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한 분량으로 허덕허덕 이어 붙여보는, AD11세기 바이킹 에릭X수도사 찰스 스토리.
버뜨 바이킹은 어쩐지 바이퀸이 될 것 같고(....) 수도사는 개뿔 파계승 0순위 행실이라.
그날은 찰스 프랜시스 자비에가 이십여년 살아온 무수한 날들과 별 다르지 않은 아침 햇살과 함께 시작되었다. 다만 아주 짧게 지속된 일상의 햇살이었지만 말이다. 베네딕트 회칙을 따르는 숱한 수도원들이 그렇듯 찰스가 철이 든 후 10여년 넘게 살아온 이 수도원의 하루는 새벽과 아침 중 새벽에 더 기운 하늘 아래 시작되었고, 아침 소세를 끝낸 수사들이 하나 둘 회당을 향할 때 햇빛과 다른 섬뜻한 빛줄기 하나가 수도원의 종탑을 스쳤다. 거칠게 다듬어진 데인인의 화살이.
강을 끼고 두둑한 둔덕 위헤 자리한 수도원이, 바로 그 강을 타고 올라온 노르만 전사들의 발 아래 짓밟히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약탈과 습격에 이골이 난 북구의 전사들은 그들의 롱쉽이 채 정박하기도 전에 세차게 강물을 차내며 수도원 옹벽에 매달렸다. 서둘러 봉쇄한 문과 이런 습격에 대비해 올린 외벽은 그러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데인 인들이 쏴갈긴 거대한 화살들이 마치 사다리인양 차례로 옹벽에 박혔고, 만족들은 괴성을 올리며 벽을 타넘었다. 둔한 강철살촉이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벽을 꿰뚫었고, 수사들은 마침내 아침을 부수며 강림한 공포와 혼란을 마주하게 된다.
젊은 에릭, 강철의 주인 에릭. 광포한 에이릭 올라프손의 아들, 비천한 어미로 인해 버림 받았으나 기어이 아비의 모든것을 물려받은 자.
데인인들의 가장 유력한 수장 중 하나가 직접 나타난 것이다.
이즈음의 수도원들은 더이상 속수무책 약탈당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도우사, 앨프레드 왕의 군대가 데인 인들에게 승리한 것이 어언 지난 세기의 일이며, 크누트의 정복조차 이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왕들의 군대는 강력해졌고 하나하나가 버서커인양 날뛰던 북방의 만족도 기세가 누그러든지 오래, 이런 약탈의 시도는 오히려 드물었고 성공은 더더욱이나 그렇다. 만약 이 수도원을 습격한 자가 저 불가사의한, 강철의 주인이라고까지 일컫어지는 젊은 에릭이 아니었다면 수도원의 견고한 옹벽은 지척에 주둔한 왕의 기사들 혹은 민병대가 달려올 때까지 모두를 충분히 지켰으리라.
젊은 에릭, 거친 북해를 건너온 사내의 날랜 발걸음이 바짝 질린 비명들과 어수선한 소음을 곧장 질러서 수도원의 가장 안쪽, 두 개의 안뜰 중 좀 더 특별한 신분을 가진 의탁자들을 위해 지어진 분관을 향했다. 그는 자신이 굳이 이 수도원을 택한 목적과 수도원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알고있는 듯 했다. 그의 용무에 비하면 그의 전사들이 본당의 곳곳에서 갈취 중인 찬란한 성물이며 재물들도 별 것 아닌양 안중에 없어보였다. 데인의 수장은 자신의 이 습격이 실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며 그만큼 냉정하게 계산된 무력도발임도 알고있다. 도하에서 제압, 가장 가까운 초소의 기병이 쇄도할 때까지의 시간, 그리고 그안에 처리해야 할, 은밀한 의뢰.
저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미간과 새나온 냉소를 굳이 가리지 않은 채, 전사는 수도자의 처소치고는 지나치게 번듯한 방문을 차부수고 들어갔다.
코를 알싸하게 찌르는 약채의 향기와, 곯은 술냄새가 습격자의 긴장한 전신을 반긴다. 크리스천의 수도원과 일말의 인연도 없는 몸이지만, 소위 신께 바친 정숙과 헌신의 공간에 이 난잡한 공기란 가당치도 않다는 것쯤은 알고있었다. 승냥이 같은 왕들이 섬뜩한 야만의 투쟁을 거듭하는 저 북국의 땅이나 여기 기름진 녹색 대지의 수도원이나, 탐욕의 추접함은 비슷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 모양이다.
에릭은 막 옆방들과 낭하를 울리기 시작한 비명들을 일체 무시하고 우스꽝스러울만큼 커다란 침대로 성큼성큼 다가가 벌거벗은 큼직한 몸뚱이를 있는대로 뻗고 늘어진 금발의 사내를 잡아챘다. 잘해봐야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거구의 사내는, 얼마나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셨던지 에릭의 우악스런 손길에도 잠에 취한 채 입술을 씰룩댈 뿐이다. 다크블론드의 거한, 왼족 어깨의 화살촉 흉터, 오른쪽 광대뼈 바로 아래의 홍반. 힐끗 본 침대 아래에 엉망으로 굴러다니는 진청의 망토에서 웨식스의 문장을 확인한 데인의 젊은 수장이 입술 끝을 슬쩍 올렸다. 이래서야 요란하게 연출한 침입의 수고에 비해 지나치게 쉬운 목표 아닌가. 전사다운 결투의 미학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그의 검이 가차없이 금발 사내의 목을 날렸고, 그것으로 볼일은 끝났다 생각한 찰나였다.
지나치게 커다란 침대의, 지나치게 봉긋한 이불 무더기가 꿈틀대더니, 느리고 어수룩한 움직임으로 둘둘 말린 덩어리 틈새로 하얀 다리가 불쑥 비어져 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다리였다. 가늘지도 그렇다고 둔중하지도 않은 선은 그저 쭉 뻗어 발끝에서 마무리 되었을 뿐 어떤 단련의 흔적도 없다. 그리고 굳은 살 하나 없이 은은한 연분홍색 뒤꿈치가 그 주인의 신분을 은연중에 암시하였고, 바로 그점이 에릭으로 하여금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휘두를 뻔한 검을 거두게 했다. 방금 자신이 죽인 거한이 침대에 끌어들인 것이 흔한 시골 촌부나 창부가 아닌, 제법 신분이 있는 계집이라면 나름 몸값을 뜯어낼 인질의 가치가 있을터였다. 예를들어 혹시나 대동하고온 처라든가......
금녀구역을 명시하는 수도원 회칙을 아예 깔아뭉갠 에릭의 추측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즉시 박살나버렸다.
역시나 술냄새와 잠에 취한 하얀 얼굴이 이불 아래서 천천히 드러나 에릭을 똑바로 향했고, 그는 발가벗은 청년의 목울대에 선명한 치흔을, 그 의미를 바로 알아보았으니까.
상황 자체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북국이나 이곳이나 힘 가졌다는 자들이 침대에서 탐하는 육신이 젊은 여자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걸 넌더리나도록 잘 아는 에릭이다. 또한 남색에 대해 반사적으로 관습적 혹은 생리적 혐오부터 불러 일으킬만큼 번듯하게 살아오지도 못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육욕에 대해 공평하게 무감각한 기준을 가지게 된 사내가 이 노골적인 상황을 앞에 두고 판단의 저울에 올린 건 하나 뿐이다. 지금 그가 스스로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
"......헨리...?"
약간 쉬어있는 목소리가 침대 끄트머리에 널부러진 시체를 불렀고, 비몽사몽의 혼돈을 잠시 헤매던 푸른 눈이 마침내 에릭을 명징하게 담는 순간 둘은 각각의 판단을 끝내고 각자 손을 뻗었다. 에릭의 손아귀가 청년의 목덜미를 채었을 때, 청년은 손가락을 제 관자놀이에 대고 눌렀다.
몸 전체가 마비되는 듯한, 초유의 두통이 에릭의 머릿속을 뒤흔들었고 젊은 바이킹은 살벌한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청년의 목줄기를 제압한 손아귀의 긴장만은 놓치지 않았다. 일견 나약해뵈는 상대라해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 것이 에릭의 뼛속 깊이 배인 습성이었고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날 아침의 경우도 그랬다.
목이 졸린 청년의 입에서 쥐어짠 신음이 새어나왔고, 치명적인 두통은 닥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것이 이해도 짐작도 못할 무형의 '공격'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챘으나, 에릭은 답지않게 의문을 뒤로 하고 몸을 숙였다. 마술? 주술? 어쨌든 이게 무엇인지는 반드시 추궁하리라 생각하면서도, 젊은 사내는 이불을 젖히고 다리가 드러났을 때부터 자신을 지독스레 사로잡은 갈증에 먼저 매달렸다.
쇠뇌를 하나하나 다스려 옹벽 깊이 박아넣은 '능력'의 사용이 부른 허기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특별한 '힘'을 사용하고 나면 으례 닥쳐오는 진한 고양감과, 약간의 식욕처럼 말이다. 그것이 오늘처럼 거의 맹목적인 색정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던가? 소년 시절부터의 기억을 대강 들추었으나 여전히 애매하다. 배가 주리면 채우고 몸이 요구하면 가능한 들어주며, 오로지 하나의 길만을 달려온 수십 년이다. 북해는 거칠고 그의 영지는 척박했으며, 일궈온 삶 또한 그와 흡사했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삶에서, 욕구와 갈증은 그때그때 채워줘야 하는 법이다. 그럴 수 있는 자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완전히 제압한 몸을 내리누르고, 빌어먹을 흰 다리를 붙잡아 벌린 에릭은 급히 풀어낸 제 성기를 그대로 찔러넣었다. 다른 것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당혹감과 두려움을 담고 벌어진 푸른 동공도, 새빨간 입술 새로 투둑 터져나온 비명도.