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에릭찰스에 쇼우에릭이 배경에 깔리고 아마 쇼우찰스 삘도 풍길 19세기 막장 패러렐
* 에릭, 찰스, 레이븐의 능력은 영화보다 훨씬 약합니다...1960년대와 1870년대의 차이죠.
Case of Mercury 1~3
Case of Mercury 4
자비에 가의 젊은 마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약간 부아가 난 듯한 얼굴로 검은 빵을 우물거리고 있었는데, 사실 그건 예의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어느 저택이건 식사 시간 즈음 해서 방문하는 손님의 고용인에게는 차와 빵, 혹은 간략한 식사 정도는 대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그 기준으로 미루어 볼 때 티타임을 넘어 명백히 저녁 시간대에 방문한 이 마부에게 빵과 간단한 요리, 그리고 차가 나온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건만, 게다가 세바스찬 쇼우의 저택에서 제공한 저녁이 꽤 괜찮은 것임에도 그의 표정은 영 풀릴 줄을 몰랐던 것이다.
고용인들이 부엌에 테이블을 내주겠다고 했는데도 마치 말이 없어질까 걱정이라도 되는 듯 냄새나는 마구간 한 구석에서 혈통 좋은 말들을 노려보며 빵을 씹어삼키는 그의 입에서는 가끔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는데, '찰스...' '가만 두나 봐라' '검은 빵이라니!' 등의 의미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는 그 나이대의 젊은 남자 치고도 너무 가늘고 높아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장한 여자인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쨌건 그렇듯 검은 빵에 투덜대는 것과는 영 딴판인 태도로 스튜 그릇 바닥까지 빵으로 싹싹 닦아먹은 청년은, 마지막 빵 조각을 입에 밀어넣고 우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난 듯 안 난듯 영 애매하게 붙은 콧수염에 붙은 빵 부스러기와 스튜 국물을 냅킨으로 닦고, 하녀가 가져다 준 쟁반에 다 쓴 냅킨을 쓱 얹어놓고 주위를 둘러본다. 마구간에는 말들 뿐이고, 이 저택의 마부와 하녀들은 모두 식사를 하고 있거나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회의 시중을 드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아까 찰스가 들어갈 때 보니 집사는 따로 없거나 적어도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였고, 아마도 비서나 하우스와이프인 듯한 흰 옷의 여자 - 그 여자를 생각하는 순간 마부의 이마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 는 찰스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간 듯 보였다.
"즉, 돌아다녀도 된다는 거지."
가볍게 중얼거린 청년은 주위를 흘끗 둘러보고는 씩 웃었다. 좋아, 자유다.
그 순간 청년의 얼굴이 '바뀌었다.' 목울대가 내려앉았다 다시 올라오고, 어딜 봐도 평범하고 약간 신경질적인 느낌이었던 남자의 얼굴 근육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움직이지 않을 방식으로 움직인다. 광대뼈가 내려가고 볼 살이 오르고, 좁고 높던 비량이 작달막하게 바뀌었다. 뾰족했던 턱 라인과 푹 꺼졌던 눈두덩도 아까와는 다르다. 입고 있는 옷은 분명 마부의 옷이었는데, 서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한 청년이었다. 그는 품에서 남자가 지니는 물건 치고는 너무 작은데다, 예쁘게 에나멜 세공까지 되어 있는 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부의 외투를 벗는다. 바지는 당연히 검은색 정장이었지만 외투 안에서 드러난 조끼와 셔츠는 대단한 고급품이었다. 이 정도면 하인을 마주친다 해도 길을 잃고 헤매는 연회장 손님 쯤으로 위장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연회가 있을 것을 예측하지 못한 터라 찰스로 가장하고 돌아다닐 예정이었지만, 오히려 소란한 연회가 있다니 잘 되었다.
마부는 - 아니, 찰스의 '사촌여동생' 레이븐 양은 속으로만 쾌재를 부르며 마구간 밖으로 나섰다. 온 몸의 근육을 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 외모를 바꿀 수 있는 이 '능력'은, 어렸을 때엔 그저 못생긴 외모에 딸린 저주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찰스를 만나 유복한 삶을 살게 되고, 이 '능력'의 가능성을 깨달은 찰스의 제안에 의해 저주가 아닌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훈련을 지속하고, 그리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이 '능력'은 수도 없이 도움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까의 시시한 검은 빵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받을 것이다. 프랑스 파티셰가 조리한 최고의 디저트로 말이지. 사정없이 미안해하다가 결국은 그 보상을 약속할 찰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레이븐은 쾌재를 불렀다. 뭐, 원래 찰스의 계획은 이 곳 고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 저택에 대해 캐 보라는 것이었지만 그것뿐이라면 재미없다. 무엇보다도 대강 하녀들 표정만 봐도 견적이 나오는 문제인데, 이 곳 하녀나 하인들을 구슬러 저택 주인의 사정을 알아내는 건 절대 녹록치 않은 일일 것이다. 칙칙한 아줌마 아저씨들을 상대로 뭘 얻어내느니 차라리 직접 가서 뒤지고 말지.
그렇게, 레이븐은 저택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굳이 정문으로 갈 필요도 없었다. 고용인들이 사용하는 뒷문은 어디에나 널려 있었고, '아래층'의 하인들은 '위층'의 높으신 분들이 가끔 길을 잃어 자신들의 구역으로 들어온다 해도 그저 당황하면서 보내줄테니 말이지.
수수한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조심스레 기척을 확인해 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건너편에 기척이 없는 이상 발걸음 소리는 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기척이 있다면 오히려 당당히 발소리를 내며 돌아다녀야겠지만, 쇼우 저택의 복도 카펫은 의외로 두꺼워서 발소리나 제대로 나겠나 싶었다. 하인들의 공간을 지나고 나니 아마도 1층 거실인 듯한 공간이 펼쳐진다. 역시 연회 때문인지 복도를 돌아다니는 하인은 없었고, 레이븐은 잽싸게 손님인 척 당당한 태도로 몸가짐을 바꾸고 계단을 올라갔다.
보통 사교계 누군가의 활동에 대해 알고 싶다면 뒤져봐야 할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편지함, 다른 하나는 서재. 편지함이 있는 문가는 문지기나 하인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거기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여봤자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표 지점은 간단하다. 각종 서류와 초대장과 편지가 모여있는 곳, 즉 서재로 숨어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계단 위로 올라간 레이븐은 비어 있는 복도를 보고 미소를 떠올렸다. 대부분의 하인들은 접객중이거나 식사중일 거라는 짐작이 맞았다. 조심스레 살펴본 2층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마호가니로 된 두터운 문들만 방문객을 맞이하며 점잖게 서 있었고, 그녀가 할 일이라고는 거기서 서재에 해당할 법한 문을 골라 안을 탐색해 보는 것 뿐이었다.
서재는 보통 가장 큰 방이다. 양쪽 복도의 문 간격을 볼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바로 복도 끝 문. 레이븐은 그 곳을 향해 다가가 조심스레 열쇠구멍으로 안을 탐색하며 혹시나 인기척이 나나 싶어 다시 한번 뒤를 살피고 손잡이를 잡았다. 누군가 열쇠로 잠그고 나갔는지 두터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조끼 밑, 바지춤에서 작은 쇠꼬챙이를 두개 꺼냈다. 한 개는 쑥 밀어넣고 다른 한 개로 조심스레 잠금장치를 탐색한다. 마침내 찰칵,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고, 상아로 세공된 문 손잡이를 잡은 그녀는 최대한 조용히 그것을 잡아당기고 흐르는 듯한 유연한 태도로 문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완벽한 침입이었다. 런던 시내의 어떤 노련한 도둑이라 해도 그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이 곳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기뻐할 만큼 하수가 아니었다. 잽싸게 돌아서서 다시 한번 아까의 도구로 조심스레 문을 잠그고 나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지막히 읊조리며 돌아섰다. "좋아, 미스터 쇼우, 당신의 비밀은 뭐죠?" 청년으로 보이는 외모 치고는 너무 가느다란 목소리가 서재에 울렸고, 방금 너무 크게 중얼거렸다고 생각한 레이븐은 쿡쿡거리며 빙글 돌아서서 날 듯한 걸음으로 책상을 향해 다가갔다.
세바스찬 쇼우는 정리 정돈을 매우 좋아하는 성격으로 보였다. 문과 마찬가지로 마호가니로 된 넓은 책상 위에는 상아로 된 두꺼운 문진 아래 곱게 정돈된 고급지가 놓여 있었고, 그 바로 위쪽에는 수정으로 된 잉크병과 은장식이 달린 상아 펜이 흰색의 옥이나 대리석 쯤으로 보이는 전용 받침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 보석을 너무 좋아한다고 나무라던 찰스라면 야단스럽다고 눈을 찌푸릴만한 화려한 소품들이었지만 반짝이는 것을 몹시 사랑하는 레이븐으로서는 꼭 만져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물건들이기도 했다. 물론 지문을 남길 바보는 아니지만.
책상 위에는 그렇게 서류 및 편지 작성을 위한 간단한 도구와 아마도 쇼우가 읽을 법한 두터운 외국어 책 두어권밖에 없었고, 흥미로운 서류가 들어있을 법 한 서랍은 당연히도 잠겨 있었다. 잠시 실망감에 어깨를 늘어뜨린 레이븐은 서랍의 잠금 장치를 살펴 본 다음, 다시 한번 쇠꼬챙이를 꺼내 작업에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했다.
"?!"
레이븐은 경악했다. 그녀가 손을 대기도 전에 철컥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을 뿐 아니라, 깜짝 놀라 손을 떼자마자 서랍이 스르륵 열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비명을 지르려다 간신히 참았는데, 이번에는 목 뒤쪽으로 뭔가 선뜩한 감각이 느껴진다. 날카롭고 차가운 감각이.
"소리 지르지 마. 컨트롤이 흐트러지면 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안 그러면 정말 비명을 질러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방금 어깨 너머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정말 숨막히게 차가워서, 듣는 것만으로도 목 뒤의 뾰족한 것이 박혀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서웠다.
"손 들어."
한 손에 장치를 든 채 였지만 레이븐은 순순히 양 손을 들었다. 외모는 완벽한 남자처럼 보였지만 힘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섣불리 반항해 봤자 아무 의미 없을 것은 뻔했다. 대체 누굴까? 일단 쇼우는 아닐 것이다. 그는 지금 이 집 어딘가에서 찰스를 만나고 있을 테니까. 이 집 하인도 아니다. 하인이라면 사람 부르는 줄을 당기거나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부를 테니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밖에서 들어온 사람도 아니고, 아마도 안에 계속 있던 자일 텐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조용히 기다리다 다가온 거라면 분명 레이븐만큼이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기척을 죽이는데 익숙한 녀석이라는 얘기가 된다.
"너...너 뭐야?"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남자 치고는 묘하게 높은 목소리였지만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였다. "질문을 하는 건 네가 아냐. 나지." 역시 뒤에서는 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다. 지금 레이븐의 목에 와 닿은 것이 정말 존재하는 칼날이라면 저 남자는 적어도 레이븐 바로 뒤에 서 있어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려는데 다시 한번 차가운 날붙이가 목 뒤에 꾹 눌렸다. 상처를 줄 정도의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려던 고개를 얼어붙게 만드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난 이 방 어디서건 네 목을 날려버릴 수 있어. 내 말 이해했나?"
이해는 개뿔이! 당장에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레이븐은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음에도 간신히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 와중에도 남자는 멀리서 이 쪽을 향해 얘기하고 있었다. 동료라도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저렇게 먼 거리에 서서 바로 자신의 목 뒤에 칼날을 댈 수 있단 말인가?
"귀가 먼 건 아닐텐데. 시체로 발견되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천천히 뒤돌아서도록. 아주 천천히."
거의 냉혹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에는 어디의 것인지 모를 외국 액센트가 섞여 있다. 레이븐은 일단 남자의 말대로 최대한 진정하려 애쓰며 느리게 몸을 움직여 돌아섰다. 놈의 일행이 몇 명일지 몰라도, 어떻게든 이 위기를 무사히 모면해 볼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 그리고 돌아선 순간 그녀는 가볍게 숨을 삼켰다.
"말해 봐. 넌 여기 뭘 찾으러 온 거지?"
레이븐은 그대로 입을 벌렸다가 아무 말도 못한 채 다시 꾹 다물었다. 등줄기에 새삼 소름이 돋는다. 그 자, 바로 로열 오페라 극장에서 찰스를 향해 칼을 던진 그 남자가 얼음장같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오, 찰스!'
이번만큼은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찰스를 애타게 부르던 레이븐의 얼굴이 새삼 파랗게 질렸다. 날카로운 칼날 때문도 아니었고, 무서운 기색으로 이 쪽을 노려보는 남자 때문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레이븐의 목에 바짝 붙은 나이프가 남자의 손에 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악령이라도 붙은 것처럼, 혹은 나이프 자체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예리한 쇠붙이는 날을 번득이며 레이븐의 목 바로 밑에 둥둥 떠 있었다.
-계속
간신히 등장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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