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8. 17:50
- 19세기, 독일 배경입니다.
- 슈바르츠발트 근처의 한 마을, 박물학자 찰스와 사냥꾼 에릭입니다.
- 둘의 능력이나 느낌은 원작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약화되어 있습니다.
- 달리고 또 달리는 중입니다.
오랜 추억을 회상하는 얼굴이 된 슈미트가 미소를 지으며 찰스를 바라보았다. 찰스는 방금 전 던져진 말 중 한 단어가 그에게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샤스텔', 그 단어가 어째서 익숙한 것일까?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던가?
자기도 모르게 프랑스어로 외쳤다. 잠시 놀란 얼굴을 했던 클라우스가 오히려 환히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 반응을 보면서 찰스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만일 클라우스 슈미트가 그 '야수'라면 그는 적어도 백년 이상을 이 모습으로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보당...당신이..."
"그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지."
심지어 찰스를 향해 마치 자랑스럽게 자기 소개를 하듯 가슴에 손을 얹고 살짝 고개를 숙이기까지 한다. 긍지마저 묻어나는 그 몸짓이 끔찍스러워, 찰스의 온 몸에는 오한이 들었다.
"당시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제보당의 야수', 세간에는 거대한 늑대, 혹은 늑대인간의 급습으로 알려진 일련의 끔찍한 습격 사건이다. 1764년에 한 소녀의 눈에 띈 이후, 3년간 그 '야수'에게 죽은 사람의 수만도 100명 가까이 되었다.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 졌고, 프랑스 왕실에서는 늑대 사냥꾼으로 이름난 프랑스와 앙트완을 급파해 거대한 늑대를 잡아냈다. 하지만 야수의 인간 사냥은 계속되었고, 결국 1767년 송 도베 마을의 장 샤스텔의 손에 야수가 잡혔다. 도저히 늑대라고 부를 수 없는 거대고도 기괴한 '괴물'이.
"그럼 장 샤스텔이 잡은 것이 바로..."
"내 무리였소. 불쌍한 엠마."
클라우스가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리 속에 펼쳐진 광경을 이제 찰스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옛 사람들, 승리감에 가득 차 울부짖는 야수, 클라우스의 '짝'은 그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괴물이었다. 다만, 온 몸은 불그스름했고 눈은 노란색이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흉포한 광기는 찰스의 피를 얼어붙게 했으나, 클라우스의 눈에는 그마저도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내 짝, 내 무리, 나의 가족. 피에 젖은 그녀는 말 그대로 하얀 여왕이었다.
"그들은 이겼다고 생각했지."
분수에서 포도주가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떠들고 마시며 축제를 벌였다. 그들 한가운데, 왕에게 진상될 그 '야수'의 시체가 있었다. 나무 꼬챙이에 꿰여 네 다리로 선 것처럼 전시된 그 '괴물'을 향해 사람들은 오물을 던지고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부었다. 술에 절어 미친듯이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그가 서 있었다. 지금 찰스의 눈앞에 선 남자가.
"하지만 졌군요."
그리고 그 남자는 이제 독일의 숲 속으로 숨어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의심할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마을의 지주님으로 자리잡은 것이겠지. 적당히 '괴물'의 전설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외출을 금기시 하는 동안, 그는 자유롭게 이 곳 숲을 쏘다니고 짐승들을, 그리고 때로는 사람들을 사냥했으리라. 적당히, 왕이나 정부가 나설 필요 없을 정도로 주의깊게.
"그렇소. 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지. 샤스텔은 죽은 지 오래고, 나는 여기 이렇게 살아 있소."
승리감 가득한 미소가 클라우스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내 무리가 될 아이를 찾아냈지."
"에릭을요?"
대답하지 않고, 클라우스 슈미트는 벽 쪽으로 다가가 끈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사실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후, 제법 그럴듯한 본 도자 찻잔 세트와 홍차가 도착했고, 찰스는 뜨거운 찻물을 들이키며 지금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어떻게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눈앞의 남자가 최소한 백년, 사실은 그 이상 묵은 괴물이라는 것과, 그런 그가 이 곳에 와서 숨어 있었다는 것과, 다시 한 번 자신의 '무리'를 만들기 위해 에릭을 늑대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 일련의 사실들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간신히 찰스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차 한잔을 다 비울 무렵, 찰스는 클라우스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다시 한번 무리를 만들 생각인 겁니까?"
"오, 걱정 마시오. 제보당처럼 하진 않을 거야. 그건 너무 위험하지."
"결국 만들겠다는 거군요."
홍차 향기를 즐기던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아이와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할 거요."
"에릭이 그걸 좋아할까는 모르겠군요."
"걱정 마시오. 뭐건 익숙해지게 마련이니. 그 아이도 인간의 고기맛을 볼 때가 되었지."
평온을 가장하는 것도 한계였다. 찰스의 손에 들려 있던 빈 찻잔이 딸가닥 소리를 내며 밑접시 위에 내려앉았다.
"에릭은 누구도 해치고 싶어하지 않아!"
"그게 잘못된 거지."
"당신은 대체!"
"이해를 못하고 있군, 박사."
클라우스 슈미트 또한 찻잔을 내려놓았다. 평온해 보이는 그의 얼굴 안에서 차가운 시선이 이 쪽을 향한다. 마치 '이제 신사적인 시간은 끝났다'는 듯,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찰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도 노려보는 시선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박사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대체,"
"영원히 얼어붙은 '우리의 시간', 감히 인간 주제에 그 곳에 들어왔잖나."
순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굳이 이 긴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지."
"영원히 얼어붙은..."
"태고의 늑대들을 보았겠지. 인간 따위가."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붉은 눈과 거대한 이빨, 그럼에도 어떤 위험도 광기도 느껴지지 않던 야수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얼어붙은 세계에서 달리던 그들. 그것이 에릭 마음 속의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은 찰스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 슈미트도 그 세계를 알고 있는 것인가. 대체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그 '세계'는 단순히 한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가상의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늑대 인간들이 그 '세계'를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가 태고의 늑대를 보던 그 순간, 클라우스도 그를 보고 있었던 것이리라.
"설마..."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 경악하는 찰스 앞에서 클라우스가 몸을 일으켰다. 인간 모습일 때의 그는 전혀 거구가 아니었는데도 장신의 몸에서는 어떤 압도적인 기운이 흘러넘쳐, 찰스는 그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데도 꼼짝할 수 없었다.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곧장 찰스의 머리 따위 으스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손이 찰스의 다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예상은 했지만 정작 그 손이 닿는 순간, 찰스는 거의 펄쩍 뛰어오를 것처럼 놀랐다.
"어떻게 거기 들어갈 수 있었지?"
그의 손이 목으로 향한다. 차가운 손가락이 목덜미에 와닿아, 찰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목을 비틀어 그 손을 피하고 말았다. 다음 순간, 슈미트의 손이 찰스의 목을 그러쥐었다.
"꼭 말할 필요는 없어. 그냥 네놈 목을 날리고 에릭에게 교훈을 주어도 나쁘진 않겠지."
"...!"
손에 가볍게 힘이 들어간다. 마치 키스할 듯 찰스의 얼굴에 얼굴을 가져다 댄 클라우스 슈미트가 찰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어떻게 들어갔지? 말해."
"그건..."
긴장한 찰스의 감각에 갑자기 무언가가 느껴졌다. 너무나 익숙한 남자의 기척이었다. 동시에 슈미트 또한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 그에게는 찰스의 것과는 또다른 '감각'이 있기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아, 기다리던 손님이 왔군. 하인들을 다 내보내길 잘 했어."
목이 해방되었다. 손을 가볍게 비벼 기대감을 표시하며, 클라우스 슈미트는 언제 찰스의 목을 졸랐냐는 듯 우아하게 의자에 앉았다.
"경고해 두겠소, 박사, 잠자코 있으시오."
"......"
"혹여라도 허튼 짓을 하면, 에릭은 당신 목이 날아가는 꼴을 눈앞에서 보게 될 거요."
찰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스 슈미트와 그 사이의 거리는 고작 5 피트 정도다. 만일 그가 에릭이 말한대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팔을 뻗어 찰스의 목을 날리는 것은 너무도 간단할 터, 게다가 방금 그가 보였던 살의는 분명 진심이었다. 이전보다 많이 보이는 만큼, 찰스의 행동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고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에릭을 위해 점잖게 있어주길 바라겠소."
끝까지 악마같은 작자라고 생각하며, 찰스는 숨을 가다듬고 문을 바라보았다. 에릭이 점점 다가온다. 오로지 찰스의 안위를 걱정하며, 남자는 이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찰스의 냄새나 자취를 쫓아 이리 오고 있는 것이겠지. 마침내 문고리가 돌아가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인가 상처 투성이의 손에 어설프게 천을 감은 에릭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잽싸게 찰스를 찾아내 훑어본 그의 푸른 눈에 안도감이 찼고, 그 모습을 바라본 찰스는 한편으로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기묘한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정말로 이 곳에 온 것이다. 찰스를 구하기 위해.
"생각보다 늦게 왔구나, 에릭. 걱정하던 참이었단다. 우리는 방금-"
인자한 미소를 띤 클라우스가 입을 열었으나, 에릭은 차가운 태도로 말을 끊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여전히 성급하구나."
"당신 말대로 얌전히 지내고 있었는데, 만족스럽지 못했나?"
"글쎄다, 별로 얌전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 안 그러냐?"
"......"
클라우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에릭을 응시하다, 결국 자신의 반문에 답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여상스레 말을 이었다.
"어쨌건 최후 통첩을 하기 위해 이렇게 박사까지 불러오게 되었구나."
"최후 통첩?"
"난 인내심이 많은 편이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으니까 말이다."
일어서서 잠시 창 밖을 내다보며 뜸을 들이던 클라우스는 곧 두 사람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마치 아주 인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두 개의 장난감중 하나를 고르라고 시키듯, 다정하기까지 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에릭, 선택하렴."
"무슨 소리야."
"네가 이 인간을 네 손으로 죽여 줬으면 좋겠구나."
"...뭐라고?"
"아니면, 물론 다른 길도 있단다."
미소짓는 이빨이 빛났다.
"그를 우리 중 하나로 만들려무나. 여기 내 눈앞에서."
에릭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계속
다음회가 최종이 됩니다. 일정은 무사히 사수할 수 있겠네요.다음화를 공개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최선을 다 해 달리겠습니다.
- 달리고 또 달리는 중입니다.
몇 시간 뒤, 다시 한 번 문이 열렸다. 마차 바퀴 자국과 발자국, 무엇보다도 숨길 수 없는 클라우스의 체취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에릭은 어떤 인기척도 없는 빈 실내를 확인하고는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 섰다. 피 냄새도, 어떤 폭력의 흔적도 없으니 아마도 '평화적'으로 데리고 나간 것이리라. 모피 위에 떨어진 클라우스 슈미트의 손수건을 발견한 에릭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 내가 좀더 강했다면.
지금 상황에서 그가 클라우스 슈미트를 이길 방법은 전무했다. 변신한 상태에서도 힘이 모자란데, 오늘은 보름조차 아니다.
- 클라우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도 할 수 있어.
양 손으로 얼굴을 덮고, 에릭은 그만 절규하고 말았다.
- 그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제발, 그 누구라도 도움을, 설령 저주하고 피해 왔던 것이더라도 관계 없었다. 에릭은 무릎을 꿇고 바닥을 주먹으로 거칠게 치며 울부짖었다. 그를 구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제발, 그를 구할 수만 있다면-
반짝이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 찰스에게 돌려받은 후 잊고 있던 것이.
"그래서,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잘못된 질문이오."
찰스는 눈앞에서 식사를 마쳐가는 남자를 회의적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찰스의 앞에도 꽤 훌륭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으나 입맛은 커녕 아예 식욕 자체가 들지 않았다. 두 번이나 자기 목숨을 빼앗을 뻔 한 '괴물' 앞에서 태연하게 식사할 수 있는 강심장도 세상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찰스는 그러한 강심장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조금이라도 들지 않고? 좀 있으면 배고파 질 거요."
"전혀 생각이 없군요. 미안합니다."
"안됐군. 그러면 좀 있다 홍차를 한 잔 할 텐데..."
"그건 좋군요."
다만 홍차라면, 기왕 영국식 홍차라면 바로 지금 이 상황에서 매우 간절했다. 적어도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찰스를 바라보며, 클라우스는 싱글싱글 웃었다. 선선하고 관대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역시 눈은 달랐다. 감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호의와 선의는 무려 진심이다. 그러나 이 쪽을 면밀히 살피는 차가운 눈 또한 그의 본질이었다. 이제 더 강해진 능력으로 되짚어 봐도, '클라우스 슈미트'라는 인격의 전모가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다는 건 꽤 놀라운 일이었다. 깊은 안개 속에 자리잡은 그의 정신세계는 에릭의 것보다 월등히 넓고 깊었다. 아마 좀더 집중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상대방이 이상을 알아차릴 것이다.
"박사, 당신은 참 흥미로운 인물이오."
"...예?"
푸른 눈이 이 쪽을 빤히 보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독특하게도 맑은 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한 지주는 테이블 위에 손을 깍지껴 얹으며 찰스 쪽으로 얼굴을 기울인다. 마치 아주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 나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학자 나부랭이로 생각했지."
"......"
"보통 인간들과 다를 것 없어. 별반 가치 없는 고깃덩어리들, 그래, 뇌는 좀 맛있지만."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 본 것은 찰스였다.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러고 보니 식당 앞에서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던 하인들의 자리조차 텅 비어 있었다.
"...그것 참 대단한 취미시군요."
"내가 얼마동안 살아왔다고 생각하시오?"
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클라우스를 바라보았다. 외견상 보이는 나이는 기껏해야 40대 중반이다. 하지만 그의 내부세계는 너무나 깊고 어두워, 찰스는 그 안에 어떤 방들이 얼만큼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건 알겠습니다."
"대단하군."
남자가 몸을 일으킨다. 천천히 이 쪽으로 다가온 그가 찰스의 턱을 들어올렸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겠지만, 이 남자의 힘이라면 다음 순간 아마 더 강한 힘으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리라. 시선을 피하지 않는 찰스의 눈을 한참 동안이나 응시하던 그가 툭 하고 말을 던졌을 때, 찰스는 그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샤스텔이 생각나는군. 그가 딱 자네같은 눈을 가졌었지."
"...예?"
"짙은 푸른 색 눈, 만용도 아니고 공포도 아니고,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 시선 말이오. 그 땐 참 즐거웠지. 행복한 시간이었어."
- 내가 좀더 강했다면.
지금 상황에서 그가 클라우스 슈미트를 이길 방법은 전무했다. 변신한 상태에서도 힘이 모자란데, 오늘은 보름조차 아니다.
- 클라우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도 할 수 있어.
양 손으로 얼굴을 덮고, 에릭은 그만 절규하고 말았다.
- 그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제발, 그 누구라도 도움을, 설령 저주하고 피해 왔던 것이더라도 관계 없었다. 에릭은 무릎을 꿇고 바닥을 주먹으로 거칠게 치며 울부짖었다. 그를 구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제발, 그를 구할 수만 있다면-
반짝이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 찰스에게 돌려받은 후 잊고 있던 것이.
"그래서,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잘못된 질문이오."
찰스는 눈앞에서 식사를 마쳐가는 남자를 회의적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찰스의 앞에도 꽤 훌륭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으나 입맛은 커녕 아예 식욕 자체가 들지 않았다. 두 번이나 자기 목숨을 빼앗을 뻔 한 '괴물' 앞에서 태연하게 식사할 수 있는 강심장도 세상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찰스는 그러한 강심장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조금이라도 들지 않고? 좀 있으면 배고파 질 거요."
"전혀 생각이 없군요. 미안합니다."
"안됐군. 그러면 좀 있다 홍차를 한 잔 할 텐데..."
"그건 좋군요."
다만 홍차라면, 기왕 영국식 홍차라면 바로 지금 이 상황에서 매우 간절했다. 적어도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찰스를 바라보며, 클라우스는 싱글싱글 웃었다. 선선하고 관대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역시 눈은 달랐다. 감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호의와 선의는 무려 진심이다. 그러나 이 쪽을 면밀히 살피는 차가운 눈 또한 그의 본질이었다. 이제 더 강해진 능력으로 되짚어 봐도, '클라우스 슈미트'라는 인격의 전모가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다는 건 꽤 놀라운 일이었다. 깊은 안개 속에 자리잡은 그의 정신세계는 에릭의 것보다 월등히 넓고 깊었다. 아마 좀더 집중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상대방이 이상을 알아차릴 것이다.
"박사, 당신은 참 흥미로운 인물이오."
"...예?"
푸른 눈이 이 쪽을 빤히 보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독특하게도 맑은 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한 지주는 테이블 위에 손을 깍지껴 얹으며 찰스 쪽으로 얼굴을 기울인다. 마치 아주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 나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학자 나부랭이로 생각했지."
"......"
"보통 인간들과 다를 것 없어. 별반 가치 없는 고깃덩어리들, 그래, 뇌는 좀 맛있지만."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 본 것은 찰스였다.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러고 보니 식당 앞에서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던 하인들의 자리조차 텅 비어 있었다.
"...그것 참 대단한 취미시군요."
"내가 얼마동안 살아왔다고 생각하시오?"
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클라우스를 바라보았다. 외견상 보이는 나이는 기껏해야 40대 중반이다. 하지만 그의 내부세계는 너무나 깊고 어두워, 찰스는 그 안에 어떤 방들이 얼만큼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건 알겠습니다."
"대단하군."
남자가 몸을 일으킨다. 천천히 이 쪽으로 다가온 그가 찰스의 턱을 들어올렸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겠지만, 이 남자의 힘이라면 다음 순간 아마 더 강한 힘으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리라. 시선을 피하지 않는 찰스의 눈을 한참 동안이나 응시하던 그가 툭 하고 말을 던졌을 때, 찰스는 그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샤스텔이 생각나는군. 그가 딱 자네같은 눈을 가졌었지."
"...예?"
"짙은 푸른 색 눈, 만용도 아니고 공포도 아니고,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 시선 말이오. 그 땐 참 즐거웠지. 행복한 시간이었어."
오랜 추억을 회상하는 얼굴이 된 슈미트가 미소를 지으며 찰스를 바라보았다. 찰스는 방금 전 던져진 말 중 한 단어가 그에게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샤스텔', 그 단어가 어째서 익숙한 것일까?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던가?
"난 자네같은 족속들을 알아. 상냥하고 예의바른 것 같지만 상당한 고집쟁이들이지. 보통의 겁 많은 자네 종족들과 달리, 언뜻 물러 보이면서도 절대 자기 뜻을 꺾지 않는 그런 부류고."
샤스텔, 찰스가 만난 사람 중에서는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이름을 그는 알고 있다. 오래 된 책에서 본 기억이 났다. 샤스텔, 샤스텔...
"인간들은 어리석어. 정말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어리숙한 원숭이들이지만 가끔 우리들을 매혹시키는 존재가 튀어나온단 말이지.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장, 장 샤스텔, 드디어 생각해 낸 찰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사냥꾼 장 샤스텔, 1767년, 송 도베!
"설마..."
"하나같이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더군."
"제보당의 야수 La bête du Gévaudan!!"
샤스텔, 찰스가 만난 사람 중에서는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이름을 그는 알고 있다. 오래 된 책에서 본 기억이 났다. 샤스텔, 샤스텔...
"인간들은 어리석어. 정말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어리숙한 원숭이들이지만 가끔 우리들을 매혹시키는 존재가 튀어나온단 말이지.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장, 장 샤스텔, 드디어 생각해 낸 찰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사냥꾼 장 샤스텔, 1767년, 송 도베!
"설마..."
"하나같이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더군."
"제보당의 야수 La bête du Gévaudan!!"
자기도 모르게 프랑스어로 외쳤다. 잠시 놀란 얼굴을 했던 클라우스가 오히려 환히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 반응을 보면서 찰스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만일 클라우스 슈미트가 그 '야수'라면 그는 적어도 백년 이상을 이 모습으로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보당...당신이..."
"그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지."
심지어 찰스를 향해 마치 자랑스럽게 자기 소개를 하듯 가슴에 손을 얹고 살짝 고개를 숙이기까지 한다. 긍지마저 묻어나는 그 몸짓이 끔찍스러워, 찰스의 온 몸에는 오한이 들었다.
"당시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제보당의 야수', 세간에는 거대한 늑대, 혹은 늑대인간의 급습으로 알려진 일련의 끔찍한 습격 사건이다. 1764년에 한 소녀의 눈에 띈 이후, 3년간 그 '야수'에게 죽은 사람의 수만도 100명 가까이 되었다.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 졌고, 프랑스 왕실에서는 늑대 사냥꾼으로 이름난 프랑스와 앙트완을 급파해 거대한 늑대를 잡아냈다. 하지만 야수의 인간 사냥은 계속되었고, 결국 1767년 송 도베 마을의 장 샤스텔의 손에 야수가 잡혔다. 도저히 늑대라고 부를 수 없는 거대고도 기괴한 '괴물'이.
"그럼 장 샤스텔이 잡은 것이 바로..."
"내 무리였소. 불쌍한 엠마."
클라우스가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리 속에 펼쳐진 광경을 이제 찰스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옛 사람들, 승리감에 가득 차 울부짖는 야수, 클라우스의 '짝'은 그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괴물이었다. 다만, 온 몸은 불그스름했고 눈은 노란색이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흉포한 광기는 찰스의 피를 얼어붙게 했으나, 클라우스의 눈에는 그마저도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내 짝, 내 무리, 나의 가족. 피에 젖은 그녀는 말 그대로 하얀 여왕이었다.
"그들은 이겼다고 생각했지."
분수에서 포도주가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떠들고 마시며 축제를 벌였다. 그들 한가운데, 왕에게 진상될 그 '야수'의 시체가 있었다. 나무 꼬챙이에 꿰여 네 다리로 선 것처럼 전시된 그 '괴물'을 향해 사람들은 오물을 던지고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부었다. 술에 절어 미친듯이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그가 서 있었다. 지금 찰스의 눈앞에 선 남자가.
"하지만 졌군요."
그리고 그 남자는 이제 독일의 숲 속으로 숨어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의심할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마을의 지주님으로 자리잡은 것이겠지. 적당히 '괴물'의 전설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외출을 금기시 하는 동안, 그는 자유롭게 이 곳 숲을 쏘다니고 짐승들을, 그리고 때로는 사람들을 사냥했으리라. 적당히, 왕이나 정부가 나설 필요 없을 정도로 주의깊게.
"그렇소. 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지. 샤스텔은 죽은 지 오래고, 나는 여기 이렇게 살아 있소."
승리감 가득한 미소가 클라우스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내 무리가 될 아이를 찾아냈지."
"에릭을요?"
대답하지 않고, 클라우스 슈미트는 벽 쪽으로 다가가 끈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사실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후, 제법 그럴듯한 본 도자 찻잔 세트와 홍차가 도착했고, 찰스는 뜨거운 찻물을 들이키며 지금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어떻게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눈앞의 남자가 최소한 백년, 사실은 그 이상 묵은 괴물이라는 것과, 그런 그가 이 곳에 와서 숨어 있었다는 것과, 다시 한 번 자신의 '무리'를 만들기 위해 에릭을 늑대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 일련의 사실들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간신히 찰스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차 한잔을 다 비울 무렵, 찰스는 클라우스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다시 한번 무리를 만들 생각인 겁니까?"
"오, 걱정 마시오. 제보당처럼 하진 않을 거야. 그건 너무 위험하지."
"결국 만들겠다는 거군요."
홍차 향기를 즐기던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아이와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할 거요."
"에릭이 그걸 좋아할까는 모르겠군요."
"걱정 마시오. 뭐건 익숙해지게 마련이니. 그 아이도 인간의 고기맛을 볼 때가 되었지."
평온을 가장하는 것도 한계였다. 찰스의 손에 들려 있던 빈 찻잔이 딸가닥 소리를 내며 밑접시 위에 내려앉았다.
"에릭은 누구도 해치고 싶어하지 않아!"
"그게 잘못된 거지."
"당신은 대체!"
"이해를 못하고 있군, 박사."
클라우스 슈미트 또한 찻잔을 내려놓았다. 평온해 보이는 그의 얼굴 안에서 차가운 시선이 이 쪽을 향한다. 마치 '이제 신사적인 시간은 끝났다'는 듯,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찰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도 노려보는 시선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박사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대체,"
"영원히 얼어붙은 '우리의 시간', 감히 인간 주제에 그 곳에 들어왔잖나."
순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굳이 이 긴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지."
"영원히 얼어붙은..."
"태고의 늑대들을 보았겠지. 인간 따위가."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붉은 눈과 거대한 이빨, 그럼에도 어떤 위험도 광기도 느껴지지 않던 야수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얼어붙은 세계에서 달리던 그들. 그것이 에릭 마음 속의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은 찰스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 슈미트도 그 세계를 알고 있는 것인가. 대체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그 '세계'는 단순히 한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가상의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늑대 인간들이 그 '세계'를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가 태고의 늑대를 보던 그 순간, 클라우스도 그를 보고 있었던 것이리라.
"설마..."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 경악하는 찰스 앞에서 클라우스가 몸을 일으켰다. 인간 모습일 때의 그는 전혀 거구가 아니었는데도 장신의 몸에서는 어떤 압도적인 기운이 흘러넘쳐, 찰스는 그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데도 꼼짝할 수 없었다.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곧장 찰스의 머리 따위 으스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손이 찰스의 다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예상은 했지만 정작 그 손이 닿는 순간, 찰스는 거의 펄쩍 뛰어오를 것처럼 놀랐다.
"어떻게 거기 들어갈 수 있었지?"
그의 손이 목으로 향한다. 차가운 손가락이 목덜미에 와닿아, 찰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목을 비틀어 그 손을 피하고 말았다. 다음 순간, 슈미트의 손이 찰스의 목을 그러쥐었다.
"꼭 말할 필요는 없어. 그냥 네놈 목을 날리고 에릭에게 교훈을 주어도 나쁘진 않겠지."
"...!"
손에 가볍게 힘이 들어간다. 마치 키스할 듯 찰스의 얼굴에 얼굴을 가져다 댄 클라우스 슈미트가 찰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어떻게 들어갔지? 말해."
"그건..."
긴장한 찰스의 감각에 갑자기 무언가가 느껴졌다. 너무나 익숙한 남자의 기척이었다. 동시에 슈미트 또한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 그에게는 찰스의 것과는 또다른 '감각'이 있기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아, 기다리던 손님이 왔군. 하인들을 다 내보내길 잘 했어."
목이 해방되었다. 손을 가볍게 비벼 기대감을 표시하며, 클라우스 슈미트는 언제 찰스의 목을 졸랐냐는 듯 우아하게 의자에 앉았다.
"경고해 두겠소, 박사, 잠자코 있으시오."
"......"
"혹여라도 허튼 짓을 하면, 에릭은 당신 목이 날아가는 꼴을 눈앞에서 보게 될 거요."
찰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스 슈미트와 그 사이의 거리는 고작 5 피트 정도다. 만일 그가 에릭이 말한대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팔을 뻗어 찰스의 목을 날리는 것은 너무도 간단할 터, 게다가 방금 그가 보였던 살의는 분명 진심이었다. 이전보다 많이 보이는 만큼, 찰스의 행동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고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에릭을 위해 점잖게 있어주길 바라겠소."
끝까지 악마같은 작자라고 생각하며, 찰스는 숨을 가다듬고 문을 바라보았다. 에릭이 점점 다가온다. 오로지 찰스의 안위를 걱정하며, 남자는 이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찰스의 냄새나 자취를 쫓아 이리 오고 있는 것이겠지. 마침내 문고리가 돌아가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인가 상처 투성이의 손에 어설프게 천을 감은 에릭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잽싸게 찰스를 찾아내 훑어본 그의 푸른 눈에 안도감이 찼고, 그 모습을 바라본 찰스는 한편으로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기묘한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정말로 이 곳에 온 것이다. 찰스를 구하기 위해.
"생각보다 늦게 왔구나, 에릭. 걱정하던 참이었단다. 우리는 방금-"
인자한 미소를 띤 클라우스가 입을 열었으나, 에릭은 차가운 태도로 말을 끊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여전히 성급하구나."
"당신 말대로 얌전히 지내고 있었는데, 만족스럽지 못했나?"
"글쎄다, 별로 얌전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 안 그러냐?"
"......"
클라우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에릭을 응시하다, 결국 자신의 반문에 답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여상스레 말을 이었다.
"어쨌건 최후 통첩을 하기 위해 이렇게 박사까지 불러오게 되었구나."
"최후 통첩?"
"난 인내심이 많은 편이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으니까 말이다."
일어서서 잠시 창 밖을 내다보며 뜸을 들이던 클라우스는 곧 두 사람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마치 아주 인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두 개의 장난감중 하나를 고르라고 시키듯, 다정하기까지 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에릭, 선택하렴."
"무슨 소리야."
"네가 이 인간을 네 손으로 죽여 줬으면 좋겠구나."
"...뭐라고?"
"아니면, 물론 다른 길도 있단다."
미소짓는 이빨이 빛났다.
"그를 우리 중 하나로 만들려무나. 여기 내 눈앞에서."
에릭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계속
다음회가 최종이 됩니다. 일정은 무사히 사수할 수 있겠네요.다음화를 공개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최선을 다 해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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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글래스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