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릭찰스에릭, 쇼우에릭 기반에 쇼우찰스까지 나갈 듯한 19세기 막장물입니다.
* 일단 쇼우네가 막장가족.
* 이렇게 독백체를 길게 써본 것이 참으로 오랜만인 듯 합니다.
* 찰스, 에릭 등의 능력은 영화보다 아직은 많이 서투릅니다. 나이부터가 젊어요. 찰스 20~21세, 에릭 25세, 레이븐 16세
Case of Mercury 1~3
뜻밖의 말에 찰스는 놀란 눈으로 한동안 쇼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머리를 읽지 않는다 해도 이 남자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표정 어딘가에는 기묘하게 일그러진 듯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파악하고 감지해내기엔 지금 던져진 말의 충격이 너무 컸다.
"아들이요?"
"물론 친아들은 아니오. 허나 나는 그의 모친을 알고 있지. 흠, 알고 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군,"
그는 잠시 고개를 외로 숙이고 눈을 내리떴다. 고개를 흔들고 혀를 차더니 다시 찰스와 눈을 맞추며 말을 잇는다.
"좀 긴 얘기가 될 거요. 하지만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싶군, 들어주겠소?"
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칼을 던진 자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마당이니 그나마 쇼우가 던져주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이야기 속에 얼마나 진실과 거짓이 숨어있는가는 이제부터 탐색해 나가야 할 것이었다.
"혹시 뒤셀도르프에 가본 적 있소?"
고개를 저었다. 브랜디를 한 모금 더 마신 세바스찬 쇼우는, 옛 일을 떠올리기 위함인지 어딘가 먼 곳을 보는 시선이 되어 얘기를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도시요. 독일인들이 늘 그렇듯 쓸데없이 반듯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지. 하지만 그래 봐야 사람들이 늘 북적거리기 때문에 소란스럽고 지저분하기는 런던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오. 빈민들이 사는 곳이 있고 부자들이 사는 곳이 있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지. 다만 나는 그런 곳에서도 꽃이 필 수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소.
꽃이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간단하오, 아주 특별한 재능을 두고 얘기하는 거요. 마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그런 표정 짓지 마시오. 당신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고, 나 또한 알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거요. 분명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내 머리를 헤집어도 좋다고 말했지 않소. 그 선언을 철회할 생각은 없으니 부디 원하는 대로 하시오.
어쨌건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찰스 프란시스 자비에 군, 당신과 같이 독특한 힘을 가진 자들이 당신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게 좋다는 얘기요. 나는 오래 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보아왔고 또한 찾아 헤매왔소. 그들의 힘은 실로 말할 수 없이 다양하지. 어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비밀을 알아낼 수 있소. 또 어떤 사람은 원하는 곳에 눈 깜빡하는 사이 도달할 수 있지. 하늘을 날 수 있는 자, 심지어, 만일 미신에 빠진 이들이 본다면 악마라고 부를 법한 힘을 가진 자도 있소.
지금 당장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니 꽤 담이 센 사내거나 혹은 내 말을 제대로 인정할 모양이군. 마음에 드는 태도요. 그렇소. 나는 그런 이들을 계속 찾아다녀 온 것이오. 독일부터 시작해서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에서 프랑스를 거쳐 여기까지 왔지. 나중에 당신이 원한다면 그 결과 날 돕게 된 이들을 소개시켜 줄 수도 있소.
각설하고, 내가 그런 이들을 찾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오. 아까 '꽃'이라고 말했지요? 그들은 모두 위대한 선물을 받은 자들이오. 자연에게서, 혹은 신에게서, 인간이 뭐라고 부르건 상관없는 어떤 절대적 존재 - 절대적 우연이라고 불러도 좋소! - 에서
그 힘을 받고 태어난 거요. 그것은 바로 증거요, 자비에 군,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 그들이야말로 미래의 인간인 거요. 주위를 둘러보시오. 기술, 과학, 모든 세상이 발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인간이라고 아닐 것 같소? 전기처럼, 기관차처럼, 인간들도 바로 이 시대처럼 새로운 단계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거요. 당신도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
허나 모든 이들이 당신처럼 운이 좋지는 못하오. 온 유럽을 돌며 내가 살펴본 바, 특별한 힘을 가진 이들, 재능을 가진 이들의 가문, 혈통은 전혀 일정치 않소. 그들은 극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기괴한 외모 때문에 놀라운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버려지기도 하지. 적어도 내가 찾아낸 '악마의 아이'중 둘은 분명 그런 '선물'을 받은 아이들이었다오. 슬프게도 하필이면 겨울날 태어나는 바람에 얼어죽은 시체만 보았을 뿐이오. 이해할 수 있겠소? 만일 목숨만 붙어 있었으면 무엇을 해냈을지 모르는 미래의 가능성들이 그런 식으로 무지와 미개에 물든 인류에게 죽어가야 했던 거요.
표정을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한 것 같군. 좋소, 나는 바로 그러한 아이들을 - 때로는 어른들을 찾아 전 유럽을 돌아다닌 거요. 다행히도 나는 돈이 많소. 이런 저택을 사는 것쯤 말편자 가는 일과 별반 다를 것도 없을 정도로는 있지. 그리고 나는 그런 이들을 기꺼이 돕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소. 아직 매우 적은 수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 적어도 내가 만난 이들은 모두 내 보호를 받아들였지. 나는 그들을 기꺼이 보호하며, 동시에 그네들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워 주기 위해 뭐든지 하고 있소.
서론이 길어서 정말 미안하고. 이제는...그렇소. 에릭에 대한 얘기를 해야지. 그 불행한 아이에 대해 얘기하기 전, 브랜디를 한잔 더 따라야겠소. 그렇지 않고서는 얘기하기 힘든 일이지.
에릭 렌셔, 그 아이는 뒤셀도르프 뒷골목에서 살고 있었소. 천출에 빈민이긴 했지만 부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없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있더군.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그저 신의 보살핌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사건 때문이었소. 당시 나는 사업 관계로 뒤셀도르프에 머물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도시였지만 별로 정착할 필요성을 따로 느끼지 못해 깔끔한 호텔을 골라 묵고 있었소. 그런 호텔에는 당신도 아시다시피 수많은 고용인들이 각종 일을 하며 돌아다니곤 하지. 호텔들은 아마 나름 그들의 평판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을 거요. 추천장이라던가 평판을 반드시 확인하겠지. 하지만 아마 거기에 약간 구멍이 있었던 모양이오. 손님 중 몇이 귀중품을 도둑맞았으니.
잘 알겠지만 그럴 경우 물론 기본적으로는 외부의 도둑을 생각하지만... 당연히 내부에서도 용의자를 찾게 되오. 뚜렷한 목격자가 없다면 그들이 누명을 쓰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 경우엔, 청소를 맡은 여급 중 하나에게 혐의가 쏠렸다고 하더군. 솔직히 말해 그녀가 범인인지 아닌지까진 알 수 없소. 어쨌건 그녀는 순순히 그 곳에서 쫓겨나거나 체포될 생각 따위 없었던 모양이오. 아직도 그 천박한 여자의 째진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군. 그녀는 힘껏 외쳤지. '그 녀석이야. 객실에 계속 들락거린다고! 난 알아, 그녀석은 마법을 부려. 어떤 걸쇠건 다 망가뜨려 버린다고!' 솔직히 그 내용을 들은 이상 그 곳에서 계속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게 되더군.
그 질문대로요. 그 아이가 바로 에릭이오. 키는 좀 큰 편이었지만 아주 소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었는데, 내가 들여다 본 것은 그 아이의 눈이었소.
자, 여기서 한번 간단히 질문해 보겠소. 만일 당신이 이 아이와 같은 처지에 속했다면 어떤 눈을 할 것 같소? 단순히 도둑 누명을 쓴 것이 아니라, '어떤 걸쇠건 다 망가뜨리는 사람'으로 몰리고 있소. 그것이 만일 당신이 꿈에서조차 상상도 못 했던 그런 힘이라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그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겠소? 분명 당황하겠지. 매우 크게 당황해서 어떻게든 변명을 하기 위해 애쓸거요. 그렇소, 그것이 일반적으로 누명을 쓴 사람들의 행동이오. 허나 그 아이는 달랐지. 그 눈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차갑기 그지없는 경멸 뿐이었소. 침착하게 눈앞의 여자를 노려보던 그 아이는 마침내 말할 기회가 주어지자 짧게 말했지. 내 귀여운 에릭은 그 때부터 대단한 녀석이었다오.
'제가 안 훔쳤어요. 아주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걸쇠가 망가진 적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 때문은 아니예요."
일체의 중언부언도 횡설수설도 없었소. 아이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어 버리더군. 얼음장같은 눈으로 고집스럽게 눈앞에서 마구잡이로 떠드는 그 천박한 계집을 노려볼 뿐이었소. 솔직히 말해서 그 아이가 겁을 먹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오. 꾹 다문 입에 불안한 기색이 있었으니까 말이지. 약간 떨고 있기까지 했소. 하지만 그래도 고작해야 열 서넛 정도밖에 안된 소년이 그런 상황에서 그 정도로 당당하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니겠소.
하지만 호텔 지배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오. 경찰을 부르면서 그 무능한 자는 소년을 도둑놈으로 취급하더군. 난 더이상 그 사태를 두고볼 수 없었소. 그래서 호텔 지배인에게 명령해 그 소년을 내게 데려오도록 했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묻지 마시오. 이제껏 사업을 해 오면서 쌓은 비법의 일환이라고 설명해 두지.
어쨌건 그러한 절차를 거쳐 나는 에릭을 간신히 만나볼 수 있었소. 몇가지 테스트를 거쳐 나는 그 아이의 '힘'이 금속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지. 그건 정말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소.
지금 내 말에 크게 놀란 것 같군. 그렇소. 에릭 렌셔는 바로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요. 그래서 그가 '던진' 단도가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벽을 거의 뚫어버릴 수 있었던 거요. 난 아직도 내 눈앞에서 쇠 공을 들어올리던 그 아이를 기억한다오. 그 아이와 함께 한 날들은 하루 하루가 모두 새로운 기쁨이었지. 물론 나는 다른 '아이들'을 길러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도 했소. 그들은 모두 제 나름의 유니크한 힘을 가지고 있었소. 하지만 에릭은 - 그 아이는 정말 특별했소. 그 아이는 마치 - 강해지는 것에 중독된 것 같았지.
처음엔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소.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의 부모는 그저 평범한 빈민이었으니까 말이오. 유태인들이었는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자들에게서 나의 에릭이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 그런 자들이었지. 하지만, 뭐 생각해 보면 거의 이천년 전에도 이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긴 하니까 넘어가도 될 것 같소. 유태인이란 쓸데없이 오만하고 너저분한 족속이지만 가끔 대단한 것을 내놓는단 말이지. 아무튼 좀더 흥미로운 주제로 넘아갑시다. 그 아이에게 금속이란 그저 가끔 이상해지는 사물에 불과했소. 가끔 구겨지고, 휘고, 고장나는 것 말이오. 나는 냉정하게 조사했고 - 그래서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확증해냈지.
어쨌건 좀더 재미있는 부분으로 들어갑시다. 그 해쯤 뒤셀도르프에서 에릭은 부모님을 잃었고, 나는 그 아이를 거두었소. 에릭에게는 몹시 미안한 얘기지만 그 아이는 족쇄에서 해방된 셈이었지. 그 후로 9년간 - 나는 그 아이를 아끼지 않고 후원하고 도왔소. 내가 만일 평범한 인간의 아이를 그 정도로 후원했다면 지금쯤 그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내 일을 돕고 있었을 거요. 사실은 내가 에릭에게 원한 것도 바로 그런 거였지. 내 아들, 난 그 아이를 거의 내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소.
미안하오, 내가 잠시 감정적이 된 것 같군. 사실 난 에릭이 언제부터 그렇게 뒤틀리게 됐는지 알 수가 없소. 그 아이는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오. 처음에는 그저 약간의 향수병 같은 것이었다고 믿었지. 그 별볼일 없는 부모, 그리고 그럭저럭 괜찮았던 그 뒤셀도르프에 대한 향수 말이오. 하지만 슬프게도 에릭은 지나치게 증오심을 키워가더군. 뭐라고 딱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아마도 과거의 자신에 대한 비틀린 집착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소. 빈민이었을 때 그를 위협하고 그의 힘, 그가 가졌어야 했을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대접을 했던 모든 것에 말이지. 그리고 슬프게도, 그 정점에 내가 있었소.
나도 이해가 잘 가지 않소. 왜 그 아이는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나를 증오하는지 말이오. 세간에 자랑할 생각은 없지만 누구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소. 나는 그 아이의 아버지나 다름없고, 지금도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아이를 그 너저분한 구석에서 구해와 당당한 능력자로 키워낸 것이 바로 나요. 아마도 극장에 숨겨 들어가느라 작은 단도를 골랐겠지만, 사실 그 아이는 달리는 마차의 축 정도도 간단히 부러뜨릴 수 있고, 총을 들이댄다 해도 산산히 부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오. 아마 그의 힘이 더 강해졌다면 대포도 그 앞에서는 아마 무용지물일 거요.
알겠소? 그럼에도 그 아이는 나에게, 이 아비에게 칼을 겨눈 거요. 아마도 그의 뒤틀린 과거가 그 정신을 아직까지 어지럽게 만드는 것 같소. 그렇소, 내 애정과 헌신을 족쇄로 생각하고 오히려 날 증오하는 거지. 나는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소. 내가 그 아이에게 잘못한게 없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그 모든 일이 바로 에릭을 위한 일이었다는 걸 그 아이도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난 진실로 그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소. 부모의 추억을 떨치도록 하기 위해 독일을 떠나서 비엔나로 갔지. 비엔나에서 스위스,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내가 어딜 가건 난 늘 내 어린 에릭을 데리고 다녔소. 그 아이가 당당한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모든 정성을 다 쏟았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의 뒤틀려 버린 마음은 계속 과거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요. 뒤셀도르프에서 부유한 사람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겪었던 굴욕적인 기억들, 가난, 억울함, 분노, 부모의 죽음...
빠리에서 우리는 헤어졌소. 사실 그건 헤어졌다고 말하긴 좀 그렇군, 정확히 말한다면 그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요. 상상이 가시오? 어느날 아침 호텔 밖으로 걸어나간 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심정을? 다른 모든 것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 곳에 꼭 있어야 할 아들이 없는 거요. 물론 아무리 격려하고 이끌어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는 그 아이에게 나도 지치긴 했지. 하지만 나는 그래도 믿고 기다렸소. 두 달이나 빠리의 별장에서 그를 기다렸지. 그리고 돌아온 것이 뭔지 아시오? 바로 나를 향한 살해 기도였소. 내가 키운 아들이 나에게 칼을 들이대더군. 엠마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 아들의 손에 죽었을 거요. 보아서 알겠지만 그녀도 그녀만의 힘을 가지고 있지. 내 아들과는 전혀 다른 힘이긴 하지만.
어쨌건 나는 깊은 비탄에 빠졌소. 굳이 수렁에서 건져놨더니 배신당했다는 식으로 너저분한 불평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소. 하지만 그는 내 아들이고, 감히 말하건대 내 걸작이오. 그가 내게서 멀어진 것만 해도 가슴이 아픈데 그 칼끝이 날 겨눈다고 생각해 보시오. 그 오페라 극장에서도 그는 바로 내 목숨을 노리고 극장에 들어왔지만, 그의 광기는 바로 당신 덕분에 실패로 돌아갔소. 그 때문에 당신까지 그 광기의 표적이 된 건 아닌지 걱정되지만, 당신이 내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오. 그래서 이 곳에 이렇게 초대하게 된 거요. 당신이라면 이 모든 일에 대해 알 자격이 있으니까. 그리고, 만일 그가 당신까지 표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내 책임이기도 하니 이 일에 대해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소.
무언가 묻고 싶은 표정이군. 어떤 질문을 해도 좋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나는 당신을 보호해 드리고 싶소이다.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진심이오. 그 아이는 아주 집요한 성격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당신에게 해를 끼칠 거요. 그래서 나는 이 일에 대해 당신에게 알리고 제안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소. 그 제안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은 다음 얘기하도록 하지."
어느새 브랜디 잔은 완전히 비어 있었고, 쇼우는 자연스럽게 유리장으로 다가가 크리스털 병을 꺼내 한 잔을 더 따랐다.
"제게도 한 잔 주시죠."
아까는 거절했었지만, 지금 막 알게 된 이 의외의 사실들을 제대로 정리해 보기 위해 한 모금 정도의 브랜디는 꼭 필요했다. 고개를 끄덕인 쇼우의 손에서 브랜디 잔을 받은 찰스는 잠시 연갈색 액체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타는 듯한 술기운이 목을 씻어내려가는 동안 그는 지금까지 들은 이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충격적인 건지, 아니면 그가 쇼우에게서 어떤 거짓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충격적인 건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다. 생각을 모두 읽어내는 것까지는 무리였지만 눈앞의 남자가 말한 것은 적어도 이 남자에게 있어 진실이었다. '에릭'이라는 이름을 언급할때 보이는 애정 또한, 그의 빈민 부모에 대해 얘기할 때 떠올랐던 희미한 경멸감과 조소만큼이나 진실했다. 다만 그의 진술에는 어딘가 모호한 데가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감별해내기는 어려웠다.
"별로 크게 질문할 것은 없습니다만, 그럼 그가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당신을 죽이려 하는지에 대해 짐작가시는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방금 말한 것이 전부요. 나는 성의를 다 했고, 그는 그 성의를 증오스러워하지."
"이렇게 말하면 무례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그 살의가."
"바로 그 말을 나도 하고 싶소. 인정하고 싶지 않소만 내 아들이 미치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은 뭔가 이상했다. 명백한 '거짓'은 아니었지만 쇼우는 그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 무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교묘한 화술로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정신의 손을 좀더 뻗어보려고 했지만, 아까부터 이 남자의 심중을 들여다 보려고 할 때마다 기묘한 뭔가가 거슬렸다. 무엇이라고 딱 집을 수 없었지만, 꼭 불에 그을린 유리창을 통해 실내를 들여다보는 듯한 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찰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제안하실 일이 무엇인지요."
쇼우의 얼굴에 다시 한번 미소가 퍼졌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저만이?"
쇼우가 천천히 몸을 수그린다.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가 찰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 딱딱하게 끊어가며 한 마디 한 마디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마치 이 말만은 절대 잘못 알아듣거나, 잊어서는 안된다는 듯, 그 말을 찰스의 정신에 새겨 넣으려는 듯.
"에릭을 붙잡아주시오. 그리고 나에게 데려다 주시오."
- 계속
새 스킨은 다 좋은데, 펼쳐보기 옆에 붙는 글 제목이 좀 작네요. 다음편에서 레이븐&에릭 등장입니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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