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참으로 불행한 남자였습니다. 섹스 중독이라는 건 - 어느 평론가가 이미 말했듯 - 이 영화에서는 단순한 희화나 야한 얘깃거리가 아니라 철저한 저주이자 족쇄입니다.
'수치'라는 영화 제목처럼, 주인공은 누구에게도 떳떳이 말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섹스에 중독되어 있는 이상, 그에게 섹스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듯 애정의 확인도, 욕망의 방출도, 어떤 정점이나 의식도 아니고 그저 '반드시 하지 않으면 괴로운 것' 입니다. (섹스중독은 단순한 섹스선호와는 전혀 다른 중독증입니다.)
'여동생'이라는 존재는 그런 그에게 실로 천형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냐면, 중독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 마치 마약 중독자가 환상이나 안식을원해서가 아니라 오직 금단증상의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썩어가는 팔에 주사기를 꽂고야 말듯 -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그 섹스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육체적으로 성교 대상일 수 있는' 존재니까요.
굶주림으로 치환해 보면 그 '관계'의 고통은 더 명확해집니다.
여기 굶주린 사람이 있어요. 지독스러운 위염에 걸려 있어서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굶주림 때문에 어떻게든 먹을 것을 먹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손을 뻗어서 먹고 싶은 거을 낚아채 먹어왔어요. 헌데, 사실 그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먹음직한 빵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빵을 먹으면 가족이 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가족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릴 테고, 온 세상이 당신을 경멸하고 비난하겠죠.
극중 씨씨와 브랜든의 관계는 제게 딱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브랜든에게 있어 씨씨는 알콜중독자 앞에서 빤히 돌아다니는 술병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나름 매력적이고, 기분이 좋으면 브랜든에게 과격하게 육체적인 방식으로 친밀감을 표현합니다. 얇은 티셔츠 하나만 걸친채 그를 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샤워실에 오빠가 들어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죠.
하지만 브랜든은 그녀에게 성적인 의미로는 손가락 한 까딱해선 안되는 처지죠. 그저 '섹스중독자'라는 것도 물론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여동생'을 그 미친 삶에 성적인 의미로 끌어들인다는 건, 고작해야 대낮에 호텔 전망창에 기대어 섹스를 하거나, 돈으로 산 여자 둘과 한꺼번에 그룹섹스를 하거나, 여자와 안된 날에는 남자와 성행위를 하는, 그런 것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수치스러운' 일이니까요. 조금이라도 혈육의 정이 있다면, 아니, 혈육의 정이 없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그래서 브랜든은 씨씨가 그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극도로 강한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게 되죠.
여자를 더럽게도 못 꼬시는 - 그래서 그가 헌팅 실패한 여자들이 오히려 브랜든에게 접근해 올 정도인 - 직장 상사가 여동생과 키스와 애무를 나누는 동안, 브랜든은 앞좌석에서 언짢은 표정을 짓고 앉아만 있을 뿐입니다. 어딜봐도 자기만 못한 그 못난이 수컷이 여동생과 키스를 나누고 애무하고 자는 동안, 브랜든은, 가장 섹스를 '필요'로 하는 브랜든은 그 신음소리를 들으며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 하다 야밤에 거리를 조깅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녀를 자신의 황폐하고 지옥 같은 섹스 라이프에 끌어들이는 순간, 그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수치스러운 것이 될 테니까요. 그가 자신의 섹스라이프와는 구분해서 유지해오던 모든 생활이 경계없이 무너질 테니까 말입니다. 바로 그래서, 그는 회사 화장실에서는 자위를 하지만, 직장 동료를 자신의 성적 환상 - 전망창에서의 섹스 - 에 직접 끌어들이진 못합니다. 그에게 섹스란 곧 '수치'고, 거기 자심의 '수치스럽지 않은 모습'을 아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순 없는 거죠.
그래요. 브랜든은 섹스 중독자고,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의, 그래서 보통 사람 보기에는 '문란한' 방식의 섹스를 하고 또 하지만, 행위 내내 그는 기뻐하거나 성취감을 느끼질 못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 '정상적'이고 '문제없는' 삶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감각이 있기에 그 모든 행위중의 그는 늘 고통스럽고 힘겨워 보입니다. 아까 말했듯, 자기 인생이 이 때문에 파멸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썪어가는 팔에 주사를 놓는 중독자처럼요.
인간이 스스로가 벌거벗었다는 것을 - 그리고 그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이 '선악과'를 먹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죄'를 저질러 '타락'하는 순간 그들은 그때까지의 자신들이 무구한 존재였고, 이제 죄를 접하였기에 그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여오하에 걸맞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됩니다. '수치스러운 짓'을 저지르기 전까지 그들은 '수치'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브랜든은, 하나 하나 '선'을 넘어가면서 '수치'에 대단히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수치심의 늪에 빠진 거죠.
그러므로 그는 어찌 보면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존재들 - 공적인 삶으로는 같은 직장의 동료, 그리고 사적인 삶으로는 여동생 씨씨에 대해, 그들을 나름 아끼면서도 결코 손은 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씨씨의 말대로,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브랜든의 경우에도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 그저 '잘못된 장소에 놓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활에서 - 꼭 섹스가 아니더라도 - 작고 큰 온갖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르는 우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꿈, 환상, 두려움, 공포를 갖고 있고, 그것들을 실행하거나 겪게 될 때 반사적으로 주위를 돌아봅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과 마음 속에 내재시키고 있는 법전을 펴지요. 윤리, 도덕, 규범, 규율, 때로는 법 -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갖고 있건, 정도는 다를 뿐 '수치'가 우리와 함께 합니다.
'헝거'에서 극단의 육체적 굶주림과 목숨을 건 갈망을 교차시킨 감독은, '섹스중독'을 소재삼아 인간의 욕망과 수치심에 시선을 갖다댑니다.
모든 수치심의 가장 큰 근원 중 하나인 여동생의 전화를 무시하고 정신없이 - 사실상 도피하기 위해 - 섹스에 스스로를 매몰시켰던 브랜든은 그 까닭에 여동생을 거의 잃을 뻔 합니다. 그리고 그 여동생의 손목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국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그는 다시 한번 지하철에서, 그와 늘 시선이 마주치던 그 금발 여인을 마주합ㅂ니다.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낀 려린을, 처음과 달리 그는 좀더 굳은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과연 또 '선'을 넘고 '수치'의 영역에 들어갈까요? 감독은 그 모든 것을 극히 모호하게 처리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현실적인 비유입니다. 아담과 이브 이래 인간은 '수치'를 알게 되었고, 그 모든 '수치'들은 매일 매일 불시에 우리에게 찾아오며, 우리는 그 때마다 실로 다양한 방식 - 수락과 거부를 포함한 모든 방식 - 으로 우리의 수치심을 실감하니까요.
차분하고,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배우들은 단역 한 명 한명까지 모두 연기가 훌륭했고, 대본은 단순하지만 분명했고, 카메라의 시선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시선'을 참으로 잘 잡아내는 카메라 워크가 좋았습니다.
이 영화가 성기 노출 등을 이유로 개봉되지 않는다면 전 그것이 '수치스러운'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실로 달을 못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검은 숲 속에서는 완전히 끝난 건 아닙니다 - 만, 이제는 기승전결을 가진 중편보다 간간히 이어지는 뒷이야기 위주가 될 것 같습니다. 그에 앞서, 이 소설을 쓰면서 찬찬히 만들어갔던(처음 시작은 즉흥이었으니까 말이죠) 설정들을 에릭과 찰스와 저의(...) 대담 형식으로 풀어놓아 볼 생각입니다.
워커: 그간 궁금하셨던 게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에릭: 그렇지. 제일 궁금한 건 대체 이런 변태적인 얘기를 풀어놓을 생각을 어떻게 했냐는 건데,
찰스: 에릭!
에릭: (독일어로 뭔가 중얼거린다.)
찰스: 에릭, 어떤 기분인지는 알겠지만 일단은 살려두자. 물어볼 것들이 있었잖아.
워커: ......네? 일단은...뭐요?
찰스: 걱정 마세요. 늑대인간이라고 해서 꼭 사람 고기를 먹는 건 아니거든요. (에릭 쪽을 잠시 불안해 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네 음, 아무튼 고기는 안 먹어요. 해치는 건 좀 자신 없는데, 제가 에릭을 말릴 수 있도록 좀 도와 주시겠어요?
(붙임성 있는 얼굴로 웃는다)
워커: ......네, 네, 아무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어쩐지 당신이 에릭보다 더 무서워 보이지만.
찰스: 네? ^^
워커: 아, 아닙니다! 그러면 궁금한 것을 말씀해 주세요!
찰스: 예, 일단 '늑대 인간' 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네요. 글 내내 늑대니 인간이니 하면서 정체에 대한 서술이 왔다갔다하던데-
워커: 그렇죠. '나는 늑대다!' '인간이다!' 라는 선언들이 교차하고 결국 '늑대 인간이다!' 라고 이어지는 건데요, 이게-
찰스: (참을성있는 표정으로 워커를 바라본다.)
워커: - 네?
찰스: 저 말 아직 다 안 끝났는데. ^^
워커: 어-....네, 넵! 죄송합니다 ㅠㅜ
찰스: 이 늑대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존재들인가요? 또, 생태에 대한 설명도 해 주세요.
워커: 어- 생태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면 두 분 다 늑대인간이시잖아요? 굳이 제가-
에릭: 넌 알지만 이 블로그 오시는 분들은 모르잖아.
찰스: 에릭의 말대로네요. 부디 알려주시면 고맙겠네요.
워커: ...역시, 자비에 씨 쪽이 더 무서워요!
(잠시 소란이 인다)
워커: 어- 그러니까- 다행히도 두 분이 질문하실 법한 걸 제가 이렇게 워드로 쳐서 가지고 왔어요.
에릭: 워드? 그게 뭐지.
찰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조잡한 서류를 의미하는 거야.
에릭: ......프로...뭐?
워커: 그럼, 자비에 씨가 읽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니고 계시잖아요.
찰스: (물끄러미 워커를 바라보다가) 대화체로 계속 쓰기 힘들어서는 아니구요?
워커: 와우, 그 돌연변이 능력 멋지군요! 어쨌건 부탁드립니다. (굽신거린다.)
(잠시 헛기침을 한 찰스, 목을 가다듬고 매끄럽게 읽기 시작한다.)
1. 이 소설에서의 '늑대인간'이란?
글 속에 나오는 '태고의 늑대들'의 후손들입니다. 빙하기 시대,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와 당시의 거대한 늑대들인 카니스 디루스의 혼령이 결합하여 생겨난 것이 바로 이들입니다. 고로 만일 학명을 붙인다면 아마도 Homo Dirus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초의 혼령 결합은 아마도 샤먼에 의해 일어났던 것이겠지만, 태고의 늑대들도 그에 대해서는 확답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달의 주기에 따라 야성이 솟아오르는데, 보름달이 되면 자의와 상관없이 늑대로 변할 정도로 야성적인 힘이 흘러넘칩니다. 인간 형태일 때에도 일반 인간들보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며, 근력도 더 강합니다. 낮보다 밤에 늑대로의 변신이 더 수월하고, 반대로 낮에는 더 쉽게 인간으로 돌아옵니다. 보름 때에는 왠만해서 인간으로 돌아오기 어렵지만, 아주 오래되고 자신의 야성을 다루는 데 익숙한 늑대인간들은 아주 쉽게 변신할 수 있습니다.
(찰스: 그래서 슈미트가 그렇게 쉽게 변신한 건가요?
워커: 넵! 다만, 쇼우 정도 되어도 보름 밤에 인간으로 돌아오기는 꽤 어려워요. 마을 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의 클라우스 슈미트는 의외로 필사적인 상태였죠.)
생체 회복력이 놀랍도록 강하고, 자라긴 하지만 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놈의 성질머리들, 그리고 제어하지 어려운 야성 때문에 대부분의 늑대인간들은 전사하거나 살해당하거나 사고사합니다. 그래서 조심성 많고 주의깊은 뱀파이어나 요정에 비해서는 수백년 살아남는 경우가 드물어요;
(찰스: 에릭, 내가 그 성미 조심하랬지?
에릭: ......)
2. 대체 그 태고의 늑대란?
모든 늑대인간들의 마음 속에는 영원히 얼어붙은 설원이 있고 태고의 늑대들이 사는 곳이 펼쳐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늑대 버전의 집단무의식의 세계입니다. 늑대들의 '원형'이 그 곳에 있습니다. 무리가 있고, 우두머리가 있고, 우두머리의 짝이 있고, 짝의 딸이며 자매들인 암컷과 형제인 젊은 수컷들이 있고요.
(에릭: 잠깐, 지금 젊은 수컷과 암컷이라고 했나? 찰스, 거기에 그런 자들이 있어?
찰스: 에릭, 오해하지 말아줘. 나는 그 늑대들이 암컷이건 수컷이건 신경쓰지 않아.
에릭: ?! 암수 상관없다고? 찰스, 그 빌어먹을 늑대들과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찰스: 맙소사, 에릭! 그들은 그냥 혼령이야, 살도 피도 없는 존재들이라고!
에릭: 하지만 그 공간에 들어가면 모두 실체를 갖는다고 했잖아. 안 그래?
워커: 잠시만요, 잠깐만, 지금 자비에 씨가 뭔가 오해를 받고 있...(에릭이 째려보는 바람에 침묵한다.)
찰스: 에릭, 오해를 풀어. 안 그러면-
에릭: 안 그러면? 어쩔 건데.
찰스: 다시 프랑스로 갈 거야. 거기서 10년동안 살 거고, 예전처럼-
에릭: ......알겠어.)
사실 모든 늑대인간이 다 이 '태고의 늑대'를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슈미트처럼 오래되었거나 뭔가 정신적 계기가 있어서... 말하자면 참선(...) 이나 명상(......), 혹은 각종 늑대인간으로서의 경헙들을 통해 도달할 수 있습니다.
태고의 늑대들이 사는 영원한 설원에 가는 법은, 쇼우가 처음 늑대인간이 되던 무렵에는 늑대인간들이 많이 알고 있는 가르침이었지만, 수백년이 지나면서 점점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쇼우는 에릭에게 전부 가르쳐 주고 싶어했지만, 에릭이 멋대로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전혀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에릭은 늑대 인간계의 후레자....
(글래스워커가 에릭에게 끌려간다. 처절한 비명과 무자비한 하울링과 으르렁거림이 들린다.)
아무튼 찰스를 통해 태고의 늑대들과 늑대인간들은 다시 한번 연결되었습니다. 태고의 늑대들은 대단히 기뻐하고 있고요.
3. 다른 늑대인간은 전혀 없는가?
(에릭이 갑자기 침묵한다. 찰스도 잠시 집중하고 읽어나간다.)
유럽의 늑대인간은 지독한 마녀사냥으로, 북미의 늑대인간은 인디언의 멸망과 함께, 남미의 늑대인간은 스페인의 침공 때문에 사라졌지만 극동 지역의 극소수 늑대인간은 살아남았습니다. 이들은 극동의 인간들에게 '12지' 중 '개'로 오인받아 그럭저럭 삶을 유지합니다만...
(에릭: 개? 지금 개라고 했어? 이런 (다시 한번 독일어)
찰스: 에릭! 읽는 중이잖아.)
중국 쪽의 늑대인간은 문화혁명의 피바람 속에서 멸종합니다. 한국의 늑대인간은 6.25 이후로 소식이 없고요, 일본의 늑대인간들은 일본 늑대의 멸종 이후 감감 무소식입니다. 다만, 멸종되었다는 얘기는 없어요.
아무튼 숨어 있는 극소수의 늑대인간들은 있습니다. 아누비스로 숭배되던 고대 이집트의 혈통을 받은 이들도 있고, 남미의 늑대인간이 멸망하던 당시 스페인에 늑대인간이 역수출(...) 되기도 했습니다. 캐나다에도 있다고 합니다. 다만 너무 넓은 곳에 마구 흩어져 있는데다 '태고의 늑대들'의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자들도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에릭: 뭐야, 그냥 '꿈도 희망도 없다'라고 요약하면 될 일이잖아.
워커: 깨...깨갱
찰스: 그래도 있을지도 모른다잖아, 다행이네.)
4. 앞으로의 에릭과 찰스는?
아마도 아주 오래오래 핸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많은 사건들이 있겠습니다만, 슈미트를 물리치고도 별 탈 없었으니 이제는 잘 지내지 않겠어요?
에릭: 그렇겠지?
워커: 그...그렇습니다!
찰스: 틀림없나요? 우리는 인간에 대한 대화를 가끔 나누는데, 서로 생각이 좀 다르-
워커: 에헤이! 그 그 그 그런거 없고요! 두 분은 백년해로 하실 겁니다! 절대로!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겝니다!!!!!
(심상찮게 노려보던 에릭이 가자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쉬는 워커, 그리고 가볍게 인사하고 에릭을 따라가는 찰스)
이런 설정들이 있었...더랩니다. 와하하. 대화 형식으로 조금 풀어 보았지만 막상 쓰자니 별 게 없어 보여서 안습이네요.
앞으로는 겨울 독수리와 인큐버스를 써 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회사 일도 정신없고 이래저래 힘들어서 집중은 잘 못 하고 있습니다만, 최선을 다 해 나가겠습니다!
행사 무사히 끝내고 왔습니다!
현장에서도 모 님, 모모 님과 동의한 의견인데, 역시나 같은 것에 불타는 동지들을 피부로 느끼고 싶어 계속 행사를 나가게 되는 것 같다 이거지요. 매우 중독성이 강합니다. 난 혼자가 아니란 걸 뿌듯하게 외쳤던 모블오 모렐루야 씨의 대사라든가 당장 마이애미 바다에서 모 상어씨가 유아낫얼롱~ 한 마디에 덜커덩 코꿰이는 장면만 봐도 이거이 참으로 폐부를 찌르는 핵심입.....네, 각설하고.
통판 들어갑니다.여기 게시판을 이용해주시면 되고요,
선입금 예약하신 분들께는 특전 포함해, 책 도착하는 즉시 발송합니다.
(책 사양 : 여기)
※ 영화 엑스맨 퍼스트클래스 AU 여성향 에릭X찰스 팬픽입니다.
※ AD11세기 영국-스칸디나비아-프랑스 등지를 배경으로 한 순구라개뻥쌩사기 스또오리입니다. 고증과 개연성을 포기하고 보시면 정신 건강에 매우 유익합니다.
※ 물론 역사상 실존 인물&지명&사건도 간간이 등장합니다만 좀 더 그럴싸한 개뻥을 위한 병풍일 뿐이오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01
베네딕트 회칙을 따르는 수도원들이 늘 그렇듯, 찰스가 철이 든 후 십여 년을 살아온 이 수도원의 종과終課 역시 해지기 전에 마무리 된다. 서녘 하늘에 희미한 실금만 남긴 저녁 어스름에 잠시 시선을 주었던 청년 수도사는 경사진 길을 급히 오르느라 약간 밭아진 호흡을 가라앉히며 제법 규모가 있는 수도원 내측의 객사에 발을 디뎠다. 장서관의 고문서 수장고에서 두문불출하던 그를 여기까지 호출한 인물과 사정은 그리 궁금치 않다. 국왕이 머문 런던 지척이란 수도원 입지상 연줄 닿는 귀족 명사들이 제법 드나들지만 하필 찰스 프랜시스 자비에를 지목해 외부인 접촉을 대개 통제하는 수도원 내칙마저 거두게 만들 이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는 이도, 그럴 이유가 있는 이도.
끝이 뾰족한 로마네스크 아치가 겹겹이 세워진 회랑 끝의 응접실 문앞에서 찰스는 짧게 숨을 들이키고 문을 열었다. 수도원장이 난처하고 불편하며 다소 겸연쩍은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찰스 형제와의 면담을 간곡히 부탁’ 했노라던 –꽤나 거액의 기부금을 겸사로 챙긴 게 분명했다- 귀한 손님이 수도원 측에서 내놓은 조금 늦은 저녁 식사를 들다가 문소리에 고개 들어 찰스를 보았다.
“오랜만이군.”
“주님의 가호로 다시 뵙는 군요, 웨스트체스터의 헨리 경.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별고 없어 보이나?”
“적어도 외양은 무탈해 보이십니다.”
찰스보다 예닐곱 살은 많아 보이고 햇빛에 그을어 단단한 얼굴을 한 젊은 남자 –웨스트체스터의 헨리- 가 피식 웃고는 술잔이 찰랑이도록 술을 부어 입가로 가져갔다. 수도원에서 성찬용으로 쓰기 위해 으레 준비하기 마련인 와인이 아니라 독한 내가 확 풍기는 켄트의 사과주였다.
“두 주 전에 노르망디를 떠나 영지로 돌아왔다. 아버지, 아니 웨스트체스터 경께선 올 여름을 넘기기 힘들어 보이더군.”
“전갈 받았습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요.”
“내가 웨스트체스터 백작위를 정식으로 계승하면 너를 수도사제로 인정해줄 것을 켄터베리 주교께 청하겠다. 옥스퍼드의 찰스 자비에는 벌써부터 학식으로 이름이 나있으니 주교께서도 쉽게 허락하실거다.”
“헨리 경, 저는 일생 수도하며 신께 봉사하기로 서원한 몸입니다. 또한 일개 학승일 뿐 세속의 제후들과도 의무와 복종의 연을 다져야 하는 사제는 저의 길이 아닙니다.”
“웃기는군. 그렇다면 진작에 은수사(隱修士)라도 되어 산골에 처박힐 일이었다. 아니면 재작년 볼로냐 유학 중에 로마에 주저앉거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자가 어디를 간들 주군에 대한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사제가 되어 내 영지로 돌아와 백작령에 봉사해라. 그게 네 의무다.”
“..............”
헨리는 찰스의 대꾸도 듣지 않고 술을 다시 따랐다. 자신의 술잔 뿐 아니라 곁에 준비된 다른 술잔에도 그득하게 따르더니 대뜸 찰스에게 내민다.
“헨리 경, 저는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수염도 안 난 애송이 시절부터 맹랑한 애주가였던 네가 할 말은 아니군.”
“철모르던 옛 시절은 지나갔고, 저는 지금 수도사니까요.”
“왜, 술을 마시면 곤란한 일이라도 있나?”
“일단은 저도 계율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게 아니겠지. 취하면 넌 네가 숨기는 너의...........”
“헨리 경...!”
윽박 질렸을 때조차 차분하던 찰스가 이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흔들린 기색으로 헨리의 말문을 막았다.
“여전하구나, 너는.”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우린 여전히 저주받을 놈들이군 그래.”
“...............”
헨리가 술잔을 내밀며 재촉했다. 무겁고 고집 센 목소리는 권고가 아니라 선고였다.
“권하는 게 아니다. 요구하는 거지.”
둘의 시선이 술잔 너머에서 부딪혔고, 찰스가 먼저 눈길을 거두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음을 새삼 깨달은 하얀 손가락이 내밀어진 술잔을 받았고, 그날 저녁의 마지막 어스름은 찰랑이는 독주 아래 삼켜졌다.
살아온 무수한 날들과 별 다르지 않은 이른 햇살을 등진 채로, 에릭은 마악 물굽이를 지나 시야에 들어온 수도원을 노려보았다.
“여기까지 왔구먼.”
곁의 늙은 전사가 다잡은 한 마디는 지금 에릭과 에릭이 탄 배 위의 모든 바이킹들의 감상과도 같았다. 한때는 그들이 무소불위의 검이요 명령이며 천벌이자 재앙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용머리를 조각한 롱쉽(longship) –남쪽의 굼뜬 백성들은 에릭들이 지금 탄 날렵한 스카이드(skeid)나 좀 더 거대한 드라카르(drekar)들을 구분 않고 그리 불렀다- 이 기적 같은 스피드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 모든 것을 정복하고, 약탈하고, 승리했던 시절 말이다. 바이킹은 공포의 지칭에 다름 아니었고 브리튼의 일곱 왕국은 차례로 굴복하여 수백 년을 두려움에 떨었었다. 적어도 크누트 대왕의 마지막 정복까지는.
“여기가 바로 대왕의 못난 자식들과 함께 바이킹의 영광도 끝났다고 주절거리는 놈들이 제 똥무더기 위에서 뭉기적대는 땅이지.”
노전사의 한 마디에 클클대는 웃음들이 맞장구를 쳤고 에릭은 다음의 수순을 잘 알고 있었다.
“두 번 다시 개소리를 하지 못하게 해주자...... 모두 일어섯!!”
새벽의 그림자를 뚫고 바이킹의 배들이 강변에 늘어섰고, 전사들은 전투도끼를 든다. 거친 싸움꾼들 사이에서 몇몇 궁수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오직 에릭을 따라 여기까지 온 자들이었다. 바이킹 에릭 에이릭손, 최근 데인의 가장 유력한 수장들 중 하나인 본홀름의 젊은 전사를 말이다.
진한 금발을 목덜미까지 늘어뜨린 푸른 눈의 사내가 유유히 뱃전에 서서 팔을 쳐들자 궁수들이 특별히 만든 강철 화살을 시위에 메기고 목표를 향했다. 어른 남자의 손가락 둘을 합친 것과 비슷한 굵기의 화살은 화살이라기보다 거의 쇠봉에 가까웠고 실제 용도도 그에 가까울 것이다. 에릭은 이물에 매두었던 신호용 까마귀 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 심호흡과 함께 쳐들었던 팔을 내렸고, 궁수들은 일제히 당긴 시위를 놓았다.
수도원의 성무일과는 새벽과 아침 중 새벽에 더 기운 하늘 아래 시작된다. 효과曉課도 지나 조과朝課가 가까워 아침 소세를 끝낸 수사들이 하나 둘 회당을 향할 때 햇빛과 다른 섬뜻한 빛줄기 하나가 수도원의 종탑을 스쳤다. 거칠게 다듬어진 데인인의 화살이.
서기 1065년 초여름, 강을 끼고 두둑한 둔덕 위에 자리한 옥스퍼드 수도원이, 바로 그 강을 타고 올라온 전사들의 발아래 짓밟히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약탈과 습격에 이골이 난 북구의 전사들은 그들의 롱쉽이 채 정박하기도 전에 세차게 강물을 차내며 수도원 옹벽에 매달렸다. 서둘러 봉쇄한 문과 이런 습격에 대비해 올려둔 외벽은 그러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데인 인들이 쏴 갈긴 거대한 화살들이 마치 사다리인양 차례로 옹벽에 박혔고, 만족들은 괴성을 올리며 벽을 타넘었다. 둔한 강철 살촉이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벽을 꿰뚫었고, 수사들은 마침내 아침을 부수며 강림한 공포와 혼란을 마주하게 된다.
젊은 에릭, 강철의 주인 에릭. 광포한 에이릭 올라프손의 아들, 비천한 어미로 인해 버림 받았으나 기어이 아비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자.
데인인들의 가장 강력한 수장이 그가 왜 새로운 공포인지를 몸소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즈음의 수도원들은 더이상 속수무책 약탈당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도우사, 앨프레드 왕의 군대가 데인 인들에게 승리한 것이 어언 지난 세기의 일이며, 크누트의 정복조차 이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왕들의 군대는 강력해졌고 하나하나가 버서커인 양 날뛰던 북방의 만족도 기세가 누그러든지 오래, 이런 약탈의 시도는 오히려 드물었고 성공은 더더욱이나 그렇다. 만약 이 수도원을 습격한 자가 저 불가사의한, 강철의 주인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젊은 에릭이 아니었다면 수도원의 견고한 옹벽은 지척에 주둔한 왕의 병사들 혹은 귀족들이 이끄는 민병대가 달려올 때까지 모두를 충분히 지켰으리라.
젊은 에릭, 거친 북해를 건너온 사내의 날랜 발걸음이 바짝 질린 비명들과 어수선한 소음을 곧장 질러서 수도원의 가장 안쪽, 두 개의 안뜰 중 좀 더 특별한 신분을 가진 의탁자 들을 위해 지어진 분관을 향했다. 그는 자신이 굳이 이 수도원을 택한 목적과 수도원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용무에 비하면 그의 전사들이 본당의 곳곳에서 갈취 중인 찬란한 성물이며 재물들도 별 것 아닌 양 안중에 없어보였다. 데인의 수장은 자신의 이 습격이 실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며 그만큼 냉정하게 계산된 무력도발임도 알고 있다. 도하에서 제압, 가장 가까운 초소의 병단이 쇄도할 때까지의 시간, 그리고 그 안에 처리해야 할, 은밀한 의뢰.
저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미간과 새나온 냉소를 굳이 가리지 않은 채, 전사는 수도자의 처소치고는 지나치게 번듯한 방문을 차부수고 들어갔다.
코를 알싸하게 찌르는 약채의 향기와, 곯은 술냄새가 습격자의 긴장한 전신을 반긴다. 크리스천의 수도원과 일말의 인연도 없는 몸이지만, 소위 신께 바친 정숙과 헌신의 공간에 이 난잡한 공기란 가당치도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승냥이 같은 왕들이 섬뜩한 야만의 투쟁을 거듭하는 저 북국의 땅이나 여기 기름진 녹색 대지의 수도원이나, 탐욕의 추접함은 비슷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모양이다.
에릭은 막 옆방들과 낭하를 울리기 시작한 비명들을 일체 무시하고 우스꽝스러울만큼 커다란 침대로 성큼성큼 다가가 벌거벗은 큼직한 몸뚱이를 있는 대로 뻗고 늘어진 금발의 사내를 잡아챘다. 잘해봐야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거구의 사내는, 얼마나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셨던지 에릭의 우악스런 손길에도 잠에 취한 채 입술을 씰룩댈 뿐이다. 다크블론드의 거한, 왼족 어깨의 화살촉 흉터, 오른쪽 광대뼈 바로 아래의 홍반. 힐끗 본 침대 아래에 엉망으로 굴러다니는 진홍의 망토에서 웨식스(wessex)의 와이번 문장을 확인한 데인의 젊은 수장이 입술 끝을 슬쩍 올렸다. 이래서야 요란하게 연출한 침입의 수고에 비해 지나치게 쉬운 목표 아닌가. 전사다운 결투의 미학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그의 검이 가차 없이 금발 사내의 목을 날렸고, 그것으로 볼일은 끝났다 생각한 찰나였다.
지나치게 커다란 침대의, 지나치게 봉긋한 이불 무더기가 꿈틀대더니, 느리고 어수룩한 움직임으로 둘둘 말린 덩어리 틈새로 하얀 다리가 불쑥 비어져 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다리였다. 가늘지도 그렇다고 둔중하지도 않은 선은 그저 쭉 뻗어 발끝에서 마무리 되었을 뿐 어떤 단련의 흔적도 없다. 그리고 굳은 살 하나 없이 은은한 연분홍색 뒤꿈치가 그 주인의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신분을 은연중에 암시하였고, 바로 그 점이 에릭으로 하여금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휘두를 뻔한 검을 거두게 했다. 방금 자신이 죽인 거한이 침대에 끌어들인 것이 흔한 시골 촌부나 창부가 아닌, 제법 신분이 있는 계집이라면 나름 몸값을 뜯어낼 인질의 가치가 있을 터였다. 예를 들어 혹시나 대동하고 온 처라든가......?
금녀구역을 명시하는 수도원 회칙을 아예 깔아뭉갠 에릭의 추측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즉시 박살나버렸다.
역시나 술냄새와 잠에 취한 하얀 얼굴이 이불 아래서 천천히 드러나 에릭을 똑바로 향했고, 그는 발가벗은 청년의 목울대에 선명한 치흔을, 그 의미를 바로 알아보았으니까.
상황 자체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북국이나 이곳이나 힘 가졌다는 자들이 침대에서 탐하는 육신이 젊은 여자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걸 넌더리나도록 잘 아는 에릭이다. 또한 남색에 대해 반사적으로 관습적 혹은 생리적 혐오부터 불러 일으킬만큼 번듯하게 살아오지도 못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육욕에 대해 공평하게 무감각한 기준을 가지게 된 사내가 이 노골적인 상황을 앞에 두고 판단의 저울에 올린 건 하나 뿐이다. 지금 그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사로잡은 스스로의 빌어먹을 충동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
“......헨리...?”
약간 쉬어있는 목소리가 침대 끄트머리에 널부러진 시체를 불렀고, 비몽사몽의 혼돈을 잠시 헤매던 푸른 눈이 마침내 에릭을 명징하게 담는 순간 둘은 각각의 판단을 끝내고 각자 손을 뻗었다. 에릭의 손아귀가 청년의 목덜미를 채었을 때, 청년은 손가락을 제 관자놀이에 대고 눌렀다.
“!!!”
몸 전체가 마비되는 듯한, 초유의 두통이 에릭의 머릿속을 뒤흔들었고 젊은 바이킹은 살벌한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청년의 목줄기를 제압한 손아귀의 긴장만은 놓치지 않았다. 일견 나약해뵈는 상대라 해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 것이 에릭의 뼛속 깊이 배인 습성이었고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날 아침의 경우도 그랬다.
목이 졸린 청년의 입에서 쥐어짠 신음이 새어나왔고, 치명적인 두통은 닥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것이 이해도 짐작도 못할 무형의 '공격'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챘으나, 에릭은 답지 않게 의문을 뒤로 하고 몸을 숙였다. 마술? 주술? 어쨌든 이게 무엇인지는 반드시 추궁하리라 생각하면서도, 젊은 사내는 이불을 젖히고 다리가 드러났을 때부터 자신을 지독스레 사로잡은 갈증에 먼저 매달렸다.
쇠뇌를 하나하나 다스려 옹벽 깊이 박아 넣은 '능력'의 사용이 부른 허기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특별한 '힘'을 사용하고 나면 으레 닥쳐오는 진한 고양감과, 약간의 식욕처럼 말이다. 그것이 오늘처럼 거의 맹목적인 색정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던가? 소년 시절부터의 기억을 대강 들추었으나 여전히 애매하다. 배가 주리면 채우고 몸이 요구하면 가능한 들어주며, 오로지 하나의 길만을 달려온 수십 년이다. 북해는 거칠고 그의 영지는 척박했으며, 일궈온 삶 또한 그와 흡사했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삶에서, 욕구와 갈증은 그때그때 채워줘야 하는 법이다. 그럴 수 있는 자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완전히 제압한 몸을 내리누르고, 빌어먹을 흰 다리를 붙잡아 벌린 에릭은 급히 풀어낸 제 성기를 그대로 찔러 넣었다. 다른 것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당혹감과 고통을 담고 벌어진 푸른 동공도, 새빨간 입술 새로 투둑 터져 나온 비명도.
침입은 수월하지 않았으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마치 이 수도원에 들이닥친 에릭들의 공세처럼 말이다. 수시간전 이미 열렸었던 비부는 몇 번의 성마른 채근에 필사적으로 적응하려 들었고,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몸에서 힘을 빼려는 그 주인의 의사에도 고분고분 따르려 한다. 피할 수 없는 행위라면 적어도 심하게 다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래 깔린 남자의 빠르고도 뻔한 판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몸짓은 제법 인상적이었고, 이렇게 생생하게 지금 이 행위를 새기고 있는 에릭 자신이 또한 의외였다. 에릭은 정사의 기억을 세세히 남겨두는 취미도 상대의 반응을 따지듯 짚어보는 취미도 없다. 그에게 육체적 욕망과 충동, 그리고 의무감은 언제나 거의 같은 비율의 동의어 였으니까.
정사는 거칠고 짧았다.
느닷없는 충동을 곧이곧대로 풀어낸 바이킹은, 이완되기 시작한 육체와 달리 개운할 리 없는 정신적 뒷끝에 메마른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의 몸 아래 깔려 되는대로 흔들리는 동안 얼추 상황을 파악한 청년의 입에선 허탈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바지춤을 훔치며 손아귀에 든 두 손목을 풀어주자, 어느샌가 패닉을 털어내고 잠잠해진 푸른 눈이 에릭을 쫓았다.
“이름은?”
“.....찰스, 찰스 자비에.”
색슨 말로 툭 내뱉은 바이킹의 발음에서 강한 북구 악센트를 알아들은 찰스가 즉시 대답했다. 이젠 아예 쉬어터진 목청이라 꽤나 괴로웠지만 이 황당한 데인인한테 단칼에 절단 나는 것보다야 나았다.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사용하려다 어이없도록 간단히 제압당한 찰스 자신의 ‘은밀한 능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당분간 있으나마나한 잔재주일 것이다. 그래, 적어도 머리를 들쑤시는 이 지독한 숙취가 가실 때까지는 말이다. 엊저녁 헨리가 찰스에게 술을 강요한 목적이 바로 저 숙취였던 만큼, 쉽게 어찌할 수도 없을 것이다.
브리튼의 수도원이나 덴마크의 본거지에서나 볼 것 없이 배척받을 행위를 충동적으로 저질러버리고 돌처럼 굳은 얼굴을 한 남자를 올려다본 찰스는, 어쩐지 눈치만으로도 충분히 현재 그의 속사정을 알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경추 전체를 제압하고, 자신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그의 정신을 향해 무형의 창을 날린 순간 여느 사람들과 전혀 다른 울렁임을 느꼈었다. 숱한 사람들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사고의 체계, 본인이 알거나 말거나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의 '뇌' 속에 심어져있는, 특별한 힘을 컨트롤하기 위한 부분의 존재가 찰스의 감각을 제대로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이 낯선 만족 남자의 고단한 삶이 찰스의 머릿속에 폭포수처럼 쏟아진 것이다. 이어서 반사된 양 번져오기 시작한 두통, 거기에 촉발된 듯 날뛰기 시작한 숙취. 도저히 능력을 계속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에릭이 자신의 목뼈를 아예 부숴버릴 기세로 조르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몸값을 치를 수 있나?”
“아마도.”
주어가 생략된 질문의 의미를 잘 아는 찰스였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판국에 흘러나온 찰스의 그다지 확실치 않은 대답이 오히려 그의 확고한 배경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아들은 에릭이었다. 흥정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더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반응. 푸른 눈의 청년은 그가 당한 일에도 불구하고 이제 전혀 에릭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몇 달이나 몇 년 전의 일도 아닌, 바로 직전의 일임에도.
수도원 한가운데 귀족들을 위한 객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남자와 뒹굴고, 이튿날 아침 목이 달아난 그 남자의 시신을 발치에 놓은 채, 난입한 데인인 약탈자에게 다짜고짜 범해지고도 이내 침착할 수 있는 청년. 그리고, 어쩌면 기묘한 주술의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수도사. 몇 푼의 금화를 취해보겠다고 이 자를 데려가는 게 과연 득일까?
에릭의 이성이 간단히 부정적 답을 제시하는 동안, 그의 팔은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바닥에 제멋대로 떨어진 린넨 셔츠와 튜닉, 그리고 질 좋은 모직으로 지어진 예의 진홍색 웨식스 망토를 집어들어 청년에게 던진 것이다.
“넌 지금부터 내 인질이다. 따라 나와.”
“.....몸값을 치를 말미가..... 어떻게 되오?”
“주제 넘는군. 네 몸값을 흥정할지 무시하고 노예로 부릴지는 오딘 신만이 아실 일.”
바이킹의 으름장이 호락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찰스의 공격을 물리치고 아침 댓바람부터 쓰라린 맛을 육신에 새겨준 자는 이 자, ‘본홀름의 에릭’ 이 유일했으니 말이다. 살아오며, 적어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힘을 자각한 이래로는 누군가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없던 찰스가 이 생경한 아침을 안겨다 준 장본인을 다시 한 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찰스 자비에를 제압하고 수치스럽게 정복한 자, 거친 야만족의 냉정한 수장, 그리고 비할 데 없이 위험한 어떤 힘의 주인.
그런데 자신은 이 자를 두려워하거나, 심지어 혐오하거나 증오할 수가 없었다. 신기하리만치 어떤 거부감도 일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아까부터 울렁거리던 속과 관자놀이 핏대가 발딱발딱 뇌를 향해 들이박듯 맥동치는 통증 사이사이로 희미하게 번뜩이는 에릭의 과거, 그의 감정, 그의 의지가 아직 찰스의 두뇌를 강고하게 사로잡은 탓이 클 것이다. 맙소사, 심지어 지금 찰스는 에릭이 조금 전 찰스 자신의 벗은 다리를 본 순간 일으킨 충동마저 자기의 감정인 양 읽어낼 수 있었다.
통증에 후들거리는 손으로 튜닉을 뒤적이는 동안, 찰스는 자신이 범해진 충격보다 이 정신적 타격에 더 강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인정해야했다. 뭐, 애시당초 육체적 정절과 그리 친숙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너도 수도사였나?”
침대 곁의 협탁에서 장미목 로자리오부터 챙겨들자 무뚝뚝한 질책이 떨어진다. 잘못 듣지 않았다. 어이없다는 투의 한 마디에는 분명 질책에 가까운 뉘앙스가 담겨있었고 찰스는 자신의 정결치 못한 행실에 대한 명백한 비난을 느꼈다. 그 수도사를 다짜고짜 덮친 건 누구냐고 되묻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마침 그때 경추부터 등줄기를 따라 허벅지까지를 날카롭게 쑤신 통증 탓이다.
에릭은 눈앞에서 잔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수도사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딱 보이는 그대로 부유한 남방의 방탕하고 난잡한 귀족 아니랄까봐 그만한 일에 휘청거리는 꼴이 아주 배알 꼴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바닥에, 손가락 사이사이에 저 희고 부드러운 감촉이 아직 남아있어서 더욱 그랬다.
“날 새겠군.”
금방이라도 침대에 고꾸라질 것 같은 몸에 손을 대자, 반사적으로 흠칫 굳는 꼴은 우습지도 않다. 물색 모르는 처녀도 아닌 주제에 새삼스럽긴. 겨우 린넨 셔츠 위에 튜닉을 반쯤 걸친 청년을 붉은 망토와 하얀 이불로 둘둘 말아 그대로 어깨에 걸머지자 뭐라뭐라 항의를 하는 것도 같았는데 에릭은 완전히 무시하고 꽝꽝 언 청어마냥 경직한 엉덩이나 손바닥으로 한 번 철썩 때려주었다.
“힘 빼. 귀찮게 굴면 바다에 처넣어 버리겠어.”
수도원 마당으로 나서자, 노략질에 이골이 난 자들답게 실어 나를 보화와 상등급 노예로 팔릴만한 포로들만 깔끔히 추리고 분류해 배에 싣는 중이었다. 수도원 측이나 에릭의 수하들이나 사망자는 거의 없다. 그만큼 빠르고 치밀하게 제압한 승리였다. 이것이 모종의 특별한 습격이 아니었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철저히 약탈했을 것이나, 에릭은 물러설 때를 정확히 아는 수장이기도 했다. 누구 좋으라고 여기 더 뭉기적거리다 군대의 칼맛을 보겠는가 말이다. 덴마크 궁정의 은밀한 인맥을 동원해 웨스트체스터의 헨리를 죽여달라 요구한 자들은 헨리를 죽인 해적들 또한 남김없이 토벌되어 영영 입을 다물게 되기를 은근히 바랄 터인데.
부관 격인 외눈박이 스벤이 다가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눈짓을 보냈고, 에릭은 무뚝뚝한 '끝냈다' 한 마디로 나이든 전사의 소리 없는 질문에 답했다. 아버지뻘 나이의 스벤은 살아온 나날만큼의 경계심과 의심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자였고, 그러므로 당연히 에릭이 져날라온 이불더미에 대해서도 특유의 집요한 눈길을 보내며 관심을 표해왔다. 몇 가지 정황만으로 충분히 많을 걸 눈치 챈 그가 갈가마귀처럼 그렁거리는 목소리로 에릭의 의중을 떠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인질을 잡지 않기로 했잖은가, 젊은 에릭.”
“....................”
“아니면 노예로 부릴 셈인가? 놀랄 일이군.”
가노를 들이지 않는 에릭의 습성은 제법 유명했고 그만큼 고만고만한 위치의 씨족들 사이에서 종종 빈축을 사곤 한다. 스벤은 의혹을 숨기지 않은 채 얌전히 에릭 어깨 위에서 숨을 죽인 이불덩어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음, 저놈이 끼고 온 여자던가? 제법 반반했나 보군.”
“아냐. 단지 알아볼 것이 있다.”
이불 째 갑판위에 찰스를 내려놓은 에릭이 뒤돌아 우렁차게 외쳤다.
“퇴각!! 지금부터 귀환한다!!!! 형제들!! 집으로 돌아가자!!!!!”
아래층 홀에서 떠들썩한 폭소와 고함이 간간이 들려왔다.
간만의 상륙에 들뜬 건 당연히 찰스만이 아니었고 이미 술이 몇 순배 돌아 에릭조차도 은은히 목이 붉었다.
“옷을 준비했다. 그리고…”
얼른 헐렁한 튜닉의 매무새를 정돈하며 에릭을 맞이하는데,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있는 대로 상을 찡그리며 미간을 엄지와 검지로 돋운다. 확 올라온 술기운을 진정시키는 것 같은 동작이었으나, 찰스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조리 있게 댈만한 이유는 없다. 다만 기시감이 있었다. 그래, 그날 아침의-
“왜 피하지?”
“……글쎄.”
호흡이 흐트러지는 걸 느끼며 찰스가 이를 앙다물었다. 에릭의 질문은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위협으로 들리는 동시에, 상처 입은 항의처럼도 들렸다.
둘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찰스는 눈앞의 남자를 거의 읽을 뻔 했고 에릭은 마치 그가 그러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 찰스의 옷을 든 길고 단단한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은 삽시간에 폭풍우가 되어갔다.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주 미미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한 호흡이 누구의 것인가는 궁금하지도 않다.
흡사 올무에 걸려든 사냥감이 느낄만한 낭패감이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한 찰스였으나 또한 표내지 않았다.
먼저 아슬아슬한 평형에 언어를 조심스레 비껴 댄 것은 여러가지가 아쉬운 입장인 찰스 쪽이었다.
“일단 옷을 이리 주게. 대충 맞을 것 같은데.”
물기 채 마르지 않은 찰스의 손이 불쑥 앞으로 나오며 옷을 건네 달라 무언으로 재촉했으나 에릭은 본 척도 하지 않았고‚ 민망하게 내밀어진 하얀 손만큼이나 새하얀 얼굴이 순간 어색하게 굳었다. 갓 면도한 턱이 슬쩍 떨리듯 움직이며 붉은 혀가 빠르게 제 입술을 핥는다. 그리고 자각 없는 습관인 듯한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몰이와 회피의 균형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에릭은 목을 콱 조르는 듯한 독한 기갈을 느끼며 한 발 다가섰다. 머리 꼭대기까지 취기가 오르는 느낌이었으나 이것이 시시한 술의 소위가 아님을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았다. 판단이 행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초유의 경험은 에릭에게 있어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를 처음 만난 그날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육신은 질문과 대답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로브가 바닥에 떨어졌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에릭은 다시 한 발을 다가갔고 찰스는 꼭 그만큼을 물러섰다. 크게 뜨인 채 에릭에게 고정된 푸른 눈이 무얼 호소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에릭이 상대의 감정 추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자체가 단일한 색채를 품지 못하고 흔들리는 탓이다. 에릭의 등 뒤에서 문의 걸쇠가 저절로 아물리는 소리가 났고 바이킹은 좀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별로 넓지도 않은 객실에서 둘의 숨소리가 거의 겹치려는 찰나에 찰스가 고개를 모로 돌리며 숙였다. 희미한 한숨은 허락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웠고 이번에야말로 상대의 의사를 제대로 짚어낸 에릭은 묘하게 안도했다.
찰스는 더이상 물러서지 않았고 에릭은 손을 뻗어 그의 은근히 가는 턱선과, 파리한 뺨을 만졌다. 부드럽지도, 별로 매끄럽지도 못한 평범한 사내의 그것이었으나 자신의 손가락 끝은 달라붙듯이 그 피부위에 머문 채 벼락같은 경련을 일으킨다.
마침내, 그날 아침과 지금 자신을 사로잡은 신열의 본색과 맞닥뜨린 에릭이 딱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리고 한동안 누구도 제대로 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강철, 그리고 모든 금속은 에릭에게 무엇보다 친숙한 그의 종복이었다.
능력을 자각한 이래로 가장 쉽고도 간단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수단. 그리고 금속을 따르게 하는 힘과 같은 뿌리를 지녔으나 좀 더 미약하고, 그러나 비할 수 없이 깊은 감각이 있다. 바다와, 하늘과 육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에릭에게 바르고 정확한 방위를 가르쳐주는 감각이자 스스로 발을 붙이고 서있는 이 거대한 대지가 품은 심원의 움직임, 강대한 파장을 미루어 더듬을 수 있게 자신을 이끄는 감각이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릴 적 베갯머리에서 나이 든 노파들이 말하던 큰 늑대 펜리르의 힘줄일지도 모르고 세계를 둘러싼 큰 뱀 요르문간드의 요동인지도 모르나, 그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의지다. 또한 해도 되는가의 허락이 아니라, 할 수 있는가의 능력이.
찰스의 정신 능력은 확장되고 정교해질수록 가히 전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 손매 부드러운 수도사는 아마 목숨 다하는 날까지 ‘이름’과 ‘허락’에 연연할 것이며 그러므로 결코 자신을 진정한 의미로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저 에릭 에이릭손의 의지를, 그 자신의 약속대로 ‘도와야’하리라.
목이 졸린 듯한 표정을 한 채, 정신의 소리로만 에릭에게 그의 적들이 여직 남아있음을 고한 찰스를 강하게 끌어당겨 껴안았다. 지금 불꽃과 함께 자신의 세계가 사라지고 있음을 시시각각 타들어가는 감각으로 인지하는 남자가, 제게 남은 최후의 것에 바짝 마른 입맞춤을 남겼다.
-곁에서 떨어지지 마.
그리고, 네. saga 그냥 그대로 끝내지 않습니다(...)
본편의 결말은 변동 없습니다만, 거기까지 가는 여정에는 다소 이의가 있다 이겁니다!! 한 마디로!! 더 쓰고 싶어요!!
무엇보다, 떡이..!! 떡이 부족해요!! orz
고로, 이 블로그에서 X saga 추가 연재 들어갑니다.
예전 연재분은 모두 비공개로 돌리고, 새 연재분은 시크릿 포스트로 올라갑니다. 비번은, 이번에 낸 X saga 인쇄본에서 찰스의 <mors toa, vita mea> 대사가 실린 페이지 넘버 입니다^^
팀장: 주말엔 이틀 모두 나와 주세요. 중요한 시기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워커: 잠깐. 주말 소환이냐?
팀장: .....?!
워커: 주말 건드리지 마! 나 행사 있응께, 해머 가꼬와!
파트장: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겠어?
팀장: 그렇게 피를 봐야겠어?
워커: 구라 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냐? 팀장님 너는 파트장에게 일감을 나눠줬을 것이여! 그리고 여기, 여기 이거는 시스템 파트 할 일 아녀? 나 들어있는 파트에 이틀은 필요없는데 슬쩍 끼워넣으려 했지. 하루는 낼 수 있잖아?
팀장: 이 글래스워커놈이 어디서 약을 팔어?
워커: 씨발, 천하의 팀장님이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후달리냐?
팀장: 허허허허허허, 후달려? 오냐, 니 주말 하루랑 내 손모가지를 건다. 준비됐어? 까볼까?
자, 지금부터 일감 확인 들어가겠습니다잉
띠라라 띠라라 띠라리라리라 쿵쟉쟉 쿵쟉쟉
- 잔인한 장면 생략 -
...의 과정을 거쳤을 것 같지만 사실은 "중요한 일이 있어요 ;ㅁ;" "네 그러면 일요일에 나오세요." 하고 선선히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토요일분의 일을 하기 위해 새벽 3시까지 정신없이 달렸지요.
집에 와서 모든 준비물을 정리하여 짐을 싸고 나니 대략 4시.
동아리 입장 시간인 10시 반을 맞추기 위해 허락된 수면시간은 5시간.
해냈습니다.
9시 반에 출발, 밑으로 내려가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뚜레쥬르의 차갑기 그지없는 텐더치킨 또띠야를 우유 한 팩과 함께 우적우적 씹으며 출발, 1시간쯤 후 잠실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많은 동아리 분들이 도착을 안 하신 덕에 아주 여유있게 등신대와 다키마쿠라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와...정말 최고였어요! 다음은 동아리 준비 매뉴얼입니다.
1. 먼저 인쇄소에서 도착한 책을 찾아온 후
2. 상자에서 책을 꺼내어 파본체크를 한 후 모두 세어 봅니다. 상자에 권수가 적혀 있다고 해도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기본적으로 다 세어 보고 있지요. 나름 대작업.
3. 화이트폰님이 아직 안 오고 있어...
4. 파본대비용이 본편은 9부, 번외편은 19부(........). 번외편을 따로 판게 다행입니다. 원가 이하의 가격이었지만 OTL
5. 구간/본편/번외편/배포본을 주욱 진열해 둡니다.
6. 진열된 책 앞에 출력해 온 가격표를 붙이고, '견본' 글씨를 오려내어 견본서적 앞에 조심스레 붙입니다. 나중에 떼어내더라도 책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요령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7. '배포본'이라는 글자를 출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 부스 오시는 분들마다 직접 나눠드려야겠네요.
8. 화이트폰 님이 아직 안 오고 있어...
9. 리스트를 꺼내어 통판/지인판매본/증정본/제 것을 합산한 후 떼어내어 따로 보관합니다. 혹시 통판을 신청하신 분이나 지인들이 찾으시면 이 쪽에서 빼서 드려야 합니다.
10. 잔돈을 꺼내 두고 리스트를 꺼냅니다. 11. 회지 사러 가고 싶은데
화이트폰 님이 아직 안 오고 있어...
드디어 화이트폰님 도착. 후다닥 회지를 사러 달려갑니다. 일반 입장 직전에 간신히 다 돌았네요. (네솔님 다시 뵈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아직 반 정도의 부스만 있는 상태라 예약한 책들과 수량 조사에 참여했던 책들을 쓸어왔어도 기록해 둔 책의 반 정도밖에 사지 못했습니다.
아우, 요 뒤에 돌 때 꼭 있어야 하는데 ㅠㅜ
일반 입장이 시작됩니다. 아이고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에서 '상업용 한국어' 가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놀. "여기 이 회지는 7,000원 되시구요, 번외편은 500원이시구요, 합해서 7,500원 되세요." 옆에서 화이트폰님이 죽어갑니다. "그만둬! 그만두란 말이야!" ...하지만
한국에서 을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버린 난 이미 버린 몸...
반가운 분들을 너무나 많이 뵈어서 기뻤습니다. 언제나 보배같은 패시 관련 정보와 사진 보내주시는 P님, 반지 이래 늘 찾아와 주시는 (어흐흐흐 ㅠㅜ ) K님, 또 다른 K님 사랑합니다 ㅠㅜ 언제나 자상한 감상 덕에 저희를 감동시켜 주시는 M님, 그리고 I님(Y님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아이고 모 님들께서는 또 머핀들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고! 초콜렛도! 감사했고! S님 커피 ㅠㅜㅠㅜㅠㅜㅠㅜ 으허어어엉 ㅓㅠㅜ 감사했고요! 다른 분들도... 덕분에 배고프지 않게 맛있게 먹고 마셔가며 지치지 않고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쓰다보니 먹을 거 받은 얘기만 하고 있다?! 그간 저희 블로그에 덧글로 성원 보내주신 여러 분들을 직접 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참 머 머 머 머그컵 ㅠㅜ 에다 책갈피...아 정말 멋졌고요, 너무 귀여워서 그 머그컵 깨끗이 씻어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데헷.
암튼 포풍같은 판매 후 잠깐 텀이 생겨서 회지를 마저 사러 갔어요. 최대한 휙 빨리 돌고 돌아왔지만 팔은 이미 빠질 듯... 도저히 스티커 관리를 할 수 없어 결국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ㅠㅜ
워커: 화이트폰님아, 저 책 이만큼 질렀어요.
화이트폰: 이번엔 내가 사러 가게뜸.
나머지 책들을 어여어여 팔고 나니... 이게 부수를 너무 적게 뽑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아이고 이런;;; 일단 수량조사분이 현매로 풀리는 오후 2시까지 기다려주십사 얘기를 했지요.
마지막 현매분이 팔려나가는 찰나, 바로 뒤에 계신 스탭 분의 얼굴이 멍해지는 것을 발견... 덜덜덜, 2시 이후에 풀린다고 말씀드리면서, 혹 남는 것이 없더라도 견본서적이라도 싸게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ㅠㅠ;;;;;
마침내 2시, 16권 정도의 책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 뒤 30분 만에 완매. 1시에 나오신다는 회지 생각이 나서 찾으러 갔더니...매......................매진!!!!!!!!!
눈물났습니다 ㅠㅜ
중간에 구두 예약했던 회지를, 그 사실을 제대로 기록해 두지 않고 그냥 두 권 다 사 버렸다는 것을 발견하는 해프닝도 하나 있었습니다. 데헷- 다행이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덕분이 예특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행복했습니다 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
드디어 택배를 보내는 순간, 택배를 보낼지 돌돌이에 담아 끌고 갈지 고민하는데, 산 회지가 너무 많아 이래저래 쌓고 있는 절 본 화이트폰님, 쿨하게 한마디.
"그 정도 양이면 택배로 보내세요."
어기영차 택배 포장을 해서 보낸 건 좋았는데...그런데...데에..........
전부 택배로 보내서 지금 책이 없어 OTL <-바보
행사가 점점 끝으로 갔는데, 체력이 완전 바닥나서... 결국 추첨 행사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한 후 집으로 왔습지요.
정말 즐거운 행사였고, 엑스맨으로 타오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행사 후기를 적다 보니 완전 두서없었던 듯 합니다. ㅠㅜ
사진 한 장 못 찍은게 제일 아쉽네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