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나무 마루에 따로 카펫을 깔지 않은 것은 약간의 결벽증 때문이었다.
찰스는 오랜 세월로 인해 원래의 광택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적절히 윤기가 흐르는 밤나무 재질의 마루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갈색의 목재 위에 엇비슷한 색의 액체가 퍼졌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것이 이미 산산이 부서져 버린 머그컵 속에 조금 전까지 담겨 있던 커피였음을 깨닫는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그 안의 혀가 굳은 듯 저림에도, 그는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못박힌 채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감각이 정신없이 예민해진다. 말라 갈라진 입술과 어울리지 않게 축축한 실내의 공기, 꼭 닫아 두었음에도 어딘가에서 흘러온 밤 바람에는 차가운 비 냄새가 섞여 있다. 바람에 휘말린 바깥 나무들의 소리에 정신이 든 찰스는 조금 전 자신이 본 것의 '의미'를 생각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싸늘하게 식은 피부 위에 식은땀이 맺히고, 지팡이를 짚은 손이 떨려 온다. 보안창이 붙은 젖빛 유리창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 밖이 보이지는 않지만, 찰스는 그 뒤에 무엇이 비칠지 알고 있었다.
또 한번의 낙뢰, 번득이는 창백한 빛은 어떤 자비심도 없이 창문에 섬짓한 실루엣을 찍어냈다. 남자, 아마도 창가에 바짝 붙어 이 안을 들여다 보는 괴한의 그림자를.
심장이 튀어올랐다. 입술이 절로 떨려 왔다. 침입해 들어오려는 것인가? 강도? 아니, 아니라는 걸 안다. 비록 우레가 울림과 동시에 바닥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잔을 떨어트렸다고 해도 그 소음이 저 괴한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턱이 없는 것이다. 찰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다. 지난 2주간 간간이 희미한 그림자로 배회하던 그 남자다. 언젠가부터 늘 보이지 않는 시선을 이 쪽에 붙이고, 대학의 카페테리아에서, 서점에서, 골목에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면 어느새 슬며시 사라지던 그 그림자의 주인이다. 간혹 걸려오는 대답 없는 전화, 아침이면 슬그머니 골목 가로 사라지던 모습.
문득 떠오른 사실에, 찰스는 입술을 짓물었다. 침실로 돌아가면 총이 있다. 지팡이를 짚은 몸이라고 해도 그 총을 들 수만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둘러 움직이려던 찰스의 뇌리에 절망적인 생각이 엄습했다.
- 저 자가 무장이라도 하고 있으면 어쩔 셈이지?
이를 악물고 최대한 그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창 밖에서는 이 안이 보이지 않는다. 놈은 창 밖에 서 있고 이 곳 불은 꺼져 있지. 내가 움직인다 해도 아무것도 알아챌 수 없을 거야.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였고, 창문 가에는 이제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찰스는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지팡이가 마룻바닥에 거칠게 부딪혔지만 그런 걸 신경쓸 여유 따윈 없었다. 침대로 달려가 몸을 던지다시피 하고 손을 뻗어 작은 테이블 밑 서랍에 넣어 둔 권총을 꺼냈다. 레이븐이 가져왔을 때엔 손사래를 쳤던 물건이지만 지금 믿을 만한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땀에 젖은 손으로 권총을 들고 한참이 지나서야 안전 장치가 걸려 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안전장치를 풀고 몸을 옹송그리며 공이를 당겼다. 언제건 방아쇠만 당기면 총이 발사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찰스는 전혀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가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 몇 분도 몇 시간처럼 느껴졌고, 그런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거센 바람이 창문을 스칠 때마다 찰스는 움칫거리며 총구를 그 쪽으로 돌리곤 했다. 폭풍이 가라앉고 마침내 창문이 새벽빛으로 부옇게 물들 때 쯤에야 찰스는 하얗게 굳은 손에서 간신히 권총을 떼어낼 수 있었다. 공이를 원래대로 돌려 놓고 안전장치를 잠근다. 하지만 다시 서랍에는 넣지 않은 채, 찰스는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몸을 오그렸다. 몹시 지쳤음에도 한참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몇시간 후, 알람 덕에 눈을 뜬 찰스는 새벽의 악몽 같은 사건을 떠올리고 전율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그 몇분 뒤였다. 마루에 나가 현관문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을 때, 평소와 달리 현관 문 밑으로 얇은 신문 한 장이 밀려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바로 며칠 전 기사가 실려 있었다.
- 또다시, 이번엔 여교사.
찰스는 신문지를 떨어트렸다. 비가 그친지 한참 되었지만 문 안의 신문지는 아직까지 축축히 젖어 있었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 남자'로 부터의 메시지다.
- 계속
짧게 짧게 이어질 겁니다.
원제는 How deep is your love였으나, 스토리를 다 짜 보고 제목을 더 어울리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수위는 성적으로는 전연령가. 하지만 다른 의미로 15세 이상 혹은 성인용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