두 과격파 사이에서 먼저 죽어가는 건 늘 화해의 여지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건 역사가 입증하는 사실이니까요.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2) 2011.10.07
X맨에 관한 철학적 망상  (3) 2011.08.09
최초의 잡담  (2) 2011.07.13
호랑이를 천으로 가려서야 웃기는 일이지  (4) 2011.07.05
우월감과 지배  (2) 2011.07.0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