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계로 진출한 찰스, 이상은 다르지만 그를 잠시 돕고 떠나려다 인생 틀어잡힌 에릭입니다.
- 찰스는 뮤턴트를 지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자신이 돌연변이인 건 숨기고 있어요 :D
- 연작입니다. 이번 글에는 sian님의 리퀘스트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에릭은 시체 주위에 몰려드는 독수리들을 연상하며 최대한 그들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방 팔방에서 마이크와 카메라가 찰스를 향해 포문을 열었고 질문이 그와 함께 발사되었다. 창백한 얼굴의 찰스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자들은 그 닫힌 입에서 한 마디라도 더 들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자비에 의원님! 이번 하원에서 결의안이 어떻게 되리라 보십니까?"
"학부모회의 성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수학교의 설립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실제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찰스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렸고, 기자들은 신이 나서 질문을 퍼부어댔다.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찰스가 어떤 의미로건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걸. 에릭은 찰스의 입가까지 마이크를 들이댄 기자를 거의 칠 뻔 했지만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며 팔을 밀어냈다. 하지만 한 개의 팔을 밀어내면 두 개의 팔이 달려드는 형국이었다.
"통제되지 않은 능력은 위험한 것 아닙니까?"
"흑인 학교에서도 돌연변이 학생 입학 거부 운동이 일고 있는데 견해는?"
"각 사립학교에서 이미 돌연변이 입학 제한 교칙을 제정하고 있는데요,"
"학생의 돌연변이 여부에 대한 선별 조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휠체어를 쥔 손이 하얗다. 기자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입안된 법안에 대한 찰스의 반대 의지가 확고한 것은 그 자신이 바로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특수학교 설립안'이라고 하면 이름은 좋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사실상 "일반 학교에서의 뮤턴트 추방령"이다. 모든 청소년은 돌연변이임이 밝혀지는 즉시 일반 학교에서 나와 각 주에 세워질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선택이 아닌 추방, 차별의 법안화인 것이다.
자기 아이가 돌연변이 아이들에게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하던 학부모회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돌연변이 학생들을 '어린 괴물' 쯤으로 생각하던 교육계 또한 환영했다. 의원들 또한 지역 사회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돌연변이들보다는 절대다수인 '정상인'들의 편을 들고 싶어했다. 심지어 바로 얼마 전까지 그 자신들 또한 비슷한 차별을 받고 있던 흑인학교들마저 돌연변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찰스도 에릭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지금 의회에서 돌연변이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돌연변이인 자신들 뿐, 그리고 사회에서는 인권운동가들 중 소수만이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돌연변이 학생들의 신원은 비밀에 부쳐진다는데 문제가 있을까요?"
"대답해 주십시오!"
몇번이나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을 뻔 했다. 하지만 위험하다. 찰스 자비에 의원을 경호하는 에릭 렌셔가 '돌연변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그의 능력이 무엇인지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면 기자들은 오히려 신이 나서 다시 한번 에릭을, 그리고 찰스를 정치적 궁지에 몰아넣을 기사들을 써댈 것이다. '언론을 향한 협박인가? 뮤턴트의 공격!' 등의 싸구려 타블로이드지같은 제목을 달고서.
에릭은 최대한 기자들의 공세를 막아내며 다른 경호원들과 함께 찰스의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휠체어는 기자들의 몸에 가로막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기자들은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찰스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는 절대 놓아줄 기색들이 아니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에릭이 뭔가 하려던 순간, 한 기자가 치명적인 질문을 내뱉었다.
기자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찰스에 대한 기자들의 평판은 '입이 무거운 여우'였다. 그만큼 신중하게 절제된 화술로 자신의 의지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젊은 의원은 드물었다. 그런 그가 무려 격앙된 기색으로 외친 것이다.
"범죄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학생들입니다! 어린 학생들이요!"
"하지만 치명적인 돌연변이들이,"
푸른 눈에 번개가 흘렀다. 짓씹어 더욱 붉어진 입술 사이로 악물린 이가 보인다. 맑은 목소리에 가득한 분노가 공기를 쩌렁 울리는 순간 에릭은 가벼운 두통을 느꼈다. 설마?
"치명적이라고요! 지금 당신들의 말이 더 치명적이야!"
"의원님?"
"'돌연변이'라고 부르지 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 당신들은!"
"찰스!" 에릭은 그만 다급한 마음에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찰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찰스가 좀더 빨랐다.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소!"
정적이 퍼졌다. 기자들의 놀란 시선이 찰스에게 고정되었다. 여기자 한 명이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경악만큼이나 빠른 분노가 물 위의 기름방울처럼 기자들의 눈을 재빨리 뒤덮었다. 에릭은 이를 악물었다. 두통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그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불보듯 뻔했다.
"찰스, 진정해!"
"그들은 인간이오! 당신들만큼이나 평범한 인간!"
다음 기자가 입을 열려는 순간 에릭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TV카메라가 폭발했다. 기자의 손에서 피가 흘렀고, 비명소리가 울렸다. 녹음기들이 지직거렸고 필름이 망가졌다. 기자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에릭은 찰스의 휠체어를 끌고 나갈 수는 없음을 깨닫고 허리를 숙였다.
"에릭?"
"조용히 해." 속삭임은 나지막했지만 어조는 엄격했다. "가만 있지 않으면 키스해 버릴 테니." 그리고 그대로 등과 무릎 밑에 손을 넣고 힘을 주었다.
"의원님! 지금," 프로정신이 넘치는 기자가 적어도 한 명은 있나 보군. 찰스를 안아든 에릭은 차가운 얼굴로 기자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의원님께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방금 전 보셨죠? 더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그 기자는 좀더 질문을 할 듯한 태세였으나 갑자기 멍한 얼굴이 되어 가만히 둘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며 의아해 하던 에릭은 슬쩍 찰스 쪽을 내려다보았고, 이를 꽉 악문 찰스가 관자놀이에 한 손을 얹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서 두통이 멈췄군."
찰스는 그대로 차에 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를 꽉 악물고만 있었다. 찰스를 차에 태운 에릭은 운전수에게 신호를 보냈고, 차가 조용히 블록 밖으로 미끄러질 때가 되어서야 찰스가 입을 열었다.
"에릭."
"왜."
"...미안해."
에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찰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리고 짓씹은 자국이 아직도 역력한 입술. 그 푸른 눈은 너무나 비참해 보였다.
"뭐가."
"참을 수가 없었어."
폭발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은 뇌엽 절제술 얘기였다. 에릭은 찰스가 그 문제에 대해 얼마나 격노했었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자신이 인간의 뇌와 연관된 힘을 갖고 있었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기도 했겠지만,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기 십상인 그런 위험한 수술을 '아이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다는 점에서 그는 더욱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었다.
'그건 수술이 아니야, 난 뇌엽 절제술을 당한 사람을 본 적이 있어. 에릭, 그건 정신적 도살이야!'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해해."
분노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격노, 폭발, 때로는 하지않을 수 없는 파괴행동. 이제껏 참고 참고 또 관대하게 참아온 찰스로서는 더욱 터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겠지.
"최악이지?"
"멋진 최악이지."
찰스는 에릭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에릭 렌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기왕이면 좀더 폭발시켰으면 좋았을 거야. 돌연변이 대표로서 말이지." 찰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 사실 그래서야."
"......"
"모두 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어. 두려움에 가득차서 말이야. '괴물!'이라고."
"보인다는 건 괴로운 일이군."
에릭은 조용히 찰스의 손에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우고 조용히 얽는다.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찰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말해주었다. 그가 동의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부러 얘기하는 것이다.
"그만두고 싶으면 말만 해. 인간들은 지금의 지위를 누릴 자격이 없어."
"오, 에릭-"
"이전에 얘기했잖아. 그들은 어리석어."
손을 단단히 얽어 온다. 찰스는 눈을 감고 에릭의 체온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고마운 친구, 언제나 힘들 때마다 악역을 자처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괴롭고도 기쁜 일이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겨낼 기회를 동시에 주는 것이다. 이렇듯 늘 기대를 배신하는 이에게.
"물론 내 답은 알고 있겠지."
"아직까지는 말이지."
에릭이 찰스의 뺨에 조용히 입맞췄다. "다시 얘기하지만, 그만두고 싶으면 말만 해." 찰스는 간신히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자네 때문에라도 포기할 수가 없군."
키스를 돌려주며 찰스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이 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푸른 잿빛 눈동자가 의아한 기색을 떠올린다. 팔을 둘러 등을 감고 도닥였다. 참으로 묘하지, 자네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난 늘 버틸 수 있어.
"일단 다시 한번 노력해 보자고. 그나마 우리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거든."
"절멸을 위해 노력하는 어리석은 인간들 말이지."
"에릭!"
찰스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호흡을 골랐다. 기자들의 기억에는 약간의 조작을 가해 두었고 장비는 에릭이 망가뜨렸으니, 운만 좀 따라 준다면 언론은 비교적 조용할 것이다. 적어도 그 기자들이 장비를 수리하고 다시 달려들기 전에 이 어리석은 법안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아마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차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찰스는 에릭을 놓아주고 앞을 응시했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계속>
- 사실 진짜 제목으로 삼고 싶었던 것은... You can protect yourself only by protecting the others. 너무 길어서 아웃됐죠. 돌연변이 정책 및 인간들에 대한 찰스의 생각이었어요. 그 주체가 누구이건 누군가가 구분되고 차별당하는 순간 저도 당하게 되는 거죠. 으음. 뭐 그렇습니다.
- 뇌엽절제술은 1970년대쯤 가면 극히 희귀해집니다만... 한때 저게 치료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호러블. 지금 병원에서 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사람 폐인되는 걸로 유명한 수술이죠.
- 그러고 보면 엑스맨 2에서 스트라이커 쥬니어의 머리 흉터를 보건대 이 짓 당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