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U + 대체역사 + 그런데 커플링 여부는 아직 미정입니다...
2. 릴레이 형식으로 이어집니다. 전편은 편수 붙여서 접어두니 클릭하시면 전부 보실 수 있어요.
1. AU + 대체역사 + 그런데 커플링이 있을지는 아직....?
2. 연성 + 설정소개 + 그중간의 형태로 지지부진 이어질 겁니다 아마도.
3. 완전판을 다듬어 올리기엔 시간과 기력 내공이 모두 딸리는데
4. 덕심을 자제하기 힘든 나머지 저지르고 보는거라...;;
5. 글래스워커, 화이트폰 두 필자가 번갈아 이어갑니다.
6. 이 포스트 내에서 계속 갱신됩니다.
7. 최중요 포인트 : 고증 말아먹었습니다(...)
1940년 5월
아직 빗발이 가시지 않은 창밖으로 잠시 시선을 흘렸던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부옇게 흐린 북프랑스의 하늘과 그보다 흐린 방안 공기를 거의 냉소적으로 빗대보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침공이 시작된 이래로 쉴새없이 몰아친 진격의 여파가 녹진한 피로감으로 전신에 매달려있고 그보다 더 무거운 강박이 정신을 묶고있다. 반발하듯 튕겨나오는 충동적 살의의 증거로, 그는 여직 저 권총을 지니고 있었다. 암살 시도란 흉측한 단어가 보이지 않는 꼬리표처럼 비죽이 붙은 총이다.
바로 지금 눈앞에서 마치 괴수의 현신인양 고성을 토하며, 독일의 승리보다, 독일의 전쟁보다, 저의 승리와 전쟁에 도취한 그의 총통에게 선사할 뻔한 죽음.
사실 고작해야 몇 달 전의 충동이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피말라가던 시기에, 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모두를 처넣으려 한 자를 총알 한 발로 끝장낼 각오까지 했었다. 미친 충동이었으나 그의 총통 역시 비근하게 미쳐있노라 짐작한다, 아니 이제는 확신한다. 광기에 한 발을 걸치고 시작한 전쟁에서 그나마 실낱같이 비춘 승리의 여지를, 이토록 어이없이 내팽개치려 하다니.
예상을 한참 앞지른 아군 기갑부대의 러쉬와 프랑스를 저버린 듯한 운명의 장난들이 겹쳐 여기, 덩케르크에 섰다. 15km? 16km? 운하를 건너 한 번만 더 몰아붙이면 승리는 제법 확고해질 것이다. 적어도 라인강에서 북프랑스, 도버해협 코앞까지를 제 3제국의 하켄크로이츠로 뒤덮을 수 있었다. 패주를 거듭해 손바닥만한 덩케르크에 몰린 30만 연합군은 지척에서 날아올 독일의 일격에 목을 내민 형국이었고 육군이 할 일은 명백하고도 간단했다. 저들에게 총알과 포탄을 안기거나, 해협의 싸늘한 물속에 밀어넣거나. 그걸로 프랑스는 마지막 숨통이 끊길것이고 영국 육군 또한 끝장일터다. 적어도 3~4년 안의 재기는 기대할 수 없을 타격일테고 제 3제국에게 그것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기회를, 마치 신들의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호의와도 같은 기회를, 이 자가.
"룬트슈테트 상급대장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네. 아군이 숨을 고를 시점이야."
바로 몇 초전까지 신경질적인 고함으로 독일 국방군 장교단 '일부'의 불충함과, 무모한 전략을 마구 비난해대던 총통이 씨근거림을 삼키고 제법 근엄한 투로 그리 말했고, 총참모장 할더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실소를 눌러 참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연승가도, 기갑사단의, 구데리안의 기적. 당신이 이 전장에 대해 뭘 안단 말인가. 재능있는 몽상가, 성공한 정치꾼, 그러나 슬슬 저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요인으로 거둔 승리에 겁을 집어먹고 미래를 불신하기 시작한 오스트리아 하사 나부랭이가.
"아직 파리가 남아있다. 남프랑스도. 기갑전력을 낭비해선 안되지."
코앞의 30만을 어쩌지 못한 기갑전력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상급대장의 지각은 승리의 순간에서 몸서리쳐지는 파멸의 전조를 읽었다. 아르덴을 쓸고 들어와 거머쥔 이 믿을 수 없는 진격의 나날도 이 전쟁의 궁극적 승전을 약속해주지 않는다. 프랑스, 영국, 아마도 러시아, 그리고 어쩌면 미국까지 그들의 적이 될 터이고 눈앞의 작은 사내는 때가 오면 기꺼이 파멸의 왈츠를 추리라. 할더는 지성의 작동을 넘어서 육감의 작동을 통해 확신했다. 피로로 곤죽이 된 뇌가 조망한 히틀러는 오히려 어느때의 조망보다 진실에 가깝다. 이를 아프리만치 인지하면서, 그래도 전 육신을 내리누른 의무가 그의 입을 열게 하였다. 군인으로, 예스런 독일의 아들로 태어나고 살아온 그의 본질 일부가 인내를 주문하며 작동한다.
"진군을 멈춰선 안됩니다, 재고해주십시오 퓌러."
"여태 뭘 들었나...!"
어떤 운명이 그들을 기다린대도, 파멸을 최대한 피해 달리는 것이 육군 참모총장 할더와 독일 국방군의 의무다. 승리를 이어가며 하루라도 그날을 늦출 수 있다면.
할더는 자신의 요청에서 제법 절박한 간구를 느꼈다. 동시에 독재자의 짜증어린 일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란 결과도 직감했다. 아돌프 히틀러의 암흑같은 눈동자와 대면하는 일은 언제나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총통은 할더를 향해 다가오며 입가를 씰룩였다. 진군을 멈춰선 안 될 전략적 이유 따윈 이미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할더가 그의 판단에 불복한다는 상황이 중요한 것이다. 할더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문득 바로 곁의 참모를 주목했다. 낯익은 얼굴이다. 개전 직전까지 할더 본인의 측근으로 신임을 받았던 폰 리펜슈타인 중령이었다. 히틀러가 다가오는 짧은 찰나에 그와 할더의 시선이 마주쳤고, 할더는 어째서 이 순간 자신이 리펜슈타인을 주목했는지 그 이유를 섬전처럼 깨달았다. 젊고 유능하며 사려깊은 엘리트 장교 카를 폰 리펜슈타인, 나치를 경멸하던 과묵한 프로이센 귀족 장교, 심지어 할더의 측근으로 재직할 당시 그의 미친 충동을 공유했던 동지.....! 항시 말수가 적고 단호한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해온 리펜슈타인의 눈에서 바로 그때의 충동, 혹은 결의를 읽은 할더가 호흡을 멈췄다. 전 감각에 한꺼풀을 들이씌운 듯한 경직이 왔다. 지금 이 방에는 총통의 돌발적 전선 방문에 동반한 최측근 무장SS 장교 둘과 룬트슈테트 상급대장의 참모장인 폰 죠덴슈테른 중장,그리고 최전선 10기갑사단의 교두보 전황을 가져온 연락참모 폰 리펜슈타인, 마지막으로 프란츠 할더 참모총장 자신이 있다. 두서없는 구성이었고 전혀 공식적이지 않은 자리의 지극히 우발적인 회합다운 풍경이라면 풍경이다. 애초, 총통이 20여분 뒤의 회의에서 전군 정지를 명하기 전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에게 강변하던 객실 한 켠의 장면인게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완벽한 기회였다. 우발적인 장소, 우발적인 구성원, 우발적 살의.
"나는...."
히틀러의 일인칭이 망설임없이 튀어나온것처럼 리펜슈타인의 손짓도 그랬다. 심지어 더욱 빨랐다.
할더는 자신이 폰 리펜슈타인의 감사 인사, 혹은 작별 인사를 들었다고 느꼈다. 환청이래도 좋았다.
'아직 이 총을 품고 계시리라 믿었습니다'
할더의 제복 주머니 속에 잠들어있던 왈사PP가 어느새 리펜슈타인의 손에 들려 불을 뿜었다. 장탄된 8발을 순식간에 토해낸 권총은 또다른 요란한 총성들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영원과도 같은 찰나가 스쳐간 뒤, 할더는 반사적으로 엎드린 자세 그대로 폰 리펜슈타인 최후의 표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목적한 바를 이룬 자의 만족스런 미소를.
"총통!!!!!!"
무장친위대 장교의 비명같은 고함에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온 할더 상급대장이 조금씩 떨리는 주먹을 움켜잡으며 해야 할 명령을 외쳤다. 사령부 폐쇄, 현장 폐쇄하라. 베를린에 극비 전문을 보내.
그리고 단 몇 초 동안 벌어진 극적인 사실을 최대한 침착하게,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듯 중얼거렸다.
"총통이 암살 당했다."
미간 정중앙과 가슴팍을 붉게 물들이고 똑바로 쓰러진 히틀러는 심지어 눈도 감지 못하고 누운 채였다. 있을 수 없는 부당한 살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양 경악한 표정은, 그를 죽이고 자신도 SS의 응사에 벌집이 되다시피 누운 폰 리펜슈타인의 만족한 얼굴과 꼭 정반대의 위치에 널부러져 있었다.
-이 죽음이 무얼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상급대장의 인간적인 혼란을 압살해버리고, 날선 이성의 절규인양 그 질문이 뇌리에 울려퍼졌다.
독재자의 암살이, 이 전쟁을 어디로 끌고갈 것인가. 독일을, 유럽을, 그리고 세계를.
할더는 순간 이를 악물었다.
그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지만 하나만은 관철할 것이다.
아군 기갑사단은 정지하지 않는다. 이대로 진군해 덩케르크를 짓밟으리라.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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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히틀러가 1940년 5월에 암살당하는 AU입니다. 저대로 40년 덩케르크에서 연합군을 개발살내버린 제 3제국은... 45년에 패망하지 않고 60년대까지 존속합니다 두둥.
글래스워커님과 둘이 대화하다가 설핏 나온 소재였는데 살 붙고 어쩌구 하다보니 이리 되었습니다. 처음엔 44년 슈타우펜베르크의 암살이 성공하는 걸로 풀어볼까 했는데, 그랬다간 시기상 독일이 곱게 조건부 항복 루트를 탈 확률이 너무 높아서 포기하고(...) 기왕 막장 대체역사 트리를 과감하게 질러보는 거, 모 님의 제언을 참고해 걍 덩케르크를 영프벨 연합군의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저그서 히틀러가 전군 진격 중지 삽질을 푸는 덕에 운명의 초침이 촘 비껴나가긴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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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할더 참모총장은 반 나치 인사 맞습니다. 전쟁 전, 39년 초겨울에 실제로 나라도 히틀러를 쏴버려야 하지 않나 고뇌하며 권총을 휴대하고 다녔습니다(....) 결국 훗날 동부전선에서 히틀러에게 개기고 해임당했죠. 그래서 이 AU 서두에 캐스팅 '당한'겁니다. 이 암살 상황을 좀 더 계획적인 거사로 밀고나가야 그나마 손톱만큼 더 설득력이 있을텐데 넵 그러기엔 제 기력과 필력과 여튼 모든 조건의 미비함으로 인해 우발적 범행이 되었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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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폰 리펜슈타인 중령은 물론 가상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 없었어라. 위에도 언급한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모티브이긴 합니다만. 이 AU에선 에릭에게나 찰스에게나 꽤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서 요렇게 소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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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사PP는 실제 히틀러가 45년 5월 자살할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그 총기....라는 인연(!)도 인연이지만;; 당시 호주머니에 사삭 들어갈만한 호신용 권총이라면 이거밖에 없다 싶어서 채용.
그럼 뒷 수습은 일은 글래스워커님에게 떠넘기고 맡기고 저는 이만 총총.
이번 편에 붙이는 말
1. 화이트폰님 절 죽이세요. 이거 가벼운 이야기 릴레이라면서요, 그런 치밀한 글을 써 놓고 튀시면 전 어쩌라고!
2. 흥, 휘릭 휘릭 빠르게 진행시켜 버릴 테다!
3. 이번 편은 주로 세계관 설명 되겠습니다.
괴벨스는 경악했다. 히믈러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괴링은 서둘러 권력 이양을 해야 한다고 소리질렀다. 일반적으로 암살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힘이었지만, 그 궤변과 광적인 연설로 온 독일 사람들의 마음에 위대한 제국의 꿈을 불어넣은 남자가 그 대상일 때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베를린에서 어떤 고성이 오가건 간에 프란츠 할더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강대한 권력의 부재를 노려 반격할지도 모를 적들의 숨통을 끊는 일 뿐이었다. 후세는 덩케르크의 참극을 꽤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학살이었으며, 항구 앞바다는 30만 장병의 피로 물들어 시뻘겋게 흔들렸다. 총통을 잃었어도, 아니 잃었기에 병사들은 눈앞의 적들을 향해 더 잔인하게 몰아붙였다. 아우성을 지르며 출항하려던 배들은 잔인한 슈투카의 급강하 폭격에 비명을 질렀고, 수많은 병사들이 적들을 향해 총탄 한 방 겨누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 아래 가라앉았다. 사자는 젊은 피를 잃었고 발톱이 꺾인 채 주저앉았다.
"말도 안 돼!"
그 동안 괴링은 베를린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의 맞은 편에는 성마른 괴벨스가 눈을 빛내고 앉아 있었다. 총통을 잃고 극단의 실의에 빠졌던 것도 잠시, 그와 히믈러는 어느새 손을 잡고 지금 괴링이 반대하는 결론을 내놓은 상태였다.
"세상에 말이 안 되는 일은 없소, 원수."
"무슨 소리야! 총통 각하의 뒤를 이을 자는 나밖에 없어!"
괴링의 눈에서 뿜어나오는 욕망의 불꽃만큼이나 형형하게 광기어린 눈을 한 괴벨스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할더 상급대장과 이야기를 마쳤소."
"개소리! 그 늙은이는 총통각하를 지키지도 못했어!"
"당신도 마찬가지요.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괴링은 잠시 씨근거리다,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당장 총살을 당해도 마땅찮을 늙은 놈에게 무슨!"
"그 총살당해도 마땅찮은 늙은이가 30만 적군을 처단해 버린 기갑부대를 이끌고 베를린으로 진격하면 당신은 어쩔 셈이지?"
중간에 말을 끊은 괴벨스는 차갑게 쏘아붙이며 괴링의 당치도 않은 의견을 묵살해 버렸다.
"그는 지금 덩케르크의 영웅이오. 기갑부대는 총통각하와 그의 명령 아니면 듣지도 않을 거요. 당신의 공군으로 기갑부대를 다 밟아 버릴 자신이 있는 거요, 원수? 그리고 그런 내전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진정한 계획, 동방 제국 건립을 밀어붙일 자신은 있고?"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눈빛만은 형형하던 헤르만 괴링 공군 원수가 고개를 떨군 것은, 괴벨스 옆에 앉아 있던 히믈러가 특유의 머뭇거리는 어조로, 하지만 묘하게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이미 끝났어요, 원수. 할더 상급대장은 우리의 현재 지위를 보장하겠다고 했거든. 거기 당신까지 포함된 데에 감사하는 게 좋을 거요."
"하지만...하지만 그 암살은...참모가..."
어물거리는 괴링을 바라보는 동그란 안경 밑의 입술이 좀더 일그러졌다. 그것은 이제 명백히 '미소'라 불릴만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시오. 카를 폰 리펜슈타인은 유태인이오."
"유태인!"
"그렇소. 당국의 눈을 어찌 피한 모양이오만, 놈은 더러운 쥐새끼 혈통이었소. 감히 루터교로 개종하고 기사 작위까지 받은 조부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거요."
괴링의 입이 딱 벌어졌다. 괴벨스는 결국 참을 수 없어졌는지, 그런 괴링을 경멸을 숨기지 않은 시선으로 염증난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히믈러가 약간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과업은 변하지 않소. 프란츠 할더 또한 우리의 입장을 이해할 거요. 유태인의 음모로 선전하는 건 선전감독관께서 알아서 할 일이지. 하지만, 상급대장이 그런 참모를 두었다는 사실은 서류 증거로 남아 있소이다. 그의 명줄은 사실 우리가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요."
그로서는 드물게 길게 얘기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하다 괴링에게 한 마디를 더 남겼다.
"총통께서는 전 국민의 눈물 아래 묻히실 거요. 그리고 전쟁은 계속 수행될 거요."
이제서야 고개를 떨구는 괴링을 바라보며, 괴벨스는 속으로만 내뱉었다.
'멍청한 놈. 운 좋은 줄 알아라.'
여기서 납득하지 못했다면 공군 원수 또한 '유태인의 음모'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그랬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덩케르크의 영웅'으로서 제3제국의 2대 총통 지위에 올랐다. 그는 1대 총통, 저 위대한 아돌프 히틀러의 뜻을 이어받아 전격전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했고, 그러기 위해 저 늙은 사자, 영불해협 건너편의 오만한 왕국을 굴복시킬 것을 맹세했다. 히틀러가 할더의 어깨에 손을 얹고 '진격!'이라고 외치는 팜플렛과 포스터가 온 거리에 나붙었고 국민들은 지금의 총통이 히틀러의 뜻을 이어받은 또다른 위대한 영혼임을 납득했다.
그렇듯 슬픔은 새로운 숭배 대상과 목표를 만나 서서히 퇴색되어 갔지만, 늘 그렇듯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는 또다른 제물을 필요로 했다. 총통을 암살하고 사망한 카를 폰 리펜슈타인은 모두에게 저주받은 이름이 되었다. '카를'이라는 이름은 불명예스러운 암살자의 이름으로 치부되었으며,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그 이름을 피했고, 이미 그 이름을 가진 어른들은 가능하다면 개명을 하기도 했다. '리펜슈타인' 성을 가진 자들의 경우에는 강제로 그 성을 없애고 다른 이름을 받아야만 했다.
그 뿐 아니라, 그가 '더러운 유태인'이라는 것이 만 천하에 공표되었으며, 그러한 자가 2대 총통의 참모부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유태인 비밀 조직의 음모'로 치부되었다. 이 더러운 음모자들을 '완전히 처리'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상부에서 조용히 이야기되던 '최종 해결'은 이제 회의 속의 가정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1940년 폴란드의 도시 오슈비엥침에 완공된 첫 수용소가 그 '최종 해결'의 집행 장소가 되었고, 원래 수감될 예정이던 일군의 양심수들 대신 유태인들이 그곳에 수용되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처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2대 총통은 1대 총통의 모든 주장을 계승한 것은 아니었지만, 괴벨스와 히믈러가 유태인의 "최종 해결"에 골몰하는 동안 일체 그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그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제국을 향한 바다의 비수' 영국의 항복을 받아내는 일 뿐이었던 것이다.
1. 여전히 정신나간 대체역사에 고증 말아먹은 뽕빨물에 그리고 아닌 척 하지만 커플물이 될 공산이 무지 커보이는 그 무언가 되겠습니다.
2. 묻지마 전개 계속 나갑니다(....)
영국, 아직 위광이 사라지지 않은 대영제국의 존재는 1차 대전을 기억하는 모든 독일군에게 있어 반드시 넘거나 혹은 깨부숴야할 벽이었다. 위대한 제 3제국의 건설은, 프랑스를 무릎꿇린 지금 바다건너 사자를 제압할 수 있는가 여부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언제든 독일의 숨통을 죌 수 있는 로열 네이비의 존재, 그리고 대서양 건너의 터무니 없는 덩치 미국과의 커넥션까지 무엇 하나 치명적이지 않은 데가 없는 노제국과의 일전이.
할더는 그의 조국이, 군대가 택하고 뛰어든 길의 외통수 끝이 어떤 것인가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은 시작되었고 이대로 독일은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제국이 되든가 흔적도 없이 불타버린 패전국이 되든가 둘 중 하나의 운명이다. 그에게 주어진 의무는 개전 당시보다 오히려 간결하게 축약된 상태였다. 그저 주어진 모든 역량을 다해 싸우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총통이란 지위에 집약된 온갖 정치적 야합의 구렁텅이 속에서 할더 개인이 어떤 식으로 소모된다해도.
어차피 그날 이후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귀하께서 총을 보관하고 계시다?"
베를린 신제국궁전의 총통 집무실에 앉아 여느때와 같이 돌처럼 굳은 얼굴로 차분히 수식들을 풀어보던 할더가 여상한 투로 반문했다. 수리적 명석함으로 제법 이름날린 젊은 시절부터 그에게 밴 습관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감정을 다스릴 필요가 있을때 그는 다양한 수학공식을 풀어보며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반은 공인으로써 업무 능률을 위한 의식이고 반은 개인적 여흥이었을 행위가 이 집무실의 주인이 된 시점부터 철저하게 공적인 의식으로 화한 것을 히믈러도 모르지 않았다. 총통을 호위하는 무장SS, 라이프슈탄다르테가 24시간 지켜본 새 총통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받는 것이 또한 그의 일이었으니까.
"폰 리펜슈타인이 끔찍한 범행에 사용한 각하의 권총 얘깁니다."
"그런데?"
".........."
할더는 여전히 풀고있던 수식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꾸했다. 그의 총. 사용하기에 따라 치명적 아킬레스건이 될 '물증'의 언급임에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그저 덤덤한 말투였고 히믈러는 아주 잠시 침묵으로 새로운 총통을 가늠해보았다. 정권을 이양받고도 덩케르크와 도버 전선에서 두 달여를 보낸 총통이 베를린에 귀환한 건 바로 어젯밤의 일이다. 히믈러는 2개월 전 히틀러를 수행해 전선으로 떠났던 할더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치밀하고, 명석하며, 보수적이고, 프로이센 육군 전통의 긍지를 가진 군인, 그러나 일인자가 되기엔 야심도 배포도 부족한 참모형 인간으로 재단했었던 그 할더가 단 두어 달 사이에 매우 다른 인물이 되어 여기 앉아있었다. 적어도 예측하기 곤란한 낯선 면모를 가지고서 말이다. 히믈러의 목소리가 본능적으로 더 작게 사그라들었다.
"각하께서 개의치 않으신다면, 영원히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괴링과 괴벨스가 곤란해할텐데."
"슈츠슈타펠(SS)은 각하의 SS입니다."
할더가 그제야 히믈러를 바라보았다. 어떤 감흥도 떠오르지 않은 완벽한 무표정으로 말이다.
예전에는 히믈러에게서 소름끼치는 뭔가의 결여를 종종 느끼고 불편해한 적도 있었다. 허나 지금, 속 뻔한 아부를 내밀며 그를 떠보는 교활한 사내에게 할더는 거의 어떤 감상도 떠올리지 않았다. 쥐새끼들의 권력을 원한다면 가져가라지
앞으로도 수행해나갈 전쟁에 필요한 것만 아니라면, 무슨짓을한들.
폰 리펜슈타인의 만족한 미소가 다시 한 번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그날 이후 할더를 완벽하게 사로잡은 주박이었다. 독일에게 승리를. 다만 그것만을.
프란츠 할더가 1939년에 했어야만 했던 일을 대신 해주고 사살된 자, 지상의 온갖 혐오스런 오명을 모두 뒤집어쓰고 가버린 옛 부하에게 '퓌러' 할더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 뿐이었다.
"그말, 기억해두지."
마침 거대한 독수리가 양각된 집무실 문을 노크한 비서관에게 들어오라 명한 할더가 조용히 뇌까렸고 히믈러는 가벼운 목례로 수긍했다. 그리고 흥분을 주체못하고 상기한 표정의 비서관이 빠르게 걸어들어와 총통의 책상위에 전보 한 장을 내려놓았다.
"각하, 영국이 아군의 정전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
두 달 간의 피말리는 공세가 끌어낸 '결과'를 앞에 두고 할더는 처음으로 표정 비슷한 것을 얼굴에 띄워올렸다.
덩케르크에서 수십만을 수장시킨 직후 독일군은 멈추지 않았다. 루프트바페는 덩케르크 항에서 가라앉은 연합군 함정의 부유물이 채 떠오르기도 전에 항속거리가 허용하는 한 영국본토를 폭격하기 시작했고, 처음부터 런던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군원수 괴링은 자신의 입지를 만회하기위해 가릴 것이 없어보였고 독이 바짝 오른 최일선 Bf-109의 숫적 우세를 뒤집기엔 영국 로열에어포스(RAF)의 전력이 미비한 상태였다. 훗날 휴 다우딩 같은 영국공군 노장이 한 달만 더 시간을 벌었어도 그리 당하지는 않았을거라 피토하는 회고를 했을 정도다. 덩케르크 궤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요 공군기지와 공업지대, 그리고 런던 밤하늘을 뒤흔든 야간 공습 사이렌과 폭음, 불길과 파괴 앞에서는 아무러한 대영제국 수뇌와 왕가, 국민도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대피도 거절하고 항전을 독려하던 조지 6세가 버킹컴 궁전의 피탄으로 중상을 입는 사태에 이르러서야.
할더 이하 독일의 대공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루프트바페가 영국 하늘을 불태우고 독일해군의 양동작전에 로열네이비가 눈을 돌린 사이 프랑스 북부를 은밀히 출발한 일련의 강습부대가 템즈강을 거슬러 올라가 웨스트민스터 궁을 확보했을 때 공세는 거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렀다. 의회의사당에서 미처 대피 못한 기백의 의원들, 내각 요인들이 팔슈름예거의 총구 앞에 얼어붙어야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수상 윈스턴 처칠은 총격전 와중에 피격 당했다.
"처칠 경은 어찌 되었답디까?"
"명이 붙어있는 한 협상에 응할 위인이 아니잖소."
"저런."
히믈러의 형식적인 탄식을 뒤로 하고 할더가 일어났다. 이제부터 그와 3제국의 승리자들은 영국이 감수해야할 굴욕의 수위를 결정해야 했다. 쉬운 조율은 아닐테지만 적어도 유쾌하기는 할 터이다.
"아. 장관이 도중에 다른 화제를 내놓은 통에 잊을 뻔 했군."
"하달하실 명이라도."
"이번 영국침공에 상당한 공을 세운 영국인 내부 인사가 한 사람 있소."
"제가 보고받지 못한 공로자입니까"
"그렇게 되었소. 군 방첩국 대신 내게 개인적으로 연통을 넣었더군."
"..................."
도대체 그게 가능키나 한 소리인가.
히믈러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음미하듯 지켜본 할더가 여전히 대수롭잖게 폭탄같은 선언을 터뜨렸다.
"대담한만큼이나 유능한 신사더군. 장관의 '그' 특무기관에서 일하고 싶다기에 대동해왔소."
"각하...!"
"나조차 미처 보고받지 못한 장관의 특무기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히 설명할 기회를 주겠소.....마이어!"
대기하고 있던 비서관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린 할더가 조용히 덧붙인 얘기에는 천하의 하인리히 히믈러도 낯빛이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아군의 에니그마 암호체계가 영국정보국에 낱낱이 해석되고 있다는 제보를 가져온 신사라오. 이 건에 대해서도 내게 많은 걸 해명해야 할거요, 장관."
그때 독수리 문장의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안내한 마이어 비서관에게 신사적인 감사를 표한 초로의 사내는 천천히 걸어들어와 총통과 SS장관에게 정중히 인사하였다. 한 점의 주눅듦도 없이 극히 예의바른 태도가 그의 만만찮을 배경을 절로 짐작케 만드는 남자였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입매와 안경 너머의 주름진 눈매와 서늘하게 생생한 푸른 눈이 기묘한 위화감을 풍기는 인상이다.
"런던에서 온 닥터 세바스찬 쇼우라 합니다."
앞으로는 클라우스 슈미트라 불러주시면 되겠다고 덧붙인 묘한 전향자를 향해 히믈러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정체불명의 이 사내가 그의 새로운 숙제가 되리라 직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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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 드디어 쇼우 등장시켰습니다ㅠㅠ
할더와 괴링과 괴벨스와 배틀 오브 브리튼 사이에서 뭔가 많이 주절거리고 싶었던 한 마리 설정덕은 이대로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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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쟁 전만해도 독일만큼이나 나치에 뻑간 애들이 대놓고 놀던 동네가 런던인지라(....)
- 1차 연표. 이 연표는 협의에 따라 수정될 수 있습니다.
1939년
9월 1일: 독일: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선전 포고.
9월 17일: 소련군, 폴란드 동쪽 국경 침공,
9월 27일: 독일: 바르샤바 점령.
9월 28일: 독일-소련 경계 설정, 우호 조약으로 폴란드 분할.
11월 30일: 소련, 핀란드에 침입(겨울 전쟁). 독일군이 핀란드 지원.
1940년
4월 9일: 독일: 덴마크 점령, 노르웨이 침략.
5월: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5월 28일: 아돌프 히틀러 사망. 히틀러의 뒤를 이어 프란츠 할더 총통 취임.
6월 4일: 덩케르크 철수 작전 사실상 실패. 프란츠 할더 영국 항공전 개시.
6월 22일: 프랑스 독일에 항복.
8월 6일: 소련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불법 점령.
8월 27일: 웨스트민스터 강습 작전, 영국 정전협정 조인. 영국은 독일의 보호국이 된다.
9월 27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에 조인, 삼국 군사 동맹 결성.
10월 15일: 영국, 삼국 군사 동맹에 가입.
11월 20일: 헝가리, 삼국 군사 동맹에 가입.
1941년
4월: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독일에 항복.
5월 6일: 스탈린,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취임.
12월 7일: 일본, 진주만 공습. 삼국 군사 동맹 침묵.
12월 25일: 일본, 영국령 홍콩 점령.
12월 27일: 삼국 군사 동맹은 진주만 공습을 불법 침입으로 규정하고 일본 규탄 및 동맹 축출.
1942년
1월 4일: 삼국 군사 동맹, 일본에 선전 포고.
1월 20일: 독일, 반제 회의에서 유태인을 학살하기로 결정.
2월 15일: 일본, 싱가포르 점령.
5월 7일: 일본, 산호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
6월 5일: 일본,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 이 해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잡음.
8월 16일: 미·독·소 지도자, 모스크바 회담. 소련은 미·일전에 대한 지원 거부.
11월 11일: 독일, 비시 정권하의 비점령 프랑스 지역을 점령 지역으로 편입시켜 프랑스 전 영토를 점령.
1943년
1월 25일: 미국, 독일, 일본에 대해‘무조건 항복 원칙’ 발표.
7월 25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베니토 무솔리니를 체포하고 바돌리오 장군을 내각으로 삼음.
9월 8일: 독일, 이탈리아에 선전 포고, 로마 점령.
9월 15일: 무솔리니 구출, 파시스트 공화 정부(살로 공화국) 수립.
10월 13일: 국왕과 바돌리오 내각, 남쪽으로 도피. 독일에 선전 포고.
10월 19일: 모스크바에서 미·독·소 외상 회의.
11월 26일: 미국·중국 카이로 회담. 한국 독립 결의.
11월 28일: 미국·독일·소련, 테헤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 재토의.
12월 1일: 카이로 선언 발표.
12월 7일: 이탈리아, 독일과 살로 공화국에 항복.
12월 25일: 유럽 전쟁 종전.
1944년
2월 11일: 미·독·소 지도자, 얄타 회담.
4월 12일: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죽자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
4월 28일: 베니토 무솔리니 암살, 이탈리아, 독일 제3제국의 보호국으로 편입.
6월 23일: 오키나와, 미군에 점령.
7월 17일: 포츠담 회담.
8월 6일: 미국,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 투하.
8월 8일: 소련, 일본에 선전 포고, 8월 폭풍 작전 시작.
8월 9일: 미국,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투하.
8월 12일: 소련, 한국 동북부 도시 나진, 웅기를 점령.
8월 14일: 소련, 한국 동북부 도시 청진 상륙 감행.
8월 15일: 일본 제국의 일왕 히로히토, 무조건 항복. 한국, 대만 등 일본의 점령지 및 식민지 해방.
8월 19일: 소련, 8월 폭풍 작전 종료. 항복 조약을 받아들임.
9월 2일: 일본 제국이 항복 문서에 서명.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12월 25일: 제3제국, 유태인 학살 중단.
1951년
6월 7일: 폴란드의 마지막 절멸수용소 마이다네크, 노동수용소로 전환.
제3제국 유럽의 유태인 인구는 2차대전 전의 5% 미만으로 감소. (950만 -> 40만 미만)
이들은 노동원으로서 제3 시민권 발급.
이후 세계는 미국, 소련, 제3제국의 3강 질서로 개편.
이번 편에 붙이는 말
1. 원래 썼던 것은 다시 읽어보고 폐기처분. 쇼우와 히믈러의 면회/에릭과 쇼우의 첫만남/특무대 설립/을 진행중이고, 면회 장면 쓰던 중이었습니다만 다시 읽어보니 사족이라는 기분이 들어 제거했습니다. 배경은 최대한 짧게, 이야기 진행하면서 찬찬히 풀어보렵니다.
친위대 특무기관 '하켄 아들러'의 기장은 철십자를 위로 하고 화살 뭉치를 붙들고 있는 독수리였다. 혹자는 그것이 미국의 국가 상징과 너무 닮았다며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하켄 아들러의 수장 클라우스 슈미츠 박사는 그 화살을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총통의 적에게 내려찍히는 화살이오.' 그가 그렇게 말할 때, 그 입가에는 늘 그렇듯 기묘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 기장을 소매와 가슴에 새긴 청년을 바라보며, 그는 그간 자신이 거둔 '성과'를 돌이켜 보았다. 내 '아들', 내 손으로 거둔 첫 아이.
"드디어 네게 할 일이 생겼구나, 에릭."
언제나 꾸민듯한 유쾌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그가 묘하게 다정한 어조로 말한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마치 아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기라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책상 건너편에 서서 그 말을 듣는 이의 메마른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표정한 푸른 잿빛 눈동자가 박사를 바라보고 있을 뿐, 꾹 다물린 얇은 입술 또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또 그렇게 무뚝뚝하게 굴고 그러니. 너도 좀 엠마처럼-"
"무슨 일입니까."
포기하듯 어깨를 약간 움츠린 박사는 안경을 손으로 밀어올리며 말했다.
"약간의 시연(試演)일 뿐이다. 그런 시시한 일에 널 보내야 한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시연이라면?"
검은 친위대 제복에 감싸인 몸이 채찍처럼 꼿꼿하다. 장신에 금발에 푸른 눈, 매끈한 얼굴에 서린 엄혹한 표정은 독일 민족이 자랑하는 순수 아리안 혈통의 외모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몸 안에 흐르고 있는 피가 무엇인지 서 있는 남자도 앉아 있는 남자도 모르지 않았다. 물들인 그의 금발처럼 이 '아리안'도 가짜라는 것을.
"윗분들이 난리란다. 지금까지 겨우 두 명이냐고 말이다. 그 두 명이 1개 사단보다 값어치 있다는 걸 납득을 못 하더구나."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찬 슈미트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청년의 바로 앞에 다가가 손을 내밀어 검은 제복에 감싸인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내일 아침에 차가 그 쪽으로 갈 게다. 타고 가서 네 능력을 보여주면 된단다."
이제 갓 스물이 된 엠마의 '힘'은 아직 완전치 않다. 환영을 보여주는 능력이라던가 특히 그녀의 '변신'은 훌륭하긴 하지만 히믈러 및 군 수뇌부와 총통에게 감명을 주려면 좀더 직접적인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니고 있는 것은 에릭 뿐이다.
"난 널 믿는다. 네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거다."
처음으로 청년의 푸른 눈에 섬광이 달렸다. 순수한 분노와 그것이 자아내는 살의다. 슈미트 박사는 그것을 알고서도, 아니 오히려 눈치챘기에 상냥하게 눈을 휘며 에릭에게 웃어주었다. 생각컨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렌셔 모자를 발견한 것은 신의, 혹은 그에 비견하는 어떤 존재의 가호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도, 소년에게도.
가족의 이야기를 꺼낸 지금, 에릭이 생각하고 있는 것도 그가 떠올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광경이리라는 것을 그는 안다. 회색의 수용소 벽,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떨며 서 있는 소년의 모친. 그 모친의 안전을 걸고서야 그는 소년을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날 실망시키지 말라는 말은 할 필요도 없겠구나. 그렇지? 이제 가 봐도 된다."
"예."
나이에 비해서는 입이 무겁고 말은 짧지만 아직 눈빛까지는 능숙하게 감추지 못하는 젊은 야수가 사랑스러워, 클라우스 슈미트는 다시 한번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하켄 아들러'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자들에게 그는 내일 이 야수를 선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아들'을 필두로, 세상에 그의 '아이들'이 나설 것이다. 에릭이 나가고 방문이 닫힌 순간 그는 크게 웃지 않기 위해 입을 손등으로 잠시 막아야만 했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이 인류의 새로운 단계를 목도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리라.
다음날.
SS 특무대 '하켄 아들러' 소속 에릭 렌셔 소위는 너른 평지 건너편의 수풀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클라우스 슈미트가 말한 대로 오전 9시에 한 대의 차가 사택에 도착했고, 안에 타고 있던 SS요원들은 그에게 눈가리개를 하길 요구했다. 노골적인 광대 놀음이었지만 순순히 응한 것은 그가 어디로 가게 될지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연'. 이미 그 말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저 어디론가 가서 그간의 '훈련 성과'를 보이면 되는 것이다.
몇시간의 운전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어딘지 모를 간이 비행장이었고, 그 곳에서 비행기로 갈아타고 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도착한 곳에서 다시 눈가리개를 하고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이 곳이다. 대략 동부 유럽이라는 것 외에 어디인지 모를 평원.
뒤쪽 한참 떨어진 곳에 벙커가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 안에서 클라우스 슈미트가 말한 '윗분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넓은 평지에 서 있는 제복 차림의 군인 한 명. 사방 수백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평지 건너편에는 수풀과 나무들이 서 있다. 대부분이 침엽수인 것으로 보이는 검은 나무와 푸른 풀. 에릭은 냉담하게 폴란드, 혹은 체코일 것이라 짐작하며 자기 안의 분노를 점검했다. 분노, 증오, 그의 힘의 원천이 되는 모든 격렬한 것들을 준비하고, 아낌없이 폭발시키기 위해 날을 벼렸다.
예측대로 전방의 검은 숲 그늘에서부터 연막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희미한 연기가 평지에 흩어지는 가운데 무언가가 달려나온다. 그것이 기관총을 든 십여명의 군인들임을 알아본 에릭의 입가가 경멸로 뒤틀렸다. 인간을 들이대다니, 슈미트가 얘기한 '윗분'이라는 놈들은 상상력이 고작 이 정도라는 것인가. 군인들이 사격을 개시하기도 전, 즉각 힘을 펼쳐 총기들을 붙들어 낚아올렸다.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현상에 경악한 병사들이 소리를 질렀고, 몇몇은 굳이 총기를 놓지 않으려 애쓰며 함께 끌려 올라갔다.
사정없이 총기와 그에 딸린 몇몇 사람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며, 몇몇 운 좋은 병사들이 날린 총알을 한 손을 내밀어 멈췄다. 총기와 총알을 한꺼번에 뭉쳐 고철로 만들어 굴리고, 이것으로 끝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증오를 끌어올렸다. 그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그의 동족들을 학살한 자들에 대한 분노를.
어디선가 박격포탄이 날아온다. 그 사실을 안 순간 힘을 이용해 신관을 어그러뜨리고 땅에 처박아 버렸다. 상대가 포를 더 쏘기 전, 포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포신을 구부렸다. 발사 순간에 망가졌는지 한 쪽에서 유폭으로 추정되는 큰 폭발이 일어났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직접 눈으로 보았던 장작더미처럼 쌓인 동족의 시신들에 비하면 아무 의미 없는 희생 아닌가.
매캐한 연막 속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증오와 분노에 온 몸을 맡긴 에릭의 입가에 이제서야 희미하게 웃음이 떠오른다. 육중한 캐터필러의 기동음, 그것도 한 대가 아니다. 익숙한 이 소리는 거의 틀림없이 그것이리라. 제3제국 영광의 주역, 이제는 늙었지만 여전히 위엄 넘치는 제국의 야수들,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육중한 거신.
거대한 3개의 덩어리가 천천히 연막 속에서 거체를 드러냈을 때, 에릭은 자신의 증오와 격노가 이제껏 느껴왔던 것보다 한층 더 격렬할 수 있음을 깨닫고 놀랐다. 판터를 양 옆에 거느린 티거는 에릭의 눈에 제3제국 그 자체였고, 그를, 그의 어머니를, 그리고 두 사람의 삶 전체를 지옥으로 바꿔버린 무언가였다. 혈관을 질주하는 격노를 제어하지 않고 마음껏 터트리며, 에릭은 왼쪽 옆의 어리석은 판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다뤄왔던 것들과는 비할 수 없는 거대한 저항력이 느껴졌고, 무심하게 회전하는 엔진과 캐터필러의 절규가 뻐근하게 와닿았다. 전진 속도는 느려졌지만 전차는 여전히 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에릭은 아까 이곳 저곳에 박아버렸던 박격포탄들을 띄웠다. 판터의 차체 측면에 포탄을 우겨넣어 폭발시킨다. 그렇게 캐터필러를 부수고, 정지한 판터의 해치를 힘껏 잡아뜯은 뒤 장탄되어 있던 포탄들을 억지로 끌어냈다. 기겁한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바람을 타고 들려 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십여발의 포탄을 공중으로 띄워 올린 시점에서 이미 승리는 예정되어 있었고, 에릭은 차가운 얼굴로 증오를 다시 한번 폭발시켰다. 오른쪽 옆 판터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그가 노려보고 있는 것은 바로 가운데의 티거, 한때 불패의 전차라 불렸던 거대한 제국의 첨병이었다. 한 손으로 포탄들을 정지시켜 놓고 다른 손으로 포탑의 해치를 노린다. 육중한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이것은 그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뒤쪽 벙커에서 누군가 무언가를 외치며 달려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해치가 열리고 그 안에 포탄이 날아들어간 것과, '시연' 정지 명령을 하달받은 장교가 에릭 바로 뒤로 달려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티거는 완전히 침묵했고, 에릭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습니까."
기관총으로 무장한 병사들, 박격포대, 낡은 전차라 해도 티거와 판터를 단숨에 무력화시킨 자가 단 한 명의 남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벙커 안에는 오직 경악에 찬 침묵만이 가득했다.
"통제는...통제는 가능한가?"
히믈러의 질문에 슈미트 박사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히믈러로서는 아마도 지나칠 정도로 상상 이상의 성과이리라. 그간 보고서에 올라갔던 에릭의 성취는 기껏해야 일개 소대 정도의 인원을 상대로 한 백병전 훈련, 혹은 차량에 준하는 물체에 대한 '힘'의 행사 정도였으니까. 사실 슈미트도 이 정도일줄은 몰랐기에 기쁨은 더더욱 컸다. 포신을 구부리고 포탄을 되돌려 무력화 시키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의 '아이'는 어느새 무섭도록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가능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유태인이오."
학살을 종료한지도 5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이따위 말이나 하다니. 클라우스 슈미트는 허나 그런 감상 따위 내뱉지 않고 부드럽게 지적했다.
"그리고 돌연변이죠. 비록 순혈의 아리안은 아니지만 그의 유대 조상은 지속적으로 아리아인과 혼인해 왔습니다. 그것은 그의 외모가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더러운 잡종이군."
"저라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전력이 되어 줄 돌연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유태인 에릭 렌셔가 SS기장을 달고 군인으로서 살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현재까지 단 한 명 뿐인 남성 돌연변이체. 그리고 아리안의 특징으로 늘 거론되는 큰 키와 푸른 눈. 금발이 아니므로 1종 아리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3종 아리안보다는 오히려 더 외모적 우월성이 돋보이기까지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 벙커 안의 다른 이들에게는 그 외모가 별 감흥을 주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히믈러를 설득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터였다.
"각하, 부디 저 자의 전술적 가치를 가늠해 보십시오. 저러한 자들을 모을 수 있다면 제국은 더욱 강력해질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뭔가."
이제껏 침묵하고 있던 총통이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불쾌한 표정이 되어 있던 그였지만, 오히려 육군 출신인 만큼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지는 그가 가장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정적 속에서, 클라우스 슈미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1961년, 스위스.
에릭은 거울 속을 들여다 보았다. 누가 봐도 SS대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낯설고 역겨웠다. 때로는 임무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을 입기도 했지만, 번개를 연상케 하는 두 개의 검은 알파벳은 그의 마음 속에 박혀 있어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제3제국 단 한명의 유태인 친위대원, 에릭 렌셔 대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어나갔다. 의자에 잠시 걸쳐 두었던 제식 코트를 걸치고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간다. 그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이 곳엔 없었지만, 병사들은 그의 검은 옷을 볼 때마다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하겐 아들러의 기장은 베를린 외에서는 착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는 가끔 자신이 새장에 갇힌 독수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밖으로 뛰쳐나갈 수만 있다면 발톱에 걸리는 것은 무엇이건 찢어발겨버릴 맹금이.
스위스의 공기는 차갑고도 맑았다. 눈발이 휘날리는 것을 본 에릭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중립국인 이 곳에서도 그는 여전히 갇혀 있다. 계속되는 임무를 해치워 나가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 간만의 찰스에릭 단편입니다.
- 하지만 수위는 얼마 되지 않아염
- 이게 다 패시의 허리 때문입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에릭 렌셔가 이렇게 말할 때, 보통 적들은 공포에 질리고 지인들은 물러선다. 지인의 수가 결코 많지는 않았지만 - 적어도 브라더 후드의 멤버들은 그렇다. 마치 으르렁거리는 동물처럼 가지런한 이가 드러나고, 눈은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단 한명만은 그러한 에릭의 시선을 온전히 무시할 수 있었다. 찰스 프란시스 자비에, 엑스맨의 지도자인 프로페서 엑스만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분히 이 두 강대한 돌연변이 지도자들의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는 일이었고, '뭔가 사연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는 젊은 돌연변이들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꽤 큰 충격을 받곤 했다.
그건 말하자면 브라더후드로서는, 가끔은 엑스맨의 경우에도 일종의 '입문식'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사이는 이혼한 엄마 아빠 사이를 오가는 자식 같은 거지." 굳이 머리를 손질하던 엠마가 차갑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하지 않아도, 이러한 둘의 모습에 충격을 받곤 하는 젊은이들은 한 반 정도의 확률로 즉각 짐을 싸서 - 서로의 진영으로 짐을 옮기곤 했다. 이것도 너무 흔한 일이다 보니 이젠 그저 일상다반사다.
그러면 대체 왜 서로 합치지 않는 거냐고 할 것이다. 우습게도 그에 대한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답은 확실했다. "같은 돌연변이니까 넘어가는 거지, 우리 이상은 정반대거든." 결코 함께할 수 없는 평행선이라면서 이렇게 가끔 체스를 두거나 술 한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뭐냐고 묻는다면? "공은 공, 사는 사." 아 네 그러십니까. 어쨌건 지금 이 사태는 에릭으로서도 별로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는 눈을 차갑게 내리깔며 허리에 둘린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야 내 눈앞에 자네 허리가 보이잖아."
그렇다. 바야흐로 엑스맨의 수장 프로페서 X는 에릭 매그너스 렌셔, 희대의 테러리스트 매그니토의 허리에 슈트에 감싸인 팔을 두르고 있었다. 그것도 양팔로 끌어안고 검은 셔츠에 둘러싸인 납작하고도 단단한 배를 슬슬 쓰다듬고 있다. 공기 찬 늦가을이나 한겨울이라면 모를까, 한창 풀들은 물이 올랐고 꽃들은 피어오르고 햇살은 더럽도록 따듯한 '초여름같은' 봄이다. 오늘 긴 셔츠를 입고 온 걸 조금 후회하고 있던 참인데 - 하지만 붉은 헬멧에 반팔 셔츠는 에릭 생각에도 좀 아니긴 했다 - 슈트 입은 남자가 푹 끌어안고 문질거리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서 갑갑하고 더웠다.
"더워."
"어 나도. 근데 자네 체온이 서늘한걸."
"난 더운데."
"좀 참아."
대체 뭘 좀 먹고는 사는 겐가? 자네도 설마 요즘 진마냥 그 이상한 고형 과자를 식사랍시고 먹는 건 아니겠지? 모델 허리라고 해도 믿을 법한 등허리에 얼굴을 묻고 중얼대자 긴장한 허리 근육의 움직임이 그대로 뺨에 전해진다.
"잘 먹고 지내고 있는데."
"그렇겠지, 이 얄미운 친구 같으니."
요즘 찰스가 은근히 벨트 사이즈에 신경쓰고 있다는 걸을 알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전에 웨스트 체스터에서 함께 지낼때부터, 에릭은 움직임에 방해될 정도로 포식하는 일이 없었고, 언제나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애썼다. 아마도 긴 유랑 생활이 가져다 준 생활습관일 것이다. 겉보기에는 말라 보일 정도로 얇은 몸은 사실 근육으로 꽉 차 있었고, 그래서 그 날밤 이 얇은 허리는...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그 헬멧에 새 기능이라도 추가됐나?"
에릭이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휙 걸어가 버렸다. 아니, 걸어가 버리려고 했다. 이럴 것을 예상한 찰스가 있는 힘을 다해 붙들고 늘어지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찰스의 휠체어는 많은 개선을 통해 주인의 몸을 제법 편안하게 잘 붙들어 둘 수 있었고, 그래서 에릭은 찰스의 체중과 함께 꽤 무거운 휠체어를 끌고가는 형국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생각보다 큰 저항에 힘을 주어 버티려던 것도 잠시, 교묘하게 힘을 준 찰스 때문에 그만 휠체어에 - 찰스의 무릎 위에 앉는 꼴이 되었다.
"뭐지?"
"그간 팔을 꽤 단련했지."
한쪽 팔은 여전히 허리에 감겨 있고, 다른 팔은 슬금슬금 위로 올라와 가슴에서 배를 쓸어내린다. 이쯤 되면 슬슬 다른 이들이 보면 곤란한 장면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에, 에릭은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고개 숙인 찰스의 입술이 헬멧 옆 어깨에 닿는 바람에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정말로 놓길 바래?"
"......이..."
"정말?"
에릭이 이를 갈았다. 찰스가 목소리로만 웃었다. 헬멧이 두툼한 카펫 위로 떨어졌고, 두터운 나무문에 붙은 경첩이 스스로 움직여 철컥 하고 잠겼다.
한편, 응접실 소파에서는.
"이거 협상이 너무 오래 가는 거 아냐?"
"그게 협상이라면 말이지, 블루 다알링."
"엠마?"
"저기요, 두 분 아주머니, 여기는 엑스맨 본부거든요?"
"그래서, 진저 귀요미야?"
"진, 참아. 일단 교수님이 얘기를 마치고 나면 얘기하자."
미스틱과 수다를 떨며 손톱을 갈던 엠마가 피식 웃으며 고작 16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웨스트 체스터 여주인의 풍모를 갖춰가는 진과 옆에서 곤란해 하는 스캇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정말이지 난 휠체어 탄 남자가 그 쪽이리라곤 상상도 못했지 뭐야."
"엠마--!!!!"
브라더후드는 내분 일보직전, 엑스맨은 전쟁 일보직전이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웨스트체스터의 봄은 농밀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포스팅을 하기엔 너무 빈하고 그렇다고 꿀꺼덕하기엔 입이 근지럽고, 엠에센을 달구기엔 시간이 애매할 때 요 포스트를 무작위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리플란=자유게시판이옵니다. 난입 환영!! 일단 한 줄이라 쓰긴 했는데 아님다 수다 길고 찐할수록 좋습니다.(100플마다 새로 갈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뒤늦게 연구소에 방 한칸 얻어 들어온 그린페이라고 합니다. 최애는 쇼우인데 쇼우 관련해서 커플링을 정할수가 없어!!!-정확히는 쇼우를 깔 공을 내놔!! 엠마언니, 왜 남자가 아니신가영ㅠㅜ 물론 언니는 하름다우시지만...ㅠㅜ-라며 울부짖는 한마리 가련한 짐생입니다.(....) 그리고 커플링 상관없이 쇼우-에릭-찰스 삼각구도에 핥핥 중이옵니다. 가아끔 뻘글 투척하고 사라질지도 모릅니다...(먼산) 아래는 그냥 가기 뻘하여 쪽글 하나 놓고 물러 갑니다.
커플링은 없는 에릭 관련 글입니다.:)
그에게 고독은 익숙한 것이었다. 숨을 쉬는 시간은 그만큼 폐 속에 고독이 쌓이는 시간.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그리고 젊은 날 잠시 꿈처럼 지나간 짧은 나날 이후로 절대적인 것이었을 터였다.
대체 언제부터 이 고독이 방해 받기 시작했더라?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건너편에 앉은 사내가 입술을 연다. 아직 굳지 않은 핏줄기가 입술 위로 흘려내려 방울져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고 있는 게냐? 에릭?
남자의 표정은 짐짓 더없이 상냥하고 다정해서, 자신을 죽인 자에게 말 거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린 아들을, 혹은 귀애하는 애완동물을 대하는 듯 보였다.
에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목소리도 사실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기를 떨리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에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생각했다. 저자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의 맞은 편 소파에 몸을 누인 그자는 히죽히죽 웃으며 스스로 손가락을 들어 올려 제 미간을 가리켰다.
그야 당연하잖니. 난 이미 죽었으니까.
에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그래, 네가 죽였어. 내가 네 어미의 미간을 쏜 것처럼, 넌 내 머리에 동전을 박아 넣었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사실 나도 모르거든. 차라리 ‘그자’에게 물어보는 게 정확하겠지.
그 자신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남자는 즐거워서 미칠 것 같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해 되지 않는 말들.
에릭은 대답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저 남자는 그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의 빈정거림이 다시 그에게 들이밀어졌다. 들린 것은 아니다.
계속 그러고 있다가는 그대로 주름이 져 버릴 거야. 이젠 너도 주름을 걱정할 나이가 되지 않았니. 게다가 넌 나처럼 젊음을 보충할 수도 없잖아?
남자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고 있었다. 전혀 변함없는 남자의 얼굴은 이제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아니, 오래 전 멈춘 남자의 시간을 그가 따라잡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여전히 마르지 않은 핏방울은 이제 턱까지 흘러내려 괴었다. 미간에 파인 상처는 손을 내밀면 당장이라도 그 끈적함과 온기를 그의 손에 쥐어줄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팔걸이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피아노 치듯 두드렸다.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는 마치 흥겨운 연주라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그래, 넌 아직도 내가 왜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나 궁금한 모양이구나, 에릭. 내가 아는 넌 아둔한 아이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네가 모를 리 없잖니?
그 말대로다. 사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어느새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시간이 흐른 해변에서의 그 날 이후, 저것은 단 한 순간도 그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곁에 남아 그의 고독을 방해하며 또한 완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일종의 대가일까?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날 네가 나를 선택한 결과니까.
너를 선택해? 내가?
그의 너머에 앉은 남자는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유쾌하게 웃었다. 소리는 없다. 하지만 그 기분 나쁜 비웃음은 그의 머리 속에서 쟁쟁히 메아리 친다. 그자는 손가락을 뻗어 에릭을 가리켰다.
네가,
그리고 다시 붉은 상처가 깊숙이 패인 자신의 미간을 가리킨다.
나를 선택한 거야.
굳이 덧붙일 필요 없는 부연이 잇따랐다.
그 남자가 아니라 나를 선택한 거지.
에릭은 덤덤하게 남자의 턱에 맺힌 핏방울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딱히 양탄자가 젖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넌 나를 죽이고, 그 무엇보다 온전하게 나를 계승했지. 그게 선택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에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혀 필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넌 나를 죽였지만 나를 부정하지는 못했어. 네 남은 인생은 곧 나를 긍정하는 삶이 될 거다.
에릭은 말없이 여전히 깊게 벌어져 그를 바라보는 상처를 응시했다. 그곳은 여전히 붉은 피를 천천히 게워내고 있었다.
여전히 피 흘리면서, 그 남자는 천천히 다가와 에릭에게 손 내밀었다. 그러나 손 끝이 닿는 곳에서 어떤 감각도 그를 속이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넌 나의 아이란다.
내 작은 에릭(Mein kleiner Eric).
이마에 닿은 입술은 그 어떤 감촉도 남기지 않았다. 당연하다.
차게 식은 녹은 유리를 부어 넣은 것처럼 굳어 있던 청각이 천천히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얼어붙은 납 물이 흘러 들어 굳어버린 것 같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익숙한 노란 홍채가 가장 먼저 그의 시각을 깨웠다. 당혹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려는 푸른 비늘로 온 몸을 덮은 여자에게 그는 손을 흔들어 질문을 떨어냈다.
그는, 매그니토는 잠시 낮은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온전한 고독의 시간은 끝난 모양이다. 아니 애초에 그의 고독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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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n kleiner Eric을 보고 쾌재를 부르실 몇 분이 떠오르지만...(먼눈) 쉬운 제 취향을 탓할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